
출판 뒷담화가 그리 재밌는 건 아닌것 같은데, 일단 얘기를 꺼냈으니 계속하는 게 낫겠죠??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겨우 맘을 잡았습니다.
첨에 만든 계획서를 책상에 붙여두고 하나하나 표시해가면서,
거의 매일 밤을 하얗게 밝혀가며 원고를 썼습니다.
순서대로 써지지 않아 뒤죽박죽 왔다갔다 하며 써댔죠.
이게 2002년 7월 중순께의 일입니다.
디지탈 조선에 연재를 했다고는 하나 연재된 원고를 모두 그대로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살린다 해도 전체 원고의 ⅓도 안되고. 진짜 무지막지하게 원고를 써댔습니다.
그랬는데 쓰고보니, 이건 요리책도 아닌 거에요.
무슨 요리책이 간장 몇스푼, 물 몇컵 하는 식으로 계량화된 것이 아니라
'찍어먹어봐서 짜지 않을 정도로' '쌀 위로 물이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뭐 이런식으로 표현됐으니....
사실 첨부터 기존의 요리책 같은 스타일의 요리책은 낼 생각도, 낼 능력도 갖고 있질 않았어요.
전업주부도 아니었던 사람이 요리를 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그것도 단 한번도 선생님에게 요리를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
저 같은 사람이 화보가 중심인 기존 스타일의 요리책을 내면, 그건 주제 넘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죠.
그저 내 딸과 내 며느리에게 물려주기 부끄럽지 않은 책이면 되겠다 하는 생각 뿐이었어요.
첨에 기획했던 대로 원고를 탈고해서, CD로 굽고 프린트까지 해서 출판사에 가지고 갔더니,
프린트물을 들쳐보던 편집장 얼굴에 다소 황당한 빛이 스쳐 지나가는거에요.
속마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제눈에는 '와 이렇게 글이 많은 요리책을 어떻게 만들어야하지?'하는 표정이 역력한 것 같더라구요.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말도 안되는 원고를 출판하겠다고 덤빈 건 아닌가 하구요.
몇주동안 출판사에서는 연락이 없어, 풀이 팍 죽어서 지내고 있던 중 진행기자에게 연락이 왔어요. 원고 수정 들어가자고.
워낙 써놓은 원고의 양이 많아서 원고를 잘라내기도 하고, 한 챕터를 찢어내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면서 수정작업을 마쳤죠.
얼마뒤 편집시안이 나왔으니까 그걸 보여주겠다고, 촬영스케줄 의논하자고, 들고온 시안을 보니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너무 이쁜거에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없었는데, 이렇게 이쁜 편집으로 잘 받쳐주면 뜻밖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구요.
그해 8월, 엄청난 더위 속에서, 단 10분도 설거지를 도와주는 사람없이 고생고생해가며 촬영을 마쳤죠.
촬영해야할 목록이 A4용지로 여섯장, 그것도 1차분이 그랬고, 2차분에 보충촬영까지, 정말 엄청나게 찍어댔어요.
힘은 들었지만 참 재밌고 보람있는 시간이었어요.
원고 수정도 마쳤고, 촬영도 끝냈고, 서문까지 보내고 나서 생각하니,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세상에 AS 안해주는 물건이 없는 건데, 책의 AS라는 건 고작 제본이 잘못된 책 바꿔주는 정도잖아요.
게다가 요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요리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아닌, 제가 써놓은 요리법 고대로 했다가 맛이 없으면 어떡해요?
출간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가족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홈페이지를 만들었으면 했더니,
kimys가 즉석에서 "82cook은 어때?"하며 이름을 지어줬고, 즉시 도메인 검색에 들어가니 마침 사용할 수 있는거에요.
그때 한창 숫자를 이름에 쓰는 것이 유행이었고 kimys는 제가 '밥 하나는 빨리 한다'고 82를 넣어서 지어준거죠.
.com과 .co.kr을 모두 등록해두고 우리 아들, 홈페이지 제작작업에 들어갔어요.
책이 나옴과 동시에 문을 연 82cook.com, 당시의 그 초라했던 모습은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그 얘기는 건너뛰구요.
책이 서점에 깔리고, 각 신문사와 잡지사에 보내지고 나서, 쏟아지는 그 엄청난 반응...솔직히 전 넘넘 의아했어요.
그냥 평범한 제 경험들인데, 모두 알만한 그런 내용들인데, 이 책에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을 보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죠.
그리고 그 반응이라는게 아주 일시적인 현상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출판 후 1년이 지나도 꾸준히 팔리는 그런 책이 됐어요.
아마도 제가 회사 다닐때 요리대회를 열지 않았더라면...일밥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일밥이 세상빛을 보지 못했다면 82cook도 없을테고..그럼 전 뭐하고 지냈을까요??
지난해, 1판 10쇄를 찍을 무렵 개정판 얘기를 했어요. 여전히 팔리는 책이니 만큼, 내용을 더욱 보강해보자고.
내용도 일부 바꾸고, 사진도 바꾸고...그래서 드디어 개정판까지 내게 됐네요.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 일하면서 밥해먹기를 다시 읽어보니, 어찌나 새삼스러운지..그 2002년의 여름이 생각나기도 하고...
지금 욕심같아서는 지난 2년 동안 팔린 만큼 또 '일하면서 밥해먹기'가 팔려서,
2년에 한번씩 꼬박꼬박 개정판을 내는 그런 책이 돼줬으면 좋겠는데.... 욕심이 지나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