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면서 밥해먹기' 개정판이 드뎌 다음주초면 나온다고 하네요...
아...일하면서 밥해먹기...
참..제게는 참 남다른 의미를 지닌 책이죠...
살아가는 동안 여러 차례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고 하는데,
이 한권의 책이 극적으로 제 인생을 바꿔 놓은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도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어떻게 그런 책을 쓸 생각을 하게 됐느냐고...
신문기자생활에 패션지와 주부지 편집장을 거쳐서,
회사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받았던 보직은 문화사업팀장이었습니다.
갤러리 운영, 교정대상이니 농어민대상이니 하는 각종 공익목적의 상 시상 등 계획되어있는 업무외에, 볼쇼이발레단 초청공연, 성탄음악회 등등 그런 문화사업의 책임을 맡았었드랬습니다.
문화사업팀장을 하면서 위에서는 뭔가 신선한 문화행사를 기획해보라고 종용하고, 예산은 뒷받침되지않고.. 고민 끝에 대학동창의 도움으로 LG전자에서 협찬금을 끌어내 요리대회를 마련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자양동 어린이대공원에서 가족요리대회를 여는 것이었죠.
제가 기획하고, 제가 예산을 끌어온 행사이니만큼 잘 치러내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참가자가 너무 없는거에요.
해서 참가를 유도하는 홍보성 글을 좀 남겨볼까 하고 요리사이트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눈팅에 재미 들였었죠.
가끔, 아주 어쩌다 글 몇줄 올렸는데 우수 게시물로 뽑혀서 요리책도 받고 통조림세트도 받는 부수입도 올리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디지탈조선의 푸드에까지 가게 됐고, 거기 게시판에다가,
'나는 맞벌이 주부인데 언젠가는 맞벌이주부를 위한 요리책을 쓰고 싶다, 책을 쓰기 전에 여기서 글로 요리강습을 할까 한다'
뭐 이런 글을 남겼었어요. 그리고 두어편 글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디지탈조선 푸드 파트의 운영자가 회사로 찾아왔어요. 글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기회가 닿으면 고정컬럼을 써보지 않겠냐고...
몇달 뒤 회사를 그만 두고 나서 그 고정컬럼건을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노느라 너무 바빴거든요.
그랬는데, 그 푸드 운영자가 물어물어 연락을 했더라구요. 곧 사이트를 개편하게 되는데 고정컬럼을 맡아달라고.
참 직업병이라는 게 무서워서, 회사를 그만 두고 나서 한동안은 글상자만 보면 새글이고 댓글이고 마구마구 써놓고서는,
올리지 못하고 지워버리곤 했습니다. 안그렇겠어요? 20여년을 글써서 먹고 살았는데...
그러던 참에 고정컬럼이라니...원고료가 없는 건 문제도 되지 않았어요. 뭔가를 써야 직성이 풀리는 참에 멍석을 깔아준다는데...
그리해서 생긴것이 김혜경의 스마트 쿠킹, 그때 참 열심히 썼었어요.
1주일에 1번 정도 업데이트를 해주면 된다고 했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2번 이상 업데이트를 했던 것 같아요.
연재를 시작한지 한 두어달 지났을 무렵 디자인하우스에서 연락이 왔어요. 출판하자고...
사실, 제가 문화부 기자를 오래하면서,
제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것이 '김혜경 너는 책 내지 마라, 너까지 책내서 종이의 소비와 쓰레기를 늘리지 마라'였어요.
문화부에 있어보면 신간 소개해달라고 무수한 책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책 중 상당수는 도대체 이런 책을 왜 내나 싶은 것도 있죠.
그리고 책을 내놓고는 이런저런 연줄로 출판담당기자를 귀찮게 하는 등 민폐를 끼치곤 하구요.
첨엔 사양했어요. 책을 낼만한 인물이 못되고, 요리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다고...
몇 차례 만나서 설득 당하곤 계약서에 도장 찍고, 계약금까지 받았어요.
내용은 이러저러하게 쓰겠다 계획서도 냈구요. 그래 놓고는 따로 단 한줄의 글도 쓰질 못했어요.
그무렵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 출판돼 히트를 쳤고, 저도 그 책을 읽고는 원고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접었거든요.
게다가 SBS에서 '잘먹고 잘 사는 법'이 방영되면서 채식 위주의 식단이 유행하는 등, 제 책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완성원고를 주기로 한건 2002년1월이었는데, 2월이 되어서도 완성원고는 커녕 갖고있는 원고라고는 디지탈조선에 올렸던 원고 뿐이었어요.
계약서를 찬찬히 훑어보니, 위약금에 대한 조항이 없길래, 계약금만 돌려주고 손을 들어버려고 하고 있던 참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출판하자고. 원고를 6월말까지 털어달라고.
원고를 쓰려고 붙잡고 앉았는데, 우리 축구가 월드컵에서 4강진출하는 바람에 어디 쓸수가 있어야죠.
...일하면서 밥해먹기 출판 뒷얘기를 쓰다보니,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 같아요...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