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들어간 동아리가 대학 방송국이었습니다.
대학방송국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까지 쳤었는데, 대학 입시에 합격했던 것보다, 방송국에 합격한 걸 더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암튼, 어느 동아리나 그렇듯 새내기들이 들어오고 나면 이런 저런 환영회가 줄지어 열리곤 하죠.
제가 들어간 방송국도 꼭 참석해야하는 이런저런 환영회 줄지어 열리던 중 여자국원만을 위한 환영회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학교 근처의 한 coffee&snack~.
여기서 coffee&snack이라 함은 낮에는 다방보다 약간 비싼, 간혹 원두커피를 내려주기 때문에,커피를 팔고,
밤에는 맥주나 와인류를 팔고, 오무라이스니 샌드위치 하는 가벼운 식사를 파는, 지금의 카페 비슷한 곳이죠.
다방보다는 약간 럭셔리했구요.
이와 비슷한 곳은 주다야싸라 불리는 곳도 있었어요. 주간에는 다방, 야간에는 살롱이라는 건데...
coffee&snack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암튼 학교 앞의 한 컴컴한 곳에서 열린 환영회에 가보니, 여자선배들이 어찌나 세련되고 예쁘던지...,
말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어휘를 골라내는 능력하며 좌중을 압도하는 화술...
이제 대학에 입학한지 며칠 되지 않는 이 촌뜨기는 잔뜩 주눅이 들어버렸습니다.
제가 더욱 주눅이 든 건 식사주문 때였어요.
그저 만만하게 주문할 수 있는게 오무라이스나 돈까스 정도 였는데, 한 선배언니가 '스빠게리'를 주문하는 거에요.
솔직히 그때까지 스파게티를 안먹어봤지만, 먹어본 척 하고 저도 그걸 주문했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그 언니가 미국에서 온 남자랑 선을 봤는데, '스빠게리를 스빠게리라 하지않고 스빠겍 리 이라 발음하더라'고 하는데,
걱정이 물밀듯 몰려오더군요..이상한 음식이면 어떡하나 하고...
막상 나온 건 짜장면 비슷한 거...젓가락 없이 이걸 어떻게 먹나 하고 보니...그 언니 포크에 돌돌 말아서 맛있게 먹더군요.
흘금흘금 그 언니를 곁눈길하면서 한 입 먹어보니...아..입맛에 잘 맞는거 있죠.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평범한 미트소스 스파게티였던 것 같아요.
그후 한동안 스파게티를 달고 살았어요...
이날 기억나는 멘트 하나,
고등학교도 선배이며 바로 1학년 위의 언니가 남녀공학에서의 처세법이라며 가르쳐주길,
무조건 남학생들에게는 택택거리며 쫑코를 펑펑 주라는거에요, 그래야 하는거라고...
전, 정말 그 말을 가슴에 깊이깊이 새기고, 선배고 동급생이고 간에 제게 말을 걸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면박을 줬다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기피인물이었죠, 제가요...
그런데 그 후에 보니 그 언니는 남학생들에게는 연한 배(梨)처럼 사근거리더라는...
이게 지금으로부터 석달 모자라는 30년전의 일입니다.
아까 TV에서 요새 홍합철이라며 홍합요리를 보여주는데, 갑자기 홍합을 넣은 매운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졌어요.
스파게티 생각을 하니..30년전의 추억이 생각나서..., 이 한밤중에 잠시 추억에 잠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