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유난히 무더웠죠? 저에게 올해는 유별난 더위 만큼이나 참 특별한 해인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키톡 발걸음 하면서도 마음이 바쁘고 번잡해 글을 못 올리고 차일 피일 했네요. ^^;
간만에 등장하면서 소소한 일상으로 인사 드리기엔 밍밍하고, 특색 있는(??) 밥상으로 다가.. ㅋ
한참 폭염으로 들어가던 초입에 남편이 무릎 수술로 입원을 하게 됐어요.
수술 받기 전엔 금식 해야하고, 받고 나서 한끼는 죽을 먹어야 한다는군요. 그런데 죽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밤 12시가 넘는 거예요. 그래서 이 해병대 식단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습니다.
가뿐하게 시작했죠. 아픈 남편을 위해 전복죽 쯤이야~
근데, 옆에서 지켜보니 병원 밥이 영 부실하네요. 병원 밥 별루인 거 몰랐나.
그래도 삼시세끼 꼬박꼬박 나오는 거 그저 감사히 먹어야 하는 것인데, 자꾸 팔자에 없는 모성애 돋습니다.
점심은 집에서 내가 싸오겠다 굳은 약조를 하였다지요. 어쩌자고 -_-
첫날은 재미지대요. 정육점 들러 소고기 부위 별로 사서 갈비탕 듬뿍 끓이고, 잡채도 넉넉히 해 소분해서
냉동실에 차곡 차곡 얼려두었어요. 자신감 만땅.
갈비탕 끓이는 여자에게 육개장은 껌이예요. 막 이래~. 닭새우 손질해 튀김까지 했군요.
튀김까지 있는데, 플라스틱 용기 좀 걸리네요. 제가 회사 다닐 때 갖고 다니던 도시락통이라 남편에겐
좀 작기도 하구요. 2박 3일 고민 들어갑니다.
성게알 미역국~ 이거 진짜 별미죠?
참기름 살짝 두르고 다진 마늘과 불린 미역을 달달, 아주 많이 달달 볶은 후 물 부어 푹푹 끓으면
성게알 투하! 간단하지만 재료 덕분에 진짜 명품 바다의 맛을 낼 수 있어요.
성게알 미역국에 메인 요리로 낙지 볶음, 그리고 브로콜리계란찜, 봄에 담가둔 곰취나물 곁들였어요.
뭔가 좀 달라져 보이지 않나요? 흣~ 이때만 해도 소꿉놀이 하는 기분이었던 듯.
큰 맘 먹고 대용량 스텐도시락으로 바꿨습니다. 그 무게 지탱할 계산은 아랑곳 않고~
성게알 미역국 끓인 다음 날에는 전복죽을 메인으로, 메추리알조림, 잡채, 깍두기.
저 풋고추 장아찌는 작년에 담가둔 거 처음으로 꺼낸 건데, 맛이 참참 잘 들었어요.
다시 한번 수고로이 텃밭 일궈 수확한 풋고추 선물해주신 지인을 떠올리며 감사했답니다.
이날이 초복인가 그랬을 거예요. 닭한마리는 뜯어 먹기도 힘들고, 백숙으로 푹푹 끓여
닭죽해서 동태전, 두부동그랑땡, 멸치, 호박나물 곁들였어요. 뜨거운 닭백숙에는 시원한
오이냉국 곁들였구요. 보온보냉이 참 잘돼서 냉국에 얼음이 녹지 않고 동동 떠있어 그도 역시 감사
그래도 꾀 부리지 않아요. 전복죽에 황태갈비 곁들였구요, 콩나물과 미역줄기볶음 김치.
국 + 메인요리 + 밑반찬, 나물 + 김치 뭐 이렇게 정리가 되어가네요.
남편이 제가 끓인 갈비탕을 참 좋아해요. 한꺼번에 끓여 얼려둔게 있어 이날은 좀 편한 나머지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감자전까지 부쳤네요. 불린 당면과 파는 따로 준비 하는데요, 포장해 가는 국은 팔팔 끓지
않으니 파는 최대한 얇게 썰어야 해요.
무더위에 이쯤 되면 정석이고 뭐고, 노하우신 내지 꽁수신 강림이어요.
소고기 미역국도 끓였어요. 불는 소면 대신 진미채를 가늘게 찢어넣은 골뱅이무침을 메인으로 멸치볶음,
느타리버섯 나물이예요.
이날은 색깔이 왜이리 중후한가요? 황태북어국에, 소불고기를 메인으로 가지나물, 미역줄기볶음.
금방 닫아야 따뜻할 텐데 밥 퍼넣고 국 담아놓고 사진 찍느라 식으면 어쩌는고? 걱정 끝!
이것도 한번의 실패를 통해 얻은 노하우인데, 한김 식히고 닫아야 열 때 낭패 보지 않아요. ^^
삼겹살 좋아하는 남편에게 고기 함 맛뵈 주겠다고, 된장양념에 재워둔 삼겹살을 바삭하게
구웠구요, 구수한 올갱이된장국 곁들였어요. 곰취나물까지... 이거면 더 바랄게 없죠? ^^
염증 내리는데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효과적이라고 해서 아이템 딸리는 김에 애정해주기로 했어요.
삼겹살을 구운 후 한김 날리고 보온통에 넣으면 식지도 않고, 굳지도 않고 딱 먹기 적당해요.
육개장 끓일 때 내놓은 육수로 사태우거지국도 끓였어요. 작년에 잔뜩 말려둔 시래기와 우거지가
요즘 효자랍니다. 브로콜리 또 있죠? 양파 채썰어 브로콜리와 함께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후
타르타르 소스로 버무려준 거예요.
생선구이도 함 먹어봐야죠? 냉동시켜둔 커다란 굴비 구워 뼈를 발라냈어요.
병원 침대의 보조 식탁은 식탁 뿐 아니라 책상으로도, 손님 오시면 상으로도 사용하는 거라
음식물 흘리지 않도록 가능한 한 입 크기로.
늦은밤 홈*러* 들렀는데, 양념 바다장어 세일하길래 사다가 도시락 싸기 직전 렌지에 데웠어요.
곰취나물과 싸먹으면 별미구요, 느끼 함을 잡아주려 골뱅이무침 매콤하게 곁들였어요.
육개장 씩이나 끓이면서 이날은 반찬도 가짓수가 많네요. 저 브로콜리 반찬은 동그란 두부
데쳐서 타르타르 소스에 버무린 거예요. 동그란 두부, 좀 비싸긴 하지만 부서지지 않아 도시락
반찬엔 요모조모 쓸모가 많겠더라구요.
카레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소고기와 느타리버섯, 양파 넣은 카레에 동태포를 생선까스 처럼 튀겨서
생선카레가스 분위기도 같이 내봤어요. 밥은 따로 있구요~ 곁들이는 반찬은 새콤달콤한 것들로.
꺅! 이 날이 마지막 날이었나봐요!! 소고기무국에, 오이나물, 잡채와 동그랑땡 만들다 남겨둔 거
꼭꼭 눌러 떡산적까지 곁들이는 정성이라니~ 흐, 끝이라니 좋았나 봐요.
참 제가 하고도 매일 매일 저걸 어찌 다했나 싶네요...
두어번 병원 1층 식당가에서 사먹은 날을 제외하곤 3주 동안 빠짐없이 도시락을 쌌어요.
아침에 남편 도시락을 싸두고 병원 가기 전에 꼭 이렇게 보이차를 마셨답니다.
24시간 중 유일하게 저만의 시간이었군요. 십수년 간의 직장 생활을 저답지 않게 대책 없이 접고 생각이
참 많은 요즘이예요. 아직은 딱히 계획이 없지만 더 늦기 전에 주어진 제 2의 인생 기회라 생각하고
야무지게 시작해 보려구요. 잘 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