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헤르미온느가 공항에서 김민지님을 픽업하기로 했어. 오는 길에 제주사는 푸른바당님과 그집 일곱살 먹은 총각도 픽업하고.
제주 하늘도 울산의 미녀 김민지가 뜨는 걸 아는 지, 어제는 하루 종일 꾸물꾸물하더니, 오늘은 활짝 개인거야, 아침 일찍부터.
오늘 새벽에는 까마귀도 안 울었는데, 일찍 잠이 깨져서, 미스테리랑 사우나에 갔었어.
한번 트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같이 목욕탕에 들어가고 나니, 두번째는 아주 자연스러워졌어. 미스테리에게 내 등판까지 내어 맡겼다니까..
사우나를 하면서 문득 깨달았어. 항상 아침이면 양 손목이 시큰거리고 아파서 잠에서 깨는데, 어제도 오늘도 전혀 아프지 않다는 걸.
컴퓨터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고, 밥이며 요리며 하지 않아서 그런가봐. 오직 한 가사노동이라고는 커피 탄것.
아니, 얘네들이 내가 탄 커피가 맛있다고, "선생님이 타주세요" 그러면서 내 손만 바라보는 거 있지? 히히, 물론 물끓이고 설거지는 내가 안했지만.. 김혜경 진짜 팔자 늘어졌지??
암튼. 내가 그동안 손목을 너무 혹사했던 것 같아. 근데...서울 돌아가면 도로 손목 아프겠지?
일행이 모두 도착하고 절물휴양림에 갔었어. 진짜 공기가 맑고 좋았어. 약수물도 한 바가지 먹고...경치가 좋더라는 말, 이젠 안해도 알지??
절물에서 나와서 돈내코라는 곳에 갔었어. 제주도 사람들 피서하는 곳이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숲속으로 한참 걸어가니, 자그마한 폭포가 있는 계곡이었어.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이곳은 덥지 않은 곳이라는데 진짜 그렇겠더구만...아주 시원할 것 같았어.
울창한 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숲속에 계곡이 있거든. 폭포가 떨어지는 웅덩이는 제법 깊어보였는데...
미스테리는, 뭐, 자기가 목욕하던 곳이라나...지가 선녀라는 얘기지..큭큭...
다음은 폭포를 한군데 가기로 했어. 천제연 천지연 등등 폭포가 여럿인데 한군데도 안가보면 서운하잖아.
어디로 갈까 하는 걸 내가 그랬지..."왜 있잖니..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폭포!!"
정방으로 갔어...정방엘 갔는데..오늘의 스타, 강현일군이, 자기는 여기 처음 왔다는 거야.
푸른바당도 시인하더만...아들 데리고 안와본 것 같다고..하하..이게 말이 돼? 제주도 사람이 정방폭포에 안와봤다는게..
근데 왜 현일군이 스타냐고?? 첨엔 만났을 때 푸른 바당이 그래, 아이가 '공손한 강서방'이라고 불리는 건 좋아하다고.
첨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들었는데..애가 어쩜 그래...하루 종일 끌려다니면서 단 한번도 짜증도 안내고, 보채지도 않고...
단 한번 절물에서 푸른바당에게 조그만 소리로 "포카리 스웨트..."하는 거야.
그것도 너무 일찍 엄마손에 끌려나오느라 아침을 안먹어서 배고파서 그러는거래.
헤르미온느가 얼른 데리고 가게에 가서 포카리 스웨트와 과자 하나를 샀는데..그 과자도 남기는 거 있지? 형아 가져다 준다고.
차에서 꾸벅꾸벅 졸다가도 "내려"하면 내려서 걷고, 엄마 근처에서 멀리 떠나지도 않고...넘넘 이뻤어.
내가 저, 이뻐하는 줄 아는지...지네 엄마 핸드폰에 내 얼굴 막 찍더만..다른 사람은 안찍고..아, 이 인기는 식을 줄 몰라...큭큭...
암튼, 푸른바당에게 아이들 육아에 대해서 글 좀 쓰라 했는데...모르겠어..쓸 지...꼭 썼으면 좋겠어. 애들을 제대로 키우더구만.
아, 물론 아이의 심성이 곱고 착하긴 하더라. 아무리 엄마가 교육을 제대로 해도, 아이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암튼 공손한 강서방, 내게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지. 탐나는 총각이던걸.
점심은...뭘 먹었는 줄 알아? 들어는 봤어? 꿩깐풍기?

우리의 헤르미온느, 서귀포의 원덕성원이라는 중국집을 알아뒀더라구. 여기서 꿩깐풍기와 게짬뽕을 먹었는데..진짜 맛있었어.
꿩은 무슨 가루로 튀겼는지, 물론 녹말가루겠지만, 무슨 비법이 있는지 너무너무 바삭바삭하고 맛있었고, 소스 맛도 환상이었어.
꿩고기 맛는 어땠냐고? 닭보다 훨씬 쫄깃쫄깃하고 뭔가 깊은 맛이 있었어.
이거..강추요리야...
게짬뽕도 아주 맛이 있었어.
내가 왜..꿩에게 원한 맺혀있잖아, 그 원한 풀었어...
무슨 원한이냐고? 왜 생각안나..어느 해 설 무렵 모씨가 선물로 털도 안뽑은 꿩 한마리 보내서, 그 털 뽑아주는 곳 찾느라 손에 꿩 들고 여기저기 돌아 다녔으나...
결국 닭 잡아주는 집 찾지 못해서, 집에서 내가 털과 껍질을 동시에 벗겨버리느라고 사투 벌인 일...
뼈에서 살만 발라내 잘 다져서 떡국 끓였던 일 생각 안나냐고오..., 어흑...지금 생각해도...꿩 준 사람이 어찌나 밉던지...
그때 꿩 깐풍기같은 요리법을 알았더라면 살코기 다지는 수고는 안하는 건데...분해..지금도..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면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게 뭐였는 줄 알아..한라봉..당신 좋아하는 한라봉..
어제 서귀포쪽 다닐때보니까, 길에 생산자 직매점이라고 써있는 한라봉집이 많은거야.
슬쩍 헤르미온느에게 차 좀 대줬으면 했더니, 헤르미온느는 이런데보다는 제주시의 이마트에서 사자는 거야.
그래도 난 그 생산자 직거래라는 게 땡겼거든. 그래서 정방폭포 근처에 있는 한라봉집에 가서 한박스 사서 부치고 싶었어.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한라봉...재밌잖아...그리고 농장에서 사면 최상품은 아니더라도 먹는데 지장없는 좀 싼 것도 살 수 있을 것 같고.
혹시나 싶어서 푸른바당에게 한라봉 농장 아는 곳이 없냐고 했더니 사촌시누이라나 동서라나, 암튼 가까운 친척의 친정이 한대.
연락 해보니, 바로 어제 모두 팔았다는 거야. 좀 아쉬웠는데, 잠시 후 다시 연락이 왔어. 상품 가치가 약간 떨어지는 물건이 있다고..
바로 이거야, 내가 찾는게...얼마냐고 물었더니...1㎏에 2천원이래..말도 안돼..너무 싸잖아...
한라봉값이 3㎏ 한상자에 최상품은 1만9천원 정도, 그보다 좀 적은 것은 1만5천원 정도인데, ㎏에 2천원이라니.

15㎏짜리 귤상자에 한라봉을 담으면 12㎏가 담긴대. 택배비는 6천원이고. 그래봐야 3만원이잖아.
얼씨구나 하고 두상자를 주문했어, 우리 집 꺼와 갈현동 꺼. 곧바로 보내달라고..내가 들고갈 수는 없잖아.
한라봉을 해결보고 나니..어찌나 개운한 지...선물 준비가 끝난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