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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선물

| 조회수 : 7,291 | 추천수 : 92
작성일 : 2004-04-09 23:13:31

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맡았던 파트 중 하나가 미술계 였습니다.
미술계가 단군 이래 최대호황을 맞았다는 89년부터 93년까지 미술기자를 했었어요.
기사 진짜 엄청 많이 썼었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전시회도 엄청 많이 열리고 미술과 관련된 사건사고도 많았어요.
새로 짓는 건물 마다 으례 1층은 갤러리가 들어앉는 가 하면 재벌가의 사모님들, 너나할 것 없이 미술관 관장 명함 들고 다니곤 하던 시절이었죠.

암튼 그때 해마다 봄가을, 전시시즌이 되면 책상위에 전시팸플릿이 어찌나 많이 쌓이는지 일일이 봉투를  열어서 팸플릿을 꺼내보는 것만도 큰 일이었죠.
어떤 때는 너무 바빠서, 제 책상에 팸플릿을 놓고 가는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서도 그 얼굴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일을 해야할 때도 많았어요.

하루에도 수십개씩 쌓이는 팸플릿 중 옥석을 가려내 소개하는 것이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 대목에서 참 맘 아파요. 모두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작품들을 玉과 石으로 분류를 했으니...
아무리 기자가 1차 비평가의 입장에 서서 독자들에게 소개해야할 것과 소개하지 않아도 좋은 것을 가려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많은 작가들에게 상처를 줬겠구나 반성도 해봅니다.
워낙 전시회가 많이 열렸으니까 하고 스스로 변명도 해봅니다만...

한정된 지면에 소개해야할 전시회는 많으니까 단신이라도 들어가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게다가 대형 상업화랑에서 기획해서 개최하는 저명 인기작가, 혹은 원로작가의 전시회라도 열리면, 무명작가, 비인기작가는 발붙이기 참 어려웠죠.

그때 일면식도 없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작품이 좋아서 소개를 하고나면, 수줍은 목소리로 감사전화를 하는 비인기작가도 있고, 아니면 손바닥만한 그림 하나를 들고와서 책상위에 놓고 가는 신인작가도 있고...

이 무렵 받은 선물이 문득 생각이 나네요.
한 한국화가, 그리 인기있는 작가는 못됐어요. 그런데 아마 그림이 좋았나봐요, 제눈에. 아주 짧은, 한 3줄짜리 단신을 쓰면서 작품사진을 게재했었던 모양이에요, 물론 기억은 나지 않죠. 그게 어느 해 이른 봄이었어요.

그랬는데 두어달 후 어린이날을 며칠 앞둔 날 한 여자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지하 다방에 있는데, 잠깐만 만나뵈면 좋겠다고...
내려가보니 아주 교양있어 보이는 제 또래의 여자분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가, 아무개화가의 안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더라구요.
'그저 장소와 일시만 소개돼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사진까지 나와서 감격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전 기억이 나질 않더라구요.
그러면서 고맙다고 내미는데 쇼핑백 안에 들어있는 건 학용품세트였어요.
'별건 아니지만 받아주면 좋겠다'고 내미는 걸 선뜻 받았어요. 정말 기분 좋은 선물이더라구요. 그분도 큰 돈 쓰지않고 준비한 것 같고, 저는 제 자식을 챙겨주는 마음이 고맙고...

그 작가의 부인이 그로부터 제가 미술기자를 그만둔 그 다음해까지 해마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그해에 남편의 전시회가 있던 없던 처음 받았던 딱 그만큼의 학용품을 사가지고 찾아오곤 했어요.
일년에 두번 만나서 서로의 자식들 이야기와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하면서 차 한잔을 나누곤 했어요.

부탁할 일이 있을 때 선물을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죠.
그렇지만 당장 부탁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두차례 남의 아이를 기억하고 학용품선물을 한다는 건 보통 정성이 아닌 것 같아요.

가끔 그 작가 부인 생각을 해봐요.
만약에 내가 그 입장이라면, 그렇게 정성들여 선물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저라도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속이 들여다 보이거나 말거나  좀 번듯한 걸 들이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선물은 정성인데....

이제 얼마 안있으면 어린이날에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선물때문에 머리가 뽀개지도록 아픈 계절이 돌아오죠?
게다가 저는 kimys생일에 친정아버지 생신까지 겹쳐있는 출혈의 계절이죠.

아무리 재정압박이 만만치 않은 달이라고는 하나 정성이 담긴 선물, 정말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주고 받아야 하는건데...
그런데 선물 준비하기 귀찮다고 흰봉투에 현금이나 상품권 조금 넣어서 내밀지는 말아야할텐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
2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라레
    '04.4.10 12:39 AM

    1등! 조각품에 대해서는 말씀 없으시네요.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 질감의 대비가 만지고 싶어져요...
    5월... (한숨 푹=3=3=3)

  • 2. 아짱
    '04.4.10 12:43 AM

    선물.....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이 함께 해야 하는데...

    주고도 욕먹을 수도 있고
    받고도 즐겁지 않을수도 있지요....

    많은 선물이 오고 가야할 5월에 앞서
    어떻게 준비해야하나 고민입니다....

  • 3. 김혜경
    '04.4.10 12:46 AM

    앞의 여자요? 박실씨라고 테라코타작업하는 작가의 작품이에요. 친구처럼 지내던 분이었는데, 서로 소식 전하지 않은지 참 오래됐네요.

    그뒤로 보이는 건 조각가 김창희선생님의 브론즈.
    벽에 걸린 건, 제가 좋아하는, 그동안 다른 그림들은 수없이 걸렸다 내렸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그림만큼은 12년 동안 저 자리에 걸려있는 황주리씨의 유화입니다.

  • 4. 서산댁
    '04.4.10 12:49 AM

    와 ..... 그래도 난 3등이다.

  • 5. simple
    '04.4.10 12:51 AM

    와*^^* 5위권이당~
    전 조각 넘 맘에 드네요..
    특히 색상과 질감의 대비가요..
    검은 돌위에 순백의 여인은 꼭 험한 세상에 순수한 모정을 표현한거 같아서 의미가 남달라보여요..(아, 엄마가 되려니 이렇게 해석이 되네요..머 작품은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라 생각하기에..^^;)
    낼은 친정엄마한테 전화해야겠네요,..엄마 보구파라 ㅠ.ㅠ 훌쩍..

  • 6. 서산댁
    '04.4.10 12:56 AM

    혜경셈. 제가 10대와 20대를 지나면서, 제일 부러운 분들이 누군지 아세요?
    4,50대 중년 부인입니다. 아이들 다 키우고, 경제적으로 자리잡고, 넉넉한 모습.
    여유로움, 한가함, 고상하고, 우아한 그런 분들이요....
    셈. 제가 그리던, 제가 되고싶은 그런 모습이세요.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가진 그런모습을 오래동안 간진해 주셨음해요.
    지금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 7. 제임스와이프
    '04.4.10 2:00 AM

    저도 대학부터 4,50대 부인들의 여유와 우아함을 늘 그렸습니다..
    샘을 만난적은 없지만..늘 느낌이 그러네요..
    샘의 글을 보면...
    조각품과 그림이 많으신걸 보니 어떤 부자보다도 부자시네요..^^*
    그래서 늘 푸근하셨군요.. ^^*

  • 8. 김지연
    '04.4.10 3:24 AM

    제가 선생님을 직접 만나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신뢰하는것은요,
    경제적으로 자리잡아 여유롭고 넉넉한 모습. 고상하고 우아한 그런것 보다는(아, 물론 이런것 다 있으십니다.^^)
    참 사소할 수도 있는 이런 작은 선물을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갖고 사는 따듯한 마음 때문이예요.

  • 9. 레아맘
    '04.4.10 4:04 AM

    작지만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간 선물은 받는 사람도 느끼는것 같습니다.

    저는 선물을 고르고 고민하는 그 시간들이 참 좋아요.......항상 자금이 문제지만..ㅡㅡ

  • 10. 솜사탕
    '04.4.10 4:52 AM

    지금의 마음을 항상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지.. 꾸준히 한다는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정성인것 같아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 11. 피글렛
    '04.4.10 6:02 AM

    이소라 노래 좋네요..
    기자 시절 어떤 부서에 있을 때가 가장 힘들고 아니 즐거우셨나요?
    신문과 잡지사 시절 얘기도 가끔 올려 주세요.

  • 12. 꾸득꾸득
    '04.4.10 8:14 AM

    우와 ,,,선생님글 보니 옛날생각 저두 나네요...
    전 선생님과 딱 반대 입장,,,,
    어쩌면 우리전시 기사 한줄내보나 싶어 팩스보내고 ,,전화하고,,,,팜플렛보내고.....
    갑자기 땀납니다..^^

  • 13. 소금별
    '04.4.10 9:44 AM

    선물 잘 고르는것두 능력인것 같아요.. 센스있게..

    선생님을 꼭 한번 만나보구 싶어졌답니다.. 오래전부터 뵙고 싶었지만...
    윗글을 읽고 그 마음이 커지네요..
    언제 뵐 수 있을런지..
    지난달 보니깐 무슨 파뤼같은거 하든데... 또 언제하나요???
    82, 놀러오기 시작한건 얼마되지 않았지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네요..

    저두 5월이면 정말 출혈이 심한계절이네요. 5,6,7,월 연속적으로다가..
    조금 무섭습니다... 하지만 이왕하는거라면.. 기쁘게 감사하는 맘으로 해야겠죠???

  • 14. noblesoo77
    '04.4.10 9:59 AM

    혜경쌤..
    전..잘 미술에 대해선 아는건 별로 없지만...
    고궁&미술관...가는거 그냔ㅇ 너무나 좋아하거든요..
    가면 맘에 편해요...
    선생님글 보니...오늘은...저두 미술관 오랜만에 가보고 싶네요^^*

  • 15. 코코샤넬
    '04.4.10 10:52 AM

    예리하신 아라레님.....^^
    5월은 정말 잔인해.......
    생일도 많고,스승의날,어버이날,어린이날 우아악...

  • 16.
    '04.4.10 1:51 PM

    감상하고 있자니 왜일인지 ㅠㅠ ㅠㅠ ㅠㅠ
    아~5월 코코샤넬님 말씀데로
    해경샘님 감상 잘 했습니다
    또 없어요?^^~감상할 작품~~~~^^

  • 17. 깜찌기 펭
    '04.4.10 2:06 PM

    저도 5월은 잔인한달..
    동생, 짝지.. 생일 연짱이네요. 큭-

  • 18. 성경희
    '04.4.11 12:34 AM

    저도 선물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선물은 준비하는 사람이 정성을 담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며칠전에 친구 한테 애기를 들었는데 스승의날 선물을 사랑에 열쇠를 해 드린다고 하네요. 금 한냥이 요새 얼마나하나요? 일반 소시민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이겁나네요! 내년에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는데 ...

  • 19. 칼라(구경아)
    '04.4.11 4:49 PM

    5월은 어버이날,생신에,어린이날.........
    무자게 바쁘게 돌아다녀야 선물을 구한답니다.
    백화점 세일기간은 난리도 아니죠~~~
    전 작년부터 이난리(?)에서 탈피를 했답니다.
    대신 집에서 꼼지락 꼼지락 찰떡만들기를 한답니다.
    이쁜한지 상자에 가득만들어 선물을 드리지요.
    학교 선생님은 넘 좋아하시더라구요.

  • 20. 호야맘
    '04.4.12 9:29 AM

    5월....
    돈이 마구마구 새나가는 달이지만...
    전 제 생일이 있어 기쁜달입니다.

    딱 제 대학시절동안 미술기자 생활하셨네요.
    저도 그림볼줄은 잘은 모르지만
    인사동으로 다른 갤러리로 그림보러 다녔었는데...
    선생님은 도대체 못하시는게 무엇일까??? 궁금해지네요.
    아니 열심히 직장생활하시면서 노력하셨기 때문이시겠지요?
    언제 만나게 된다면 이젠 그림얘기도 빼놓지 않고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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