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집 다용도실 창에서 내려다보면 녹번삼거리와 소방서가 보입니다.
고양시나 파주쪽에서 시내로 나가려면 통과해야하는 길, 그래서 항상 교통량이 많은 곳.
오늘은 비 탓인지, 다른 날보다도 교통 정체가 더욱 심하네요, 하루 종일 차가 꼬리를 물고 서있었어요.

어제 남겨뒀던 재료들을 가지고 음식을 조금 만들었습니다.
해파리냉채랑 샐러드랑 해삼탕이랑 아나고구이랑 새로 하고,
따로 뒀던 문어숙회와 전, 나물도 담고...
생전 한병 꺼내 마시지도 않으면서 모아두기만 한 술중에서 두견주도 한병 꺼내고...
토요일마다 아파트 마당에서 열리는 알뜰장에서 수박 한덩이도 사고...
어머니가 매일 출근하시는 노인정에 가져다 드렸습니다.
저희 아파트 단지는 세대수가 작은 편이라 거주하는 노인들 역시 적은 편이에요.
그래도 처음 노인정이 문을 열었을 때는 다른 동네에서 노인들이 많이 놀러오셔서, 20명 정도?, 아주 북적였었죠. 노인들이 월회비를 걷어서 점심해서 잡수시고 노시곤 했어요.
그랬는데, 근처에 무료로 점심을 주는 복지시설이 생겼나봐요. 손수 밥을 짓지 않아도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 다른 동네에서 오시던 노인들이 그리로 가시면서 회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지난해에는 바로 옆단지의 새 아파트에 노인정이 문을 열었어요. 우리 아파트 노인정으로 오시던 다른 동네분들이 그리로 옮겨 가셨죠. 그 바람에 우리 아파트 노인정의 여자노인실에는 고작 서너명이 계세요.
오늘도 음식을 싸가지고 가서, 문을 열어보니 저희 시어머니를 포함해서, 다섯분 계시네요.
한결같이, 깊은 주름에 굽은 허리, 청력(聽力)도 약해진 노인들....
기운없고 쓸쓸한 할머니 몇 분이 힘없이 앉아 계셨습니다.
한때는 저 분들도, 꽃다운 처녀였을텐데...,
한때는 저 분들도, 남편 수발에 자식 양육에 분주한 나날을 보냈을텐데...,
한때는 저 분들에게도 큰 꿈이 있었을텐데...
오늘따라 음식을 받으시면서 좋아하는 노인들을 보면서 가슴이 왜 그리 서늘했는 지 모르겠어요.
특히나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니 왜 그리 기분이 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어머니 올해 연세가 여든여섯이세요. 디스크수술에, 골절수술에 거푸 수술을 하셨지만 아직 정정하고 건강하세요.
그렇지만 몇년전부터 해마다 어머니 생신을 치르고나면, 착찹해지곤 합니다.
연세가 많으시니까, 정말 잘해드려야 하는데, 그건 생각뿐이고,
별로 좋은 며느리, 다정다감하고 살가운 며느리가 못되는 제 자신을 질책해보기도 하고...
자주 찾아뵙지 않는 동서들이나 시누들에게 다소 서운한 마음도 들고...
그리고, 제가 우리 어머니 연세 때에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걱정도 생기고...
평소에는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새삼스럽게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가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의식하면서, 반성해보는 비오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