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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외숙모의 칠순

| 조회수 : 8,941 | 추천수 : 93
작성일 : 2004-07-17 13:44:26

어제 저녁 남산의 H호텔 부페식당에 갔었습니다.
제 작은 외숙모의 칠순이셨거든요.

솔직히, 전 저녁 초대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머니의 저녁준비를 해놓고 가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나가기 전부터 진이 빠져버리거든요.
어머니 저녁 좀 차리는 걸 가지고 웬 생색? 하고 하실 지 모르지만...
약속시간이 너무 이르면 저녁상을 봐놓은 후 한참 뒤 드셔야하기 때문에 음식의 온도 같은게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거든요.
또 허둥지둥 어머니 저녁 준비하고 나서 옷갈아입고 화장하고 나서려면 괜히 기분이 나빠져요. 나가기 싫어지고.
그래서 저녁 약속을 좋아하는 편은 못되죠.
가능하면 점심으로 하려고 하고...

어제도 약속시간이 오후 6시였어요.
며칠전 행사를 알려주시던 친정어머니는 당신 친정 행사이다보니까, 당연히 저는 못오는 걸로 아시더라구요.
"시어머니 저녁 드려야지 니가 어떻게 오겠니".
저도 진빠져서 가기 싫었는데, kimys가 가자고 하더라구요.

사실 우리 작은 외숙모 칠순에는 제가 꼭 가야해요.
왜냐하면, 오빠랑 저랑 엄마아버지 떨어져 있을 때 저희를 돌봐준 분이 바로 이 작은 외숙모거든요.
군인으로 이리저리 전근다니시던 아버지를 따라서 엄마와 동생은 같이 가고, 오빠랑 저랑 갈월동 작은 삼촌댁에 있었어요.
우리 작은 외숙모, 큰며느리도 아니면 시어머니 모시고, 시집 안 간 시누이(막내 이모)랑, 시집 간 큰시누이의 두 아이랑 같이 싫은 기색 없이 사셨으니...참 대단하죠?
작은 체구에 얼마나 바지런한지 집안을 반들반들하게 청소해놓고, 빨래도 하얗게 빨아널고, 음식 솜씨는 또 얼마나 좋으셨는지...

아직도 기억나는 외숙모의 생선조림.
고등어니 아지(전갱어)니 하는 거 맛나게 조려놓으시면 부모 떨어져있던 저희 남매,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봄이면 담아주시던 하루나 김치며, 다시마 튀겨서 설탕 솔솔 뿌린 튀각이며...
점심에 별 반찬이 없으면 마른 오징어를 구워서 방망이로 밀어 쪽쪽 찢은 다음 고추장에 찍어 먹도록 해주셨는데,
물 만 밥과 같이 먹던  그 오징어의 맛..아, 그리워라...
외가집에 있으면서, 외로움같은 거 모르고 살았죠.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만해도 이따금 명절이면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갔었는데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 많이 멀어졌어요.
친정이란게 그런가봐요, 부모님 돌아가시면 멀어지는...
친정어머니, 외할머니 살아계실 때도 그리 친정을 자주 가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12년전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 거의 친정에 안가시는 것 같아요.
엄마가 그럴진데, 저는 더 하죠. 시어머니 모시고 있는 입장이고..

비가 오는데 친정부모님 버스 타고, 택시 타고, 가시는 거 싫어서 오후 3시부터 어머니 식사준비를 해놓고, 갈현동으로 갔어요.
친정부모님 모시고 H호텔에 들어섰는데...
아, 로비에서 만난 제부가 절 보자마자, "처형 오늘도 안오면 확 삐질려구 했어요"라고 농담을 거네요.
저희 작은 외삼촌에게는 딸이 둘이 있어요.
모두 결혼해서 딸 둘씩 낳고 잘 사는데, 저희 외할머니 살아계실때 이따금 외가에 가면 그 제부들과 고스톱도 치고 놀았거든요.
그랬는데 얼굴 못본지 몇년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이런 농담 들어도 싸죠.

가족들만 모인 어제 저녁, 룸에 마련된 테이블이 셋이었는데, 하나에는 1대- 엄마네 형제 내외들, 또 하나에는 2대-자식들, 또 하나에는 3대-손자손녀들...오랜만에 만났지만, 바로 며칠전에 만난 사람들인듯 재밌게 얘기하면서 놀았죠.
그런 가운데 우리 김무전할머니 생각도 나고...
특히 외할머니가 제일 사랑하시던 작은 외숙모의 큰딸 M을 보니, 할머니 생각이 더 나더라구요.
"M아, 너 할머니 생각나니?"
강북구의 한 중학교 미술선생님인 M, "그럼 언니...길에서 우리 할머니 비슷한 할머니만 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걸"
저도 가끔 외할머니가 그리워서 눈물짓는데, M은 더하겠지 싶어요.  
할머니가 퍼뜨린 자식들이 어제 그렇게 한 방 가득 모였었는데, 할머니는 그걸 아시려는지...

저녁먹고 헤어지면서 큰 제부 그러네요, 좀 자주 보자고..., 처형 얼굴 잊어버릴 것 같다고...
그래야죠, 다 가족인데...그런데 왜 이렇게 사는게 빡빡한지, 얼굴 보기가 힘이 드는지...
그래도 노력해야죠.

p.s.
언니의 리빙노트 매일 읽는 M아, J야.
어제 애썼다...제부들에게도 애썼다고 다시 전해주고...
올 여름 가기전에 날잡아서 포천집에서 만나자.
어제 못간 C오빠도 데리고 갈께....

그리구 회원가입해서 굵은 글씨로 흔적도 좀 남기고...
2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봄나물
    '04.7.17 2:29 PM

    앗! 1등인가봐용

  • 2. peacemaker
    '04.7.17 2:30 PM

    읽고나니.. 마음이 따뜻해져 오네요....

  • 3. 봄나물
    '04.7.17 2:31 PM

    진짜 일등이네요 ^^
    저도 결혼하고 나서 뵙는 친정 친지들
    그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왠지 더 당기고
    챙겨주고 싶고..

  • 4. 예은맘
    '04.7.17 2:39 PM

    어!! 이시간에 글을 올리셨네요.
    잔치 잘 다녀오셨어요. 비가 오는데 잘 마치셨나봐요.
    힘드셨겠어요. 다른친척분들두요.
    옛날생각많이 나셨나봐요. 좋은 주말오후보내시구요. *^^*

  • 5. 오데뜨
    '04.7.17 2:44 PM

    사람 사는 게 다 그런가 보네요.

    저희 엄마도 금년에 칠순이셔서 호주 여행을 부부동반 보내드렸는데

    결혼 안 한 아들 둘이 있어서 항상 근심걱정 안고 산답니다.

    제 때 재 때 짝 찾아 조용히 살아 주는 것도 효도인거 같아요.

  • 6. 몽쥬
    '04.7.17 2:46 PM

    샘님글읽으면 왠지모를 따스함이 느껴져요.
    조금전 울신랑한테 심부름보냈답니다.
    직장이 명동이라 남대문들러 샥스핀접시랑 유리잔사오라고..근데 남강유리를 잘 찿을수있을런지걱정이네요..

  • 7. 로렌
    '04.7.17 3:22 PM

    사는게 바쁘다보니 사촌지간도 맘먹고 날잡아야 보게되죠 ...해서 저희집안은
    두달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식사 한끼씩 내는 모임을 갖고있죠...역시 혈육들끼리 만나면
    젤 즐겁더라구요 ...샘님 작은외숙모님 참 훌륭하시네요 ....요즘같으면 어림없겠죠 ...^^

  • 8. 현서맘
    '04.7.17 3:25 PM

    샘님 글 읽으니 제작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요..
    절 참 이뻐라 하셨는데..
    마음이 그리움으로 그득해집니다...

  • 9. 밍키
    '04.7.17 3:46 PM

    선생님 저 녹차그릇에 녹차담으셨네요..
    잔치 그런거가 조금 뜸한 나이가 되었어요.. 한참 돌잔치 결혼식 이런거에 다녔었는데..
    인생의 가장 컸던 이벤트가 지난거겠죠? ^^

  • 10. 호야맘
    '04.7.17 5:39 PM

    결혼하면 친정챙기기가 정말 쉽지 않더라구요.
    언제나 시댁이 첫번째 손가락에 꼽히게 되죠??? 그쵸?
    신랑이 알아서 친정 챙겨주는 성격이면 좋으련만.....
    선생님 마음이 글에서 싸~~ 하게 느껴집니다. 뭔지 너무나 잘 알것 같아요.
    선생님보다 어리지만요....
    이제 좀 비가 개이려나????
    햇님 좀 보고싶어라~~~

  • 11. 싱아
    '04.7.17 5:48 PM

    요즘 시아버님이 와계시는데 정말 밥상 차리는거 큰일이더군요.
    새삼 어르신 모시고 사시는분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 12. noa
    '04.7.17 6:02 PM

    저도 리빙노트 읽는 것이 82에서의 제일 큰 즐거움입니다.

    (선생님, 저 컵이 스위스 제품아닌가요? 제가 꼭같은 거 주전자까지
    세트로 가지고 있는데, 차 걸르는 부분 유리가 잘 깨지니 조심하세요~)

  • 13. 으니
    '04.7.17 6:36 PM

    오랫만에 만났는데도 그리 화기애애하셨다니..마음이 훈훈해져여.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닌가봅니다.
    그렇게 가족들끼리 모여서 맛난 것도 먹고 옛날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나누고...
    친정식구들이나 시댁식구들이나 그렇게 모여서 즐겁게 지낸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잖아여......

  • 14. 혀니
    '04.7.17 11:02 PM

    훈훈한 가족사 읽으면서 왜 전 코끝이 쩅한지...

    엄마가 보고싶네요...

  • 15. 이론의 여왕
    '04.7.18 12:01 AM

    친척끼리 서로 친하고 위해주는 거, 모든 집안이 다 그런 건 아니랍니다.
    선생님께선 참 좋은 가족을 두셨군요.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 16. 김혜경
    '04.7.18 12:08 AM

    전엔 잘 몰랐는데...요새 가만히 생각해보면...제가 사랑이 많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아요...
    집안에 부자는 없는데, 정이 많은 사람들은 많거든요...그래서 요새는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사랑해준 가족 친척들에게...

  • 17. 핫코코아
    '04.7.18 12:29 AM

    선생님은 참 행복한 추억들이 많은거 같아요
    엄마쪽이나 아빠쪽에 사촌들이 무지 많아도 왕래가 별로 없이 커온 저로선 참 부러운 얘기들입니다
    뜬금없이 돌아가신 제 외할머니 생각이 나던 오늘...선생님 글 보니 다시 한번 맘이 싸아~해집니다
    조카들에게는 좀더 따스한 기억들을 남겨줘야겠어요..

  • 18. champlain
    '04.7.18 6:48 AM

    저 찻잔 넘 이쁘네요..
    오늘 밤 저도 차 한잔 끓여놓고 앉아
    가족 생각 맘껏 하렵니다..^ ^

  • 19. 햇님마미
    '04.7.18 7:54 AM

    샘님은 시외가를 가리지않고 어느쪽이든 최선을 다하시려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이십니다..
    저역시 시댁이고 친정이고 멀리 있는 터라 소소한 행사는 참여하지 못하고, 친정쪽은 더 그렇고, 그러니 자꾸 자꾸 형제들과도 친척들과도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자꾸 부대끼며 살아야하는데....
    샘님..
    오늘도 가족생각무지나시게하네요^*^

  • 20. 두들러
    '04.7.18 10:45 AM

    선생님 친청어머님 이야기에서 눈치챘지만 정말 따뜻한 집안분위기에서 자라셨네요.
    읽기만해도 마음이 좋아집니다..

  • 21. 모란
    '04.7.18 1:10 PM

    정말사촌들 오랜만에 만나면, 어릴적 생각나서 맘이 따뜻해지고 옛모습 남아있는 얼굴이 한없이 정겨워요...저도 갑자기 우리 사촌 여동생 보구 싶어요...

  • 22. 소금별
    '04.7.19 9:18 AM

    저두 외할머니 보고파용..
    큰딸의 늦둥이딸인 저를 얼마나 귀여워 하셨는데..
    제가 시집가서 아들낳고, 이렇게 자알 사는 모습을 보셨으면 무척 대겨내하셨을텐데..

  • 23. 로로빈
    '04.7.22 6:59 PM

    그래도 선생님 덕에 저희까지도 김무전 할머니 다 알게되었잖아요.

    김무전할머니표 김밥도 싸 먹고...

    외손녀가 최고라고 하늘나라에서 웃으실거예요.

    참, 이건 팁인데..

    저희 친정어머니는 할머니 (벌써 아흔 여섯이십니다.. 너무도 정정하십니다.) 식사 준비
    와 약속이 겹치실 때는 국은 조지루시 주둥이 넓은 보온병에 담아놓고 식탁에
    상 다 차리고 밥그릇, 국그릇 비워 놔두고, 전기밥솥도 식탁에 아예 올려놓고
    외출하신답니다. 울 할머니, 절대 가스렌지도 켜지 않으시거든요.
    그저 앉아서 받아 드시지...

    울 엄마도 이제 예순 여섯이신데, 정말 많이 힘들어하셔요. 본인이 너무 힘드셔서 두
    며느리한테는 여지껏 생신상 한번 제대로 받으신 적 없지요. 이렇게 힘들고 고된걸
    며느리한테 하루라도 시키리... 하면서요.

    안 해 본 사람은 별 거 아니라고, 지네들은 밥 안 먹나.. 숟갈 하나 더 놓으면 되지.. 하지만
    저희 엄마의 현재진행형인 시집살이를 봐 오면서 저는 그게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힘들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더 고된 일도 많겠지만 그게 감정이 개입되는
    문제라서.. 정신적으로 넘 힘들거든요.

    선생님도 조금은 편해지셨으면 좋겠네요.^^

    울, 할머니 아흔 세 살 되시는 해 부터는 작은 삼촌댁과 두 고모들이 순서 정해서
    3개월씩 모시고 있어요. 고모들, 예전엔 당당했지만 친정어머니가 나이가 많이 드실수록,
    그리고 정정하실수록 큰 올케한테 약간 미안한가봐요. 사십년 가까이 혼자 해 온 엄마를
    요새는 한 5프로 정도는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희 엄마도 예전에 정말 똑똑하단 소리 많이 듣던 분이셨는데, (K여중고, Y대 수석졸업에
    빛나는 재원이셨죠..) 종가집 맏며느리로 오셔서 완전히 시집살이로 점철된 인생이시네요.
    그리고 불행히도.. 아직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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