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가 이렇게 더워지기 시작하는 여름날에 상추쌈을 먹을 때면 생각난다시던, 우리 엄마 어릴 적 이웃에 살던 집 이야기 입니다.
우리 엄마가 어릴 적이었다고 하시니, 아마도 이제 막 전쟁의 폐허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던 1950년대 후반 즈음이 아닐까 싶어요...
이웃집 마당에는 늘 상추를 심어서 키웠다고 해요. 넓지도 않은 손바닥만한 마당이지만, 상추를 심어서 여름이 되면 꽁보리밥은 밥풀만 보이도록 얹어서 상추잎은 무척 큰 쌈을 싸서 먹이면 올망졸망 열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배를 채울 수 있었으니까요.
요즘에는 부모들도 계산이 밝아서 우리집 형편에 둘째 (혹은 셋째) 아이까지 키우는 것은 힘들다, 아니다, 하면서 미리미리 가족계획을 잘도 세우지만, 그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셔요. 피임법에 관해 무지하기도 했었고, 사람들의 인식이, 아이는 그저 생기는대로 낳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그래서 우리 엄마 이웃집은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 형편이었지만, 아이들이 열명 가까이나 되었다네요.
이렇게 알감자마냥 올망졸망...

그렇게 어려운 형편이다보니, 이런 고깃국은 꿈도 못꾸고...

푸성귀 나물이나마 배불리 먹이는 것이 쉽지 않은 형편이었대요.

참고: 신선초 나물 조리법을 몰라서 그냥 상상력으로 고안해낸 레서피입니다.

멸치 액젓과 된장 다진 마늘,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무쳤는데, 그런대로 먹을만하더군요 :-)

주의: 지금부터 무척 슬픈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날, 우리 엄마 이웃집에서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양으로 절규하는 울음소리가 나더래요.
알고봤더니, 그 열 명 쯤 되는 아이들 중에 하나가 무슨 병이 있었는지 시름시름 앓다가 잘 먹지도 못하고 좋은 환경에서 치료받지도 못하고 가엽게도 세상을 떠났더랍니다.
그 날로부터 몇날 몇일이 지나도록 그 어미는 그렇게 구슬피 울더라더군요.
아들도 많고 딸도 많고, 이미 자식들이 여러 명 있는데 그 중에 골골거리던 놈 하나가 세상 등진것이 뭐그리 새삼시리 슬픈 일이냐고 이웃 사람들은 위로했다(?)고 해요.
지금 우리들 느낌으로는 비정하고 못된 이웃사람들 같지만, 그 시절에는 어린 아이가 죽는 것이 무척 흔한 일이었고, 아직 남아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먹여야할 입 하나가 줄어든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난하던 시절이라 그랬다고 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이웃집 엄마는 오히려 못먹고 못사는 형편에서 아이를 잃었기 때문에 더더욱 슬펐을것 같다고 해요. 마음껏 먹이지도 못하고, 병원 한 번 못가보고, 아직 어린 목숨을 잃었으니, 엄마 마음이 얼마나 더 아팠겠냐고요...
자식이 단 한 명 뿐이라 소중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수많은 자식이 아롱이 다롱이로 있다고해서...

그 중에 하나쯤 없어진다고 해서 그 슬픔의 크기가 엔분의 일로 줄어들지는 않겠지요...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어린 자식을 잃은 아픔이나, 큰 자식을 잃은 아픔이나...
외동아이를 잃은 슬픔이나, 열 남매 중에 하나를 일은 슬픔이나...
부잣집 자식이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 자식이나...
전쟁통에 목숨을 잃으나, 병이나 사고로 운명하거나...
울엄마 어릴 적 옛날이나, 내가 엄마가 된 요즘이나...
암튼간에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참 잊혀지지 않을 슬픔이라고 생각되어요...
울엄마는 지금도 여름날에 상추쌈을 마주하실 때면, 그 옛날 이웃집 아이잃은 어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기억난다고 하셔요...
슬픔을 잘 참고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께 뽀나스 팁 하나 소개합니다 :-)

오므라이스를 계란으로 동그마니 감싸는 것을 손쉽게 하려면

이렇게 얇게 부친 계란을 동그란 대접에 깔고 볶은 밥을 담아서

접시에 뒤집어 놓으면 아주 쉬워요.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프리젠테이션이지만, 모른척 외면하면서, 숟가락을 똭! 들이대면, 끝!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을 링크합니다.
저는 이렇게 세월호 일을 추모합니다.
함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1820256&page=3&searchType=&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