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토크 게시판을 열심히 달궈 주시는 여러 님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저도 마침내 음식 사진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중고 가게에서 산 요리책으로 날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고 있어요.
어떤 날은 대성공, 어떤 날은 대실패...
그러나 저는 실패를 부끄러워 하지 않아요. 실패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을 배우는 좋은 기회니까요.
예를 들면 이런 거...
ㅠ.ㅠ
생강이 들어가서 오리엔탈 느낌 나는 쇠고기 스튜였어요.
모든 재료를 이렇게 꺼내놓고 사진 한 판 거하게 찍은 다음 요리를 시작했어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물 요리는 그저 다 때려넣고 푹푹 끓이는 것이 조리법이죠.
당근, 벨페퍼, 브로콜리는 넣지 말고 다른 재료만 먼저 약한 불에 한 시간 정도 고기가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끓입니다. 저 국물에는 특별히 화이트 와인도 들어갔습니다. 원래 레서피는 드라이 셰리를 넣으라고 하는데, 마트 술코너에서 어떤 게 셰리주 인지도 모르겠고, 그런 걸 파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해서 챗지피티한테 물어보고 화이트 와인을 대신 사서 넣었습니다.
고기가 잘 익었으면 나머지 채소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이고 전분 물을 넣고 불을 끄면 완성입니다.
제 눈에는 색깔도 좋고 제 코에는 냄새도 좋고 심지어 제 입에는 맛도 좋았어요.
하지만...
서양식 고기국물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아예 먹지도 않았고, 둘리양은 맛보라고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어주니 오만상을 찌푸리며 달아났어요.
코난군에게는 별점을 매겨 보라고 했어요.
별 한 개는 "두번 다시 이 요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별 세 개는 "수고하셨습니다. 그럭저럭 먹을만하군요"
별 다섯 개는 "다음에 또 만들어 주세요. 오늘도 두 그릇 먹을께요"
별 두 개와 네 개는 각기 중간쯤 된다고, 별 반 개는 없다고, 설명했더니 참으로 너그럽게 별 세 개를 줍디다.
아마도 큼직한 고기 덩어리 덕분이었을 겁니다.
이번 실패에서 배운 교훈:
쇠고기국은 무조건 얼큰하게 한국식으로!
그래도 다음 날 만들었던 바베큐 치킨 피자는 대성공이었어요 :-)
이번에도 모든 재료를 늘어놓고 사진부터 찍기!
피자 도우는 간편하게 시판 가루를 사다가 반죽했어요.
밀가루와 이스트와 물의 비율을 잘 맞추기 까다로워서 말이죠.
아니, 그런데 요리책의 글씨는 왜이리 작게 써놓았단 말입니까?
이래서 저는 부엌 서랍에 돋보기 안경을 항상 넣어 두고 있어요.
돋보기를 쓰는 순간 환~ 하게 시야가 열리는 느낌이 참 좋아요.
역시 사람은 문명의 이기를 누려야 하나봐요.
피자 도우나 기타 발효가 필요한 반죽은 저는 전자렌지를 활용해요.
물 한 컵 넣고 1분 돌려서 전자렌지 실내를 따뜻하게 만든 다음 발효할 반죽을 넣고 문을 닫아놓으면 온도가 기가 막히게 보존이 잘 되어서 발효가 잘 되더군요.
반죽이 발효되기를 기다리면서 닭고기를 후라이팬에 구웠어요.
올리브유나 식용유에 살짝만 익히라고 요리책에 써있었습니다.
이 닭고기 안심은 아트 선생님이 나눠주신 건데 정말 신선하고 좋은 제품이어서 결과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 구운 닭고기는 냉장고에 넣어서 식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또 잠시 기다리면서 양파와 실란트로를 잘게 썰어주었습니다.
저희집 마당에 작년에 심었던 실란트로가 스스로 씨를 뿌려서 올봄에는 저혼자 자라났어요. 그 잎을 조금 따다가 쓰니 싱싱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쓸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식힌 닭고기는 바베큐 소스에 잘 버무려두고 이제 반죽을 밀 차례입니다.
제가 예전 글에서 자랑했던 스텐레스 빅 도마 (또는 싱크대 상판 보호판) 가 이런 작업에 아주 좋아요.
미리 한 번 구운 도우 위에 바베큐 소스 바르고 모짜렐라 찌즈 얹고, 그 위에 닭고기, 그 위에 양파와 실란트로, 그리고 치즈를 좀 더 뿌려서 오븐에 10분 구우면 완성입니다.
오랜만에 돌판을 꺼내서 피자를 구우니 막 이태리 아줌마가 된 듯한 느낌... ㅎㅎㅎ
이건 모든 가족이 별 다섯 개를 줄 정도로 맛있게 잘 먹었어요.
치킨이 신선했고, 살짝 뿌린 실란트로의 향이 풍미를 더 깊게 만들어 주었어요.
또 다음 날은 나쵸 치즈 차우더를 만들었는데 색이 너무 예뻤어요.
이건 코난군한테서 별 다섯 개를 받았고, 남편과 둘리양은 먹지 않았어요.
저희 가족은 많지도 않은 숫자이지만 식성은 다 제각각인데다, 내키지 않는 음식은 아예 먹지를 않는다는 고약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맛있게 먹는 요리를 개발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렇게 서양 요리를 내리 며칠 먹었더니 속이 느끼해서 오랜만에 김장김치 꺼내서 김치찌개 한 번 푹푹 끓였습니다.
그리고 어젯밤에는 정말 정말 재미있고 신나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면서 야식을 먹었어요!
마트에서 할인해서 한 덩이에 3달러 하는 수박을 사왔는데 냉장고에 차게 식혀서 썰었더니 완전 꿀처럼 달았어요.
작년 크리스마스에 친구한테 선물받은 와인을 무려 여섯달 만에 까기도 했어요.
저는 술을 전혀 못마셔서 수박 좋아하고 와인 마실 줄 아는 친구 한 명을 불러 같이 이 멋진 장면을 감상했어요.
너무 가난해서 학교도 못가고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고, 그러다 몸을 다치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형편에 굴하지 않고 노력해서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변호사가 되고 오만 못된 사람들로부터 억울한 비판을 받아도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는, 드라마 보다도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
그러고보니 제 닉네임이
소년공 1 (one) 이군요 :-)
1번 찍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다졌어요.
우리 아이들이 유권자가 되었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키워야 하는 것이 4050 세대의 책임이라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