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잦아 가을걷이도 월동준비도 계속 밀리는 상황.
온전한 귀농생활도 아니고
목구멍에 풀칠하려면 본업도 챙겨야 하니
항상 시간에 쫒기곤 합니다.
농장에서 1박을 하며 밀린 일들을 한다하니
아내는 먹거리가 또 고민입니다.
농장에서 자는 날은 사카린소주가 주식이 되니......
점심으로 달래를 넣어 만든 양념장에 비벼먹는 콩나물밥이 별미입니다.
들깻잎과 가지는 조선간장으로 간만 맞춘 것인데
맛이 깔끔해서 참 좋습니다.
82의 어떤분께 된장을 구입할때
조선간장을 샘플로 보내주셨다는데 간장맛도 정말 좋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만 제대로 된 것이라면
복잡한 조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렇게 간단하게 먹는 것도 좋습니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게 되니......
고기좀 덜 먹자고 약속을 했지만
이런날은 힘들게 일을 하게되니
모처럼 집에서 뼈다귀를 한냄비 끓여 왔습니다.
배추뽑아 그늘에서 말린 배추시래기 듬뿍 넣어서......
술좀 그만 먹으라고 잔소리해봐야
우이독경에 마이동풍이니
잔소리대신 안주거리라도 잘 챙기자는 심산인 모양입니다.
하긴 뭐 지가 이나이에 과부되면 누가 데려갈 사람도 없으니
있을때 잘해야 허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엊저녁에 너무 뜨거웠었는지
일은 시작도 하기전에 팔다리허리가 뻐근하고...... ㅠㅠ
저녁 아홉시부터 비가 온다던 예보는 오늘도 땡~
오후 세시부터 내리는 비를 다 맞아가며
겨우내 사용할 장작을 준비하고 이일저일 부산을 떨었더니
날이 저물며 부는 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립니다.
그려~ 기상청 체육대회날 비가 왔다던데
앞으로도 계속 그러려무나~ 쭈~욱~~~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젖은 몸을 말리고 녹이고
허접한 방안 이불속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네평도 않되는 너저분한 방이지만
내 한몸 눕히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산속에서 자고나면 집보다 몸이 더 개운합니다.
이렇게 내 한몸 눕힐곳만 있어도 될 터인데
뭐하러 좋은 집 넓은 집을 찾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귀농하면 그래도 30평은 되야지 하는 이 간신같은 머리......ㅠㅠ
비가 잦다보니 표고목을 준비하는 일도 많이 밀렸습니다.
원래는 며칠 맑은 날이 이어진 후에 벌채를 해야 하는데
시간도 급하고
하긴 뭐 내 인생 자체가 교과서와는 거리가 먼 사이드인생이니......
엔진톱으로 부리나케 한시간여만에 80여개의 표고목을 베어냈는데
옮기는 일이 더 고역입니다.
숲이 너무 우거져 산속에서는 지게를 지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산위에서 굴리고 던지고를 반복해가며 개울가로 옮기고
그걸 다시 지게로 져다가 재배장에 쌓아야 하는데
개울도 바위투성이라
무거운 생목을 지고 내려가는 것도 장난이 아닙니다.
다리가 후둘후둘......
딸아이가 개울까지 내려와 채근하기를
아빠~ 점심준비 다 됐다고 얼른 올라오시래요~
그 애비란 놈 답하기를
자연아~ 엄마더러 내려와서 나를 업고 올라가던지
아니면 119헬기라도 불러서 산채까지 끌어 올리라고 해라~
후둘거리는 다리에 지게작대기마저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채에 당도하니
오호라~ 괴기굽는 냄새가 장난이 아닙니다.
모처럼 장작불에 올려진 찔긴것들을 반가운 눈길로 째려보니
'오늘은 정크푸드 먹는 날이여~'
그러고보니 아이들용으로 소세지도 굽고......
하긴 뭐 요즘세상에 어떻게 맨날 올바른 음식만 먹을 수가......
먹다남은 가지나물에 들깻잎에
비닐온실에서 뽑아온 배추에 ......
주인닮아 부실하게 생긴 배추는
꼬라지는 그래도 맛은 참 좋습니다.
단맛이 좋아 그냥 먹어도 맛있는......
겉만 번지르한 배추보담 훨 낫습니다.
거기다가 마당가의 곰보배추도 뜯어다가 쌈에 싸먹고......
곰보배추는 기침감기에 좋고 호흡기계통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데
만병초라 불릴만큼 특히나 현대인의 성인병예방에 상당히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장모님표 된장을 아끼느라 사먹는 된장은
만든분의 정성이 가득 담긴 탓인지 정겨운 맛이 납니다.
돈벌이를 위해 화학물질 듬뿍넣어 만드는 식품회사표된장과는
정말이지 차원이 다른 맛입니다.
이런 된장을 만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거하게 점심을 먹고 난 후식은 곶감~
집에서는 아이들의 성화에 애비몫을 챙기기 힘드니
마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로 당쇠몫은 농장 헛간에 따로 매달아 놓았습니다.
모처럼 따뜻한 햇살에 아이들은 고삐풀린 망아지들이 되고
마님이 찬찬한 발걸음으로 느긋하게 일을 하시는 와중에
다리풀린 당쇠는 이래저래 정신낫자루빠진 놈마냥
밀린일을 만회하려 애를 써 보지만
짧은 가을해는 어느새 산너머로 처박히며
그렇게 짧은 가을날이 또 속절없이 지나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