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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지금 차 한잔 하고 싶은 사람들

| 조회수 : 6,402 | 추천수 : 105
작성일 : 2004-01-14 22:39:07

오늘 아침 제일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매주 수요일 아침에는 확실하게 집에 있다는 말을 얼핏 했던 것 같은데 그 말을 기억해내곤, 수요일이라서 전화를 했대요.
토론토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간 남편을 따라서 딸 셋을 데리고 간 친구, 그 친구에게 얼마전 칭.쉬.를 부쳐줬더니 잘 받았다는 소식도 전할 겸, 추운 날씨 안부도 전할 겸 전화를 했더라구요.

"한국에서 전화하는 것보다 여기서 한국으로 하는 게 싸니까 넌 전화하지마, 내가 할께"하는 그 친구.
주방도구 같은 걸 보면 제 생각이 난데요. 전, 속에 뭐가 차오르는 것 같을 때마다 그 친구 생각이 나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후다닥 그 친구에게 달려가서 한참 하소연이라도 하고 왔거든요.
그럴 때마다 마치 언니처럼 절 다독여줬었는데...

"우리 딸들이, 니 책에 나오는 요리 쉽다고 부엌에 놓고 매일 한가지씩 하겠다고 한단다, 책이 아주 좋아" 하며 격려까지 잊지않네요. 옆에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차라도 한 잔하고 싶어요. 우리 고등학교때랑, 대학교때랑, 그리곤 결혼전 얘기하면서 사춘기 소녀처럼 깔깔거리고 싶네요.
우리가 나이 많은 아줌마라는 사실도 까먹고, 권지예의 작품이 어떻고, 은희경의 작품이 어떻고, 또 고 황창배화백의 그림이 어떻고, 황주리의 그림은 어떻고...
그 친구가 한국에 없으니 그런 얘기할 친구가 없네요.



이제 며칠후면 명절이죠? 이때쯤이면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주부들 너무너무 많죠?
저도 그중 하나구요. 이럴 때마다 한 후배가 생각나네요.
직장의 후배였는데...
저보다 나이가 한 여덟살은 아래인 것 같은데, 제가 존경심으로 대하던 후배에요.

그 후배의 남편은 아들 삼형제집 둘째 아들. 그랬는데 중간에 형님네가 미국 이민을 떠나 제 후배가 시부모님을 모시게 됐어요.
시어머니께서 난치병을 앓으셨거든요. 병 때문에 어머니가 우울해하신다고, 회사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웃음을 잃지 않는 그런 참한 며느리였죠. 시아버지도 지극정성으로 대하고...거의 10년쯤 시어머니 간병을 했던 것 같은데 얼마전에 돌아가셨어요.

그 후배도 아이가 셋이에요.
회사가 한참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이 불 때인데, 다른 부서에 있던 저를 찾아와서, "선배, 저 명예퇴직할까봐요"하는 거에요.
"왜? 명퇴 대상도 아니면서..."
"사실은 세째 아이를 가졌는데, 하느님이 주신 아이를 어떻게 하기 싫고..."
"..."
"구조조정 때문에 한 집의 가장 여럿이 등 떠밀려 퇴직하게 생겼는데 저라도 자진해서 명퇴하면 한명은 줄지 않겠어요."
"그래도, 대상도 아니면서..."
"아니에요, 이런 분위기에서 또 배불러서 회사 못다닐 것 같아요."
뭐라 할 말이 없더라구요. 이러구는 회사를 떠났어요.
그 후배, 지금 세째아이 낳고, 세 아이 잘 키우고 홀시아버지 잘 모시고, 그리고 남편 내조 잘 하고 삽니다.
그 후배를 생각할 때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요. 저는 조금만 힘들어도 kimys에게 힘들다고 징징거리는데...
그 후배, 자주는 못봐도, 명절 무렵이면 꼭 전화를 해요."선배 명절 잘 쇠세요"라고.
이번엔 꼭 제가 먼저 전화하려구요, 명절 잘보내라고.

그 후배처럼, 자기가 있어야할 자리와 떠나야할 자리를 잘 구별해야하는 건데, 전 그렇게 처신을 잘 하면서 사는 건 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또 한사람...
속이 너무 여리기 때문에 그 여린 속을 감추기 위해 매일 강한 척 하는 그녀, 센 척 하는 그녀...
그녀와도 지금 차 한잔 했으면 좋겠어요. 딸기맛 홍차로...
상처받은 여린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게...
3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jasmine
    '04.1.14 11:17 PM

    저두 그래요....못났죠...맨날 징징거리고.
    샌님도 명절준비 잘 하시와요.......

  • 2. 냠냠주부
    '04.1.14 11:18 PM

    뜨끈한 차 한잔 마시고 싶어요...

  • 3. 능소화
    '04.1.14 11:19 PM

    김치냄새 풍기며 고무신 끌고 갈까요?
    그 찻잔에 차 한 잔 주시와요

  • 4. 아라레
    '04.1.14 11:22 PM

    어..? 오리지날 징징이 여기 있는데요...
    다들 스트레스 안받는 명절 되었으면 좋겠어요.
    남자나 여자나, 시어머니나 며느리나, 큰동서나 아래동서나, 시누이나 올케나...
    모두 모두 다요. 부탁이에요~~~~ ^^

  • 5. 지영이
    '04.1.14 11:23 PM

    결혼하면 명절때문에 정말 스트레인가봐요.
    전 빨리 설날됬으면 좋겠는데...

  • 6. 싱아
    '04.1.14 11:24 PM

    저도 한잔 주시겠죠..........

  • 7. 김혜경
    '04.1.14 11:32 PM

    모두들 오세요...저 찻잔에 차드릴게요.

  • 8. 승연맘
    '04.1.14 11:33 PM

    명절은 아무리 일이 많아도 그나마 즐거운 것 같아요. 그때 아니면 만나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세배돈 나가는 건 좀...그래도 여태 받고 살았으니까 주기도 해야겠죠?
    이젠 절을 받는 나이가 되었습니다...아이구..세월아~

  • 9. 2004
    '04.1.14 11:39 PM

    반성합니다.....
    낼 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웃으며 살겠습니다.

  • 10. beawoman
    '04.1.14 11:40 PM

    결혼전에는 명절이 친구랑 차마시면서 이야기하는 날이었는데....

  • 11. 러브체인
    '04.1.14 11:46 PM

    저는 오늘 좋은 동생들이랑 휘리릭 백마에 가서 점심 거하게 먹고 프로방스까지 가서 코에 바람 넣고 왔어요..^^
    정말 서로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 하면서 함께 한다는건 너무 좋은일인듯 해요..
    어제까지 조금 우울했던 기분이 확 풀렸다고 할까요..
    내일 저녁엔 그 동생들이랑 또 신랑들까지 모여서 술한잔 기울이기로 했답니다..
    내일밤은 더 행복하겠지요..^^

  • 12. 거북이
    '04.1.14 11:53 PM

    oo님, 왜 자꾸 강한 척 하세요, 혜경 샌님 속상하게요.
    저도 그렇게 강한 척 하는 친구가 있는데
    젤 잘 통했죠.
    저두 이 밤에 그 친구가 많이 보고 싶네요!

  • 13. 이론의 여왕
    '04.1.14 11:55 PM

    저 찻잔에 차 주시면 눈물날 것 같아요...

  • 14. 준서
    '04.1.14 11:55 PM

    저요!저요! 차 마시러 갑니다.한번도 뵈온적이 없지만 매일 만난 것처럼 얘기 할 수 있을것 같애요.나의 짝은 구정에 입으라고 친정어머님이 3년전에 새한복을 해 주셨는데 이제껏 한번도 못입고 장롱 속에서 울고 있답니다.올해도 못입을 것 같은데....구정!!

  • 15. 조용필팬
    '04.1.14 11:58 PM

    정말 차 한잔 주실래요
    오늘 어제 마음이 무척 아팠는데
    울 딸래미가 도와 주네요
    따스한 차 한잔으로 마음을 다잡고 쉽네요
    울딸 아까 고민했는데 160m나 먹고 지금은 잡니다

  • 16. honeymom
    '04.1.15 12:30 AM

    저도 차 한잔 주세요...
    전 명절 스트레스는 아니지만..어디로 도망쳐 버리고 싶다고 종일 징징대고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건지..
    따뜻한 차 한잔 하면서 혜경 언니랑 이런 저런 얘기 나누고 나면 좀 힘이 나려는지..

  • 17. orange
    '04.1.15 1:10 AM

    와~~ 도화문이네요... 딸기홍자 담으면 넘 이쁘겠어요....

  • 18. kate
    '04.1.15 1:10 AM

    글이 참 따뜻합니다.

  • 19. YoungMi
    '04.1.15 2:14 AM

    차한잔 마셨다고 생각할께요^^
    차 셋트도 넘 이뻐요~~
    선생님 명절 평안히 즐겁게 잘 보내세요~~

  • 20. champlain
    '04.1.15 3:51 AM

    저도 차 한잔 주셔요..~~
    요즘 날씨가 추우니 따끈한 차 한잔 손에 쥐고 마시는 즐거움이
    너무 소중하네요.
    언젠가는 선배님이랑 마주 앉아 수다 떨 날이 오겠죠?

  • 21. ellenlee
    '04.1.15 8:04 AM

    저도..마시라고는 안하셨지만^^;; 한잔 먹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22. 뽀로로
    '04.1.15 8:58 AM

    목감기가 한 열흘째 안 낫고 있는데 샘님이 따뜻한 차 한잔 주시면 뚝딱 나을거 같아요. 저도 마신걸로 하고 빨리 쌩쌩해져야지~

  • 23. 은맘
    '04.1.15 9:08 AM

    차 한잔 주신다고 한지가............... 한 밤 꼬박 샜네요. ^^

    그 한 밤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이 샌님의 이뿐 찻잔으로 이미 한잔씩 마신것 같고.....

    저두............ 샌님의 소담스런 얘기를 듣다 보니 차 한잔이 벌써 비워져 갑니다.

    한 잔 더 주실거죠? ^^

  • 24. 테디베어
    '04.1.15 9:50 AM

    항상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친구들이랑 차 한잔 마셔야겠네요....

  • 25. didid
    '04.1.15 10:33 AM

    혜경샘님.. 저도 그런 칭구하나 있는데..마침 그 친구도 캐나다에 공부하러 남편이랑 가 있답니다. 떨어져 있어도 힘들때면 늘 저의 힘이 되어주곤 한답니다.
    그리고 어느날 저에게 편지를 썼는데 마치 엄마처럼 '늘 너는 잘 되었으면 하는 친구란다~' 라고 썼는데 보면서 눈물이 찡 하더군요.
    일이 잘 안 풀려도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복이겠죠?

  • 26. happyrosa
    '04.1.15 11:36 AM

    저 어제 요리책사서 바로 가입한 초보주부예요.
    바쁜직장생활에 살림도 잘하고픈 욕심은 있어서 힘껏하다 조금 지치면 신랑에게 불평이었는데 부끄럽네요.
    어젠 바로 새우 칠리소스에 도전했답니다.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었지만 맛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책에 있는 것보단 무지 걸리더라구요. 지금은 드롱기인지 하는 오븐이 사고싶어 미치겠습당. 걍 사버릴까???

  • 27. 아프로디테
    '04.1.15 11:38 AM

    저도 결혼하고 1년 조금 넘은 시간동안, 처음의 그 감사했던 마음을 많이 잊은거 같아요..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기를 다짐합니다.
    저도 글 읽으면서 떠오른 그 친구에게 전화해야겠어요..

  • 28. 훈이민이
    '04.1.15 1:59 PM

    저도 한 이년전부터 명절이 괴로워지네요.
    9년 결혼생활에 처음엔 잘 몰랐는데....

    가끔 내가 이렇게 많이 누리며 살아도 되나?
    하고 자문해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만을 위해서 살고 있더라구요.

    내가 피곤해지고 귀찮아지고 하는건 아예 싫고...
    샌님 후배 참 사람냄새가 나네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픈데...
    아직 수양이 덜되었는지
    아님 그릇이 모자라는건지....

    저도 차 한잔 주세요.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스한 차루요. 헤~~~

    그리고 강한척하는 분
    제가 보기에도 따스하고 인정 많으세요.
    눈보면 알잖아요. 땡그래서 겁도 많구...ㅋㅋㅋ

  • 29. 리미
    '04.1.15 2:59 PM

    반성 중입니다. ㅡㅡ;

  • 30. 바스키아
    '04.1.15 3:14 PM

    황창배 교수님 좀 까다롭긴하셨지만 소년같은 심성이 있으셨죠.
    이젠 뵐수 없지만 꿈에서라도 만나면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하고 싶읍니다.

  • 31. 푸우
    '04.1.15 3:30 PM

    너무 늦었네요,,
    차 다들 마시고 가셨나벼,,
    그냥 빈찻잔이라두 구경하고 갑니다,,~~!!

  • 32. 경빈마마
    '04.1.15 4:12 PM

    차를 마실 수 있다면 그만큼 마음도 나눌 수 있음이죠...

  • 33. 부천댁
    '04.1.15 5:27 PM

    차 한잔을 대접하고 싶네요.
    따뜻한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또 어깨가 천근만근될테지요...
    피할 수 없는 명절이기에 모두를 위해서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일겁니다.

  • 34. 아침편지
    '04.1.15 8:00 PM

    리필해 주세용,,,홍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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