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 중딩이 되어 사진을 찍지 않으려는 딸,
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모습이 싫어진 엄마.
<닭꼬치>
엄마는 이제 딸의 얼굴 대신 딸의 아침 밥상을 찍기로 마음 먹는다.
6월 한 달 엄마는 출근 준비로 바쁜 와중에 꼭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치즈돈까스>
치즈 듬뿍을 외치는 딸을 위해 엄마는 정말 치즈를 듬뿍 넣었다.
치즈로 찐 살을 빼려면 지구를 몇 바퀴 돌아야 한다고?..... 그런 건 잠시 잊어 버리자
하지만 딸은 잊어도 엄마는 결코 잊지 못한다.
그래서 기름에 튀기지 않고 오븐에 구웠다고 엄마는 어설픈 변명을 한다.
<훈제오리와 토마토볶음, 미역국>
딸은 질풍노도의 청소년이 되었다.
예전의 그저 순종적이고 온순한 그 딸이 아니다.
<닭볶음탕, 토마토볶음>
엄마와 아빠는 달라진 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다.
선배 엄마들의 얘기를 들으며 위로도 받고,
자녀 교육서를 읽은 다음 날은 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더 많은 사랑을 주자고 다짐을 한다.
<콘치즈, 샐러드>
엄마와 아빠가 매번 자기반성을 하듯이 딸도 잠자리에 들어서는 반성을 하지 않을까?
엄마는 그런 믿음으로 더 안아주고 더 정성들여 아침상을 차린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은 함께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으며 조금이라도 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참치죽, 샐러드>
지금 대부분 아이들은 기말고사 기간이다.
예전의 엄마 아빠는 이 즈음의 일요일은 늘 딸과 함께 도서관을 다녔다.
<상추쌈밥과 수제비>
아빠는 전날 밤 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일찍 일어나 아이들로 붐비는 도서관 자리를 잡기 위해 줄을 서고,
엄마는 점심 도시락을 챙겨 아이와 함께 문을 여는 9시 전에 도서관에 도착한다.
<고추장물>
대개 다른 집 엄마 아빠는 자리만 잡아주고 집으로 돌아간다.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온다기보다 친구와 놀기 위해 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이상한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열람실에서 책을 보고, 도시락을 먹고, 간식도 먹으며 하루를 꼬박 딸과 함께 도서관에서 보낸다.
혹 아이가 혼자 또는 친구들과 도서관을 간다고 하면 부모 중 한사람은 꼭 함께 가기를 권한다.
<제육볶음밥과 샐러드>
엄마는 근무 중 틈틈이 여행지를 검색하고 그 여행지의 볼거리, 먹거리 자료를 준비한다.
시험이 없는 주말에는 이렇게 찾은 여행지를 가족끼리, 때로는 딸의 친구네와 함께 찾아 다녔다.
부부의 취미생활이 닮았다는 것은 이럴 때 참 좋다.
아빠는 밤에 떠나 새벽에 도착하는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아이들과 엄마들 속에서 청일점 운전기사 역을 잘 해 주었다.
<베이컨계란볶음밥과 부시맨브레드>
그런데 이제 이 아이는 도서관과 산에 가는 것이 제일 싫다고 한다.
함께 여행을 가는 것도 싫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는 난감하다.
강요하지 않고, 모범을 보이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딸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베이컨계란볶음밥과 떡볶이>
엄마는 떡볶이 좋아하는 딸을 위해 가끔 국물 있는 떡볶이를 만들어 국을 대신한다.
주로 학교 가는 토요일에 이런 메뉴를 만드는 이유는 학교 갔다 온 딸이 점심으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육회>
아빠의 회식이 있던 날, 혼자 먹어 미안하다고 딸이 좋아하는 육회거리를 사 왔다.
늦은 밤이지만 엄마는 없는 배를 대신해 양파와 사과를 넣고 육회를 만든다.
딸은 너무 맛있다며 혼자 다 먹을 기세로 덤빈다.
이러고서 맨날 다이어트 중이라고 한다.
<유부초밥과 된장국>
북한군이 남한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는가?
남한에는 바로 고딩도 무서워 피한다는 중2가 있기 때문이란다.
바로 그 문제의 중2가 된 딸은 이제 도서관을 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겠단다.
<볶음우동>
아침부터 면이다.
딸은 면 위에 놓인 저런 푸성귀를 싫어한다.
싫어하는 줄 알면서 일관성 있게 꾸준히 밥상에 올리는 엄마는 놀부 심보를 가졌나보다.
그 놀부 엄마는 자주 쥐가 나는 딸을 위해 매일 아침 바나나를 우유와 갈아서 먹인다.
<여름 동치미>
엔지니어66님의 여름동치미다.
엄마는 좀 더 영양을 고려해 양배추 반 무 반으로 담는다.
아삭아삭 양배추 맛이 좋다.
면돌이 아빠는 곧잘 이 동치미 국물에 소면을 말아 먹는다.
<새우초밥, 샐러드>
딸은 자기 방에서 혼자 공부를 한다.
물 마시러 나오고, 화장실 간다고 나오고, 배가 고파서 나오고. 고양이와 놀기 위해 나온다.
엄마와 아빠는 심기가 불편해진다.
아빠는 차라리 함께 도서관을 가자고 다시 한 번 꼬드겨 본다.
딸은 나름 열심히 하는 중이란다.
<삼겹살구이, 겉절이>
누군가는 어떻게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냐고 한다.
하루 한 끼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딸에겐 아침만이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에 고기를 먹으면 점심때까지 속이 든든해서 좋다.
<샐러드, 청국장>
도서관을 안가니 엄마와 아빠의 주말은 갑자기 여유롭다.
엄마와 아빠는 협정을 맺는다.
한 달 동안 한 주씩 번갈아서 한 사람은 외출을 하고 한 사람은 딸과 함께 집에 있기로 한다.
<감자구이, 샐러드>
후배가 시댁에서 보내 왔다며 자색감자를 한 보따리 안겨 주었다.
색도 고운 것이 포실하니 맛있다.
엄마의 외출, 한 주는 언니들과 산을 오르고, 점심을 먹으며 보냈다
밥집 뒤 공터 큰 느티나무 아래 세 자매는 자리를 깔고 잠시 누워 하늘을 봤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눈부시다.
이 순간 엄마의 인생도 눈부시게 느껴진다.
엄마는 작은 행복을 느꼈다.
<양파장아찌>
모듬장아찌를 만드니 양파를 좀 더 많이 넣어 주면 좋겠다고 한다.
쿨한 엄마는 아예 양파와 청양고추만 넣어 만든다.
면돌이 아빠는 이 장아찌 국물에도 소면을 말아 먹는다.
매일 밤마다 소면을 삶아 먹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을 꺼라고 엄마는 생각한다.
<주먹밥과 계란찜>
딸은 제발 한번만이라도 채소를 넣지 않은 유부초밥이나 주먹밥을 먹게 해 달란다.
그래서 놀부 엄마는 멸치볶음을 넣어준다.
또 다시 찾아 온 엄마의 외출 주, 엄마는 친한 동네언니와 조조로 영화를 보았다.
<인 어 베러 월드> 용서와 화해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다.
이른 점심을 먹고 산에 가려 했는데 비가 온다.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팔짱을 끼고 출판단지 구석구석을 산책한다.
공원 한켠에 산딸기가 소담스럽게 익었다.
엄마와 언니는 추억을 먹었다.
<닭가슴살볶음과 콩국수>
엄마는 조화라는 말이 뭔 말인지 모르는게 분명하다.
닭가슴살볶음과 콩국수라니..... 이게 뭔 조합인가?
딸은 면과 닭가슴살만 골라 먹고 영양가득 콩 국물과 파프리카는 외면한다.
덕분에 몸에 좋은 건 다 엄마 차지다.
<칼국수>
누군가는 또 어떻게 아침부터 칼국수를 먹냐고 한다.
몇 번을 말해. 이 집 식구가 다 면빠라고.
수제비도 먹고 콩국수도 먹는데 칼국수라고 안 먹겠나?
절대로 아침을 먹어야 하는 딸과 달리 절대로 아침을 먹지 않는다는 아빠도 칼국수라면 한 그릇 비우고 출근을 한다.
<감자피자>
양파가 나오고 감자가 나오는 철이다.
손 큰 엄마는 한 보따리의 감자를 얻은 걸로 모자라서 20키로의 감자와 20키로의 양파를 주문한다.
그래서 당분간 감자 먹기 프로젝트다.
다행히 딸은 그 어느 피자보다 엄마표 감자 피자를 맛있어 한다.
<닭날개구이>
아빠의 외출 주간.... 도서관을 좋아하는 아빠는 혼자서 도서관을 간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빌려 온다.
어느 날은 혼자 헤이리를 산책하다가 황인용씨의 카메라타에서 오랜 시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고 한다.
엄마는 등산이나 다른 운동을 좀 하라고 충고를 한다,
아빠는 땀 흘리는 것이 너무 싫다고 한다.
땀 흘리는 것이 기분 좋은 엄마와는 참 다르다.
<비빔밥>
사춘기가 온 딸은 까칠해진 성격만큼이나 식성도 까다로워진다.
새로운 음식을 보면 냄새를 맡아본다.
오이, 파프리카, 표고버섯이 싫은 이유는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냄새가 싫기 때문이란다
딸은 그 또래의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잘 먹는 기특한 점도 있다.
마늘이나 양파 구운 것을 좋아하고 마늘 장아찌도 잘 먹는다.
파. 부추. 갓. 열무....등 모든 김치 종류를 좋아한다.
그리고 무말랭이나 깻잎장아찌, 콩잎장아찌를 아주 좋아한다.
<피클>
오이의 냄새가 싫다는 딸이 조금씩은 먹는 피클이다.
스파게티집의 노란 피클이 만들고 싶은 엄마는 약간의 울금가루를 넣었다.
<삭힌 깻잎>
아빠의 외출 주간, 엄마는 집안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지난 가을에 삭혀둔 깻잎이 여태 방치되어 있다.
다행히 멀쩡해서 여러 번 물을 갈아주며 군내를 제거한다.
딸이 좋아할 반찬 하나를 마련한 엄마는 흐뭇하다.
<무짠지>
역시나 지난 가을에 담아 둔 무 간장 장아찌.
몇 번 건져서 김밥을 싸먹었는데 한동안 잊고 살았다.
<매실>
지난 봄에 담은 것을 이제야 걸렀다.
실한 과육이 아까워서 엄마는 살을 다 발라낸다.
이미 매실 고추장도 만들었는데......저것을 어디에 쓸꼬?
<된장>
언젠가 담은 막장이 엿질금을 많이 넣어 달았다.
콩가루, 메주가루 더 넣고 치댔더니 제법 맛이 살아난다.
이렇게 미뤄 놓은 일이 많았던 것을 보니 엄마의 정신은 한동안 가출했었던 것이 분명하다.
<묵은지 된장지짐>
된장을 치대며 여기저기 묻은 것을 멸치육수로 헹궈 내고,
냉장고에 있는 김치류를 모두 꺼내 씻어서 오래오래 지진다.
냉동실에 있으리라 믿었던 바지락에게 배신을 당한 김치와 된장은 저 둘이서 구수한 맛을 만들어 낸다.
아빠는 이 지짐이 없어질 때까지 매일 밤 여기에 소면을 말아 먹는다.
뭔 맛이냐며 시덥잖아 하던 엄마는 아빠가 한 입 물려 준 국수 맛을 보고는 아예 그릇 채 뺏어 먹는다.
딸까지 나서서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아빠는 억울해 하며 다시 국수를 삶는다.
<잡채>
딸은 이민호 잡채를 해달라고 한다.
고기 반, 당면 반..... 이름하여 반반잡채라나.
놀부 엄마는 파프리카, 버섯, 양파, 콩나물을 넣었다.
<잡채밥>
엄마는 요즘 등산에 재미를 붙였다.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하는 아빠는 그냥 산책이나 하자고 엄마를 설득한다.
<오미자 원액>
딸은 어려서 잘 마시던 매실액을 어느 순간 거부한다.
지난 가을 담아 두었던 오미자 원액을 타서 주니 이쁜 색감 덕인지 군소리 없이 마신다.
<김밥>
짠지를 무쳤으니 김밥을 싸야 한다.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빠와 딸은 햄이 들어가지 않은 김밥은 김밥이 아니라며
제대로 된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땡깡을 부린다.
‘직접 만들어 먹던가‘ 엄마의 무시는 늘 의연하다.
<오징어 덮밥>
딸은 여전히 물 마시러 나오고, 화장실 간다고 나오고, 배가 고파서 나오고. 고양이와 놀기 위해 나온다.
엄마와 아빠는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을 꾹! 꾹! 눌러 담는다.
엄마와 아빠의 몸에는 사리가 백 개쯤 생겼을 것 같다.
엄마는 가끔 책을 왕창 구입한다.
이 책들은 지난 3월에 구입한 것이다.
지*랄총량의 법칙이라고 들어봤나?
김두식 교수의 인권이야기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내용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한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
어떤 사람은 사춘기에 그 양을 다 소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든지 어쨌든 죽기 전까지는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단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의 양을 소비하느라 그런 것이겠거니 여기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며 이해하는 마음까지 든다는 것이다.
지*랄이란 거북한 표현이 어쩜 이리 마음에 착 안기고 감기던지?
지금의 엄마에게 너무도 위로가 되는 글이다.
말 안 듣고, 말 안 하고, 삐딱선을 타는 까칠한 자녀 때문에 몸에 사리를 쌓는 엄마라면 한 번쯤 읽어 보시라고 권해 본다.
먼저 주문한 책은 다 읽지도 않고 책 욕심 많은 엄마는 또 지름신을 맞이한다.
요즘 엄마의 지름신은 책으로만 와서 참 다행이다.
82쿡 초기에는 그릇 지름신이 내려 앉아 탕진한 가산이 어마어마하다.
엄마는 82쿡 컨닝족이다.
오랜 잠수생활 중에도 잠시도 82쿡 곁을 떠나지 않고 정치,경제.사회,문화.가정과 가사,종교,인간에 대한 이해까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운다.
엄마에게 82쿡은 예나 지금이나 없어서는 안 되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다른 책보다 늦게 혼자 배송되어 온 책이다.
‘세월이 화살 같다’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를 읽는다.
어느 새 가슴은 뜨거워지고, 눈시울은 붉어진다.
참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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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책 이야기로 끝이 나는군요.
유행지난 ‘다’체이지만 저도 꼭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컨닝족이니까요. *^^*
글이 길어 지겨울 수도 있다고 미리 경고라도 드릴 걸 그랬나 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