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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고사리에 얽힌 얘기

| 조회수 : 2,121 | 추천수 : 14
작성일 : 2004-02-27 05:56:04
MBC 강변 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았던 "흥보가 기가 막혀" 가사 기억하세요?

"아이고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리오 이 엄동설한에 어느 곳으로 가면 산단 말이오 갈 곳이나 일러주오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아따 이 놈아 내가 네 갈 곳까지 일러주랴 잔소리 말고 썩 꺼져라이"

사실 이건 판소리 흥보가를 그대로 따온거죠.


"아이고! 형님, 동생을 나가라고 허니 어느곳으로 가오리까 갈 곳이나 일러주오. 이 엄동 설한풍에 어느곳으로 가면 살 듯 허오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든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이 놈! 내가 너를 갈 곳까지 일러주랴, 잔소리 말고 나가거라" (박송희 창본집)

은나라 백성인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에 들어가고, 거기서 고사리를 캐먹다가 결국 굶어 죽습니다.  충절을 기리는 이 유명한 고사는 우리 노래에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백발가에도 나오고 봉산탈춤의 목중 대사에도 나오죠.
그런데 만약 고사리가 아닌 다른 나물을 뜯어 먹었다면?
답은, 영양실조로 비실비실 했겠지만 한참 더 살았을거랍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이민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사리를 뜯어다 먹는 걸 보고, 그 사람들 처음에는 질겁을 했답니다. 고사리가 독초이기 때문입니다. 말이나 소는 그걸 알고 고사리를 안먹거든요.  그래서 목장에 가면 커다란 고사리를 한 짐씩 할 수 있답니다.  처음에는 서양 사람들, 그냥 뜯어가라고 했다가 나중에서야 그것을 가져가 먹는다는 걸 알고는 몇불씩 내라고 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고사리가 독초임은 분명합니다. 짐승 뿐 아니라 사람들도 그걸 알았는지, 고사리를 먹는 민족은 세계에서 몇 안된답니다.  유난히 나물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이니까 고사리까지 먹는거죠.

절 반찬을 보면 고사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실은 고사리가 양기를 떨어뜨리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고사리에는 비타민B1을 파괴시키는 아네우리시나라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다리의 힘이 약해지고 원기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방광암을 유발시키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는 브라켄톡신이라는 성분이 아주 미량 들어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을 보시면, 아이고 고사리 못먹겠네 하실텐데 ...
우리나라에서는 고사리를 삶고 물에 우려내고 말렸다가 요리해 먹잖아요. 그 과정에서 독소의 상당 부분이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나물로 존재할 수 있었던거고, 서양사람들이 독초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식품으로 치는 것입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먹는 나물이 250여종이나 되는 걸 보면, 식문화에서 나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았던 게 분명합니다.
먹을 게 없어서 나물을 그렇게 찾게 되었다는 말이 그럴 듯 하게 들릴테지만 천만의 말씀.  봄이 되면 왕이 대신들한테 나물을 나눠주는 행사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물은 우리 식문화의 기본이었던 거죠.
저 어릴 적만 해도, 제 생일 떡에 들어가는 쑥은 제가 준비했고, 토끼풀 하면서 냉이, 씀바귀, 질경이 이런 나물을 한바구니씩은 했었습니다.
봄이 되면 청계산이 취나물 뜯는 아주머니들 옷으로 하얗게 덮였구요.
봄에 나물 하러 간다.  그것은 단순히 먹을 거리를 준비한다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애들, 나물이라는 게 뭔지, 어떻게 돋아나오는 건지 아나요?
곧 날이 풀릴텐데, 그러면 하루 날잡아서 애들 데리고 가까운 들판에 나가, 나물 캐는 것 좀 가르쳐 주세요.  그게 교육입니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경빈마마
    '04.2.27 8:24 AM

    벌써 우리집 텃밭에 돗나물 머리 꽁대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멋쟁이세요...^^

  • 2. 훈이민이
    '04.2.27 8:46 AM

    넵~~~
    옳으신 말씀...

    무우꽃님도 얼굴 공개하셔요.
    궁금해 죽섰시요...

  • 3. 에스프레소
    '04.2.27 10:06 AM

    전 다른 풀(?)들은 먹지않고,
    오직 고사리만 좋아하는데^^;;

  • 4. 여주댁
    '04.2.28 12:02 AM

    지난 번 울릉도에 갔더니 한 겨울인데도 성인봉오르는 산중턱에 고사리가 새파랗게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었더군요. 축축한 안개속에서 가득한 고사리에 감탄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울릉도에서 나물을 사려고 하니 거의 다 재배한 나물들이더군요.
    요즈음엔 위험하게 산에서 나물해오는 사람은 없고 밭에서 재배한답니다.

  • 5. 백김치
    '04.2.28 9:24 PM

    음~
    독소와 영양도 그득한 나물이라...
    무우꽃님 남자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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