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 응모] 건빵

| 조회수 : 4,026 | 추천수 : 30
작성일 : 2006-10-11 14:22:06



<< 건빵 >>


얼마전,
밀리는 길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길거리 상인들이 파는 간식거리중에서 특이한것을 봤다.
건빵이었다. 커다란 자루에 건빵을 하나 가득 담아놓고 작은 봉지에 덜어서 팔고 있었다.

차 창문을 내리고 천 원어치 건빵을 샀다. 그리고 한 알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코흘리게 어린시절, 아무런 의미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개똥아~ 대머리 깍아라~ 논산가면 건빵 준단다~'


*------------------------


이른아침,
용산역 광장엔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수많은 젊은 남여들로 북적거렸다.
유심히 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이었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 남자들 앞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착찹한 기분으로 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여동생과 그녀가 내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광장 한 가운데 서서 뒤돌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짧게 깍은 머리를 어색하게 어루만지며 싱긋 웃었다. 그녀도 싱긋 웃었다.

여군이 양 옆에 서있는 개찰구를 지나 역 안으로 들어섰고 구내 육교의 계단을 오르며
광장 한가운데 그대로 서 있는 그녀를 얼핏 보았다.

여군들의 상냥한 안내를 받으며 논산행 군용열차에 올라 착찹한 심정으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잠시후 덜컹 소리와 함께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분위기는 살벌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 쌔끼들 빠져가지고... 동작그만!!"

모자에 짝대기 두개 단 호송병이 군기를 잡기 시작했다.
다들 침울한 표정의 장정들은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군기를 잡혀갔다.
열차가 한강 철교를 건널때 한창 공사중인 63빌딩을 바라보며 군대의 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두어시간쯤 흐르자 다들 입 꾹 다물며 심각하게 창 밖만 바라보던 사람 들이 조금씩 표정이
풀어져갔고 서로의 신상이나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해 걱정스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전쯤 지날무렵 12시, 점심때가 되었다. 갑자기 호송병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큼지막한
국방색 종이 봉투를 하나씩 던져줬다. 건빵이었다.

정말 논산가니까 건빵을 줬다. 갑자기 어린시절의 그 노래가 생각나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러나 점심 대용으로 나누어준 전투식량 건빵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제 군대에 들어온지 몇시간밖에 안되 심란한 마음에 배고픔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판이니
건빵이 안중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다들 한알 두알 입에 넣어보곤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쌔끼들 빠져가지고... 건빵이 맛이 없다 이거지..."

호송병들이 가소롭다는듯이 웃었다.

열차는 완행열차처럼 쉬엄쉬엄 달려 어느덧 논산에 도착했다.
호송병들은 분주하게 다시 장정들을 군기 잡으며 인솔하기 시작했다.

"이~ 쌔끼들 빠져가지고... 똑바루 안서!! 느그들 내가 한마다 충고 하겠는데...
아까 나눠준 건빵 버리자 말고 다 챙겨가라! 내말 안듣고 버리는 놈이나
지나가는 동내 애들에게 던져주는 놈들은 내가 단언 하는데 3일안에 분명히 후회하게 될끼다!
알았나~!!"

줄 맞추어 부대까지 걸어가는 길가에 기다렸다는듯이 동네 아이들이 달려들며 소리쳤다.

"아자씨~ 간빵주세여~ 아자씨 간빵~~"

손에 무언가 들고 가는것이 번거로워 다들 호송병의 충고도 무시하고 기차에서 내릴때
은근슬쩍 두고 내리거나 동네 아이들에게 선심쓰듯 던져줬다.


그로부터 3일후...
아직 훈련은 시작되지 않았고 PX도 맘대로 출입 할 수 없는 바짝 긴장된 상태로 대기만 하며
먹을거라곤 하루 세끼 짬밥이 전부인 그때, 우리 장정들은 그날 호송병의 예언대로 무지하게
후회를했다.

다음번 건빵은 15일후에 배급 받았다. 한창 훈련을 받던때,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받은 건빵은
정말 하늘에서 내린 음식 같았다. 군용 열차에서 거들떠도 안보던 그 건빵을 다들 앉은자리에
후딱 다 먹어 치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군용 건빵은 그 양이 엄청나게 많다. 보통 사람이 한번에 다 먹기는
어지간히 걸신 들린 사람 아니면 힘든일인데 그때는 후딱 먹어 치웠다.

그 후 15일마다 건빵 배급을 받았고 점점 아껴먹는 사람들이 생겼다.
건빵 배급이 있는 날이면 건빵 도둑이 들끓기 시작했고 다들 자신의 건빵을 확보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취침 나팔 이후 어두운 내무반 침상에선 여기 저기 숨죽이며 몰래 건빵 먹는 소리가 들렸다.

와삭와삭......


*------------------------


도로는 야외로 나가는 차들로 여전히 막힌채로 기어가고 있었고, 길가의 건빵 장사는 아직 백미러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과 지루함에 서너알 건빵을 먹자 갑자기 답답해졌다. 가슴을 치며 소리 질렀다.

"컥컥~! 무울~~ 물~~~ 물 좀줘~~~ "



(에필로그)

입대 전송 할 때 우는 여자는 고무신을 꺼꾸로 신는다고 하던데, 정말 그말이 맞는것 같아.
주위에 물어봐도 입대 할 때 여자가 울었다는 친구치고 제대 이후까지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한번도 못봤거든.
정말 옛 성현의 말씀(?)은 틀린게 없다니깐...

그럼 내 여자는 어땠냐구?
아까 말했자나... 울지 않고 그냥 싱긋이 웃기만 했다고...

그때 알아 봤어야 하는건데, 그때는 몰랐거든...
입대 할 때 여자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하지만 이제는 알지.

입대 할 때 여자가 웃으면 그 여자는 평생 밤마다 옆에 누워 코를 골게 된다는 사실을...

어휴~ 시끄러...


----강두선...

2002-02-15




* 오래전에 쓴 글이고 82쿡 가입 후 처음 올렸던 글 입니다만,
  '내게 너무나 특별한 음식' 이라니 생각이 나서 다시 올려 봅니다.
   건빵도 음식이긴 하지요? ^^

강두선 (hellods7)

82cook에 거의 접속하지 않습니다. 혹, 연락은 이메일로...... hellods7@naver.com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깃털처럼
    '06.10.11 2:34 PM

    ------입대 할 때 여자가 웃으면 그 여자는 평생 밤마다 옆에 누워 코를 골게 된다는 사실을.

    글쿠나.. 저도 그래서... 지금 코골아요.ㅋㅋㅋ

  • 2. 아줌마
    '06.10.11 2:46 PM

    넘 재미 있네요
    이따 슈퍼가면 건빵 한봉지 들고 올까?

  • 3. 얼음공주
    '06.10.11 2:50 PM

    저도 코고는데....히히....지금은 남편이된 남자친구 훈련소 들어가는데 친구랑 수다떨다 막상 들어가는건 못봤어요....그래서 웃으면서 집으로 왔더랬죠....하하

  • 4. 수국
    '06.10.11 2:57 PM

    ㅋㅋㅋ 건빵 사진보니까 군대갔던 사촌동생이 저희 엄마 준다구 건빵챙겨왔던게 생각나네요~~

  • 5. 희동이
    '06.10.11 3:10 PM

    저희 언니가 부대가 있는 곳에서 편의점을 해요..
    근데 부대에서 페스티벌 같은걸 하나봐요..
    이번 추석에 만났는데, 거기에서 샀다면서 건빵 몇봉지를 챙겨 주더라구요..
    초록색 봉지에 "군용" 이라고 쓰여진 건빵!!!
    알록 달록한 별사탕 꺼정.. 맛나게 먹었답니다..

  • 6. 아이롱
    '06.10.11 3:48 PM

    건빵보니 우리김치 냉장고가 생각나네요.
    ㅎㅎ 그안에 군용건빵 있어요 우리아들이 제대하면서 13봉지를 가져왔더만요.
    제대한지 이제한달 가까운분 나누어주고 아껴아껴 이제3봉 남았네요.
    먹기아까워 냉장고안에 고이모셔 났네요..

  • 7. 김주희
    '06.10.11 5:10 PM

    군대갔다온 남자라면 건빵에 대한 추억과 향수는 한가지쯤 있더라고요.
    저희 아들은 육군 훈련소 있을때,대민지원 나갔다가 간식으로 먹은 건빵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건빵을 쳐다보지도 않지만요..

  • 8. SilverFoot
    '06.10.11 6:51 PM

    그러게요.
    남친 군대 갈 때 우는 여자들은 남친 때문에 우는게 아니고 남겨질 자신이 서러워서 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떠나는 남친 보며 우는 여자치고 기다리는 여자 못봤다구, 대부분 얼마 안되서 바로 새로운 사람 만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외로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날 이해해달라고 그게 대부분의 레파토리라지요.. ㅋㅋ
    에공, 암튼 저희 아빠도 건빵 엄청 좋아하셔서 남동생이 군대에서 챙겨온 건빵 문갑 서랍에 넣어두고 누구 주지도 않고 드시더군요.
    군대 건빵이 얼마나 맛있는 줄 아냐고 하면서요.. ㅋㅋ

  • 9. 프리스카
    '06.10.11 8:14 PM

    아들이 다음 달에 건빵 먹게 생겼어요. 여자친구가 웃었으면 좋겠네요.^^
    옛날엔 복무기간이 길었는데 코 고신다는 분들이 계시니 순정적이세요.
    우리 봄이가 잘 먹어서 저도 가끔 같이 먹는답니다.

  • 10. 라니
    '06.10.11 11:15 PM

    우리 아이들 시장놀이를 하면 집에서 한두 봉지씩 제가끔 시장에 내다 팔 것
    들을 가져오지요. 그런데 이것이 제일 안팔리는 물건,,,
    생각해보세요, 새콤달콤 강한 쏘스맛에 길들여진 입맛이 달지도 쓰지도 않는
    밍밍한 그 맛을 좋아할리가 없지요. 우리가 라면땅 새우깡 짱구를 기억하듯
    이 아이들도 나중에 기억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을 듯^^
    잘 읽었습니다. 까만 바닥은 자동차 씨트지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41156 강제 디지털 디톡스... 를 준비중입니다 ㅠ.ㅠ 소년공원 2026.01.25 213 0
41155 돼지껍질 묵 만들어 봤습니다 13 주니엄마 2026.01.21 3,162 0
41154 안녕하세요, 자스민 딸입니다. (결혼식 감사인사) 32 jasminson 2026.01.17 6,395 7
41153 혼자먹는 저녁 소개 16 챌시 2026.01.15 6,841 1
41152 191차 봉사후기 ) 2025년 12월 소불고기전골과 달걀말이 7 행복나눔미소 2026.01.09 5,026 6
41151 굴 꽈리고추 알아히오 19 챌시 2026.01.07 6,206 3
41150 30 그리고 60 19 주니엄마 2026.01.06 6,602 2
41149 콩장만들어보기 7 박다윤 2026.01.06 3,674 4
41148 82님들 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6 진현 2026.01.01 8,280 4
41147 딸과 사위를 위한 한식 생일상 42 에스더 2025.12.30 10,212 6
41146 챌시네소식 27 챌시 2025.12.28 5,772 2
41145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한다 -82쿡 이모들의 결혼식 출동 후기 .. 36 발상의 전환 2025.12.21 12,961 24
41144 은하수 ㅡ 내인생의 화양연화 19 은하수 2025.12.20 6,680 4
41143 미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다이어트 기록 22 소년공원 2025.12.18 7,001 4
41142 올해김장은~ 16 복남이네 2025.12.17 6,195 5
41141 토마토스프 5 남쪽나라 2025.12.16 4,732 2
41140 솥밥 3 남쪽나라 2025.12.14 6,555 3
41139 김장때 9 박다윤 2025.12.11 7,571 3
41138 밀린 빵 사진 등 10 고독은 나의 힘 2025.12.10 7,025 3
41137 리버티 백화점에서.. 14 살구버찌 2025.12.09 6,927 5
41136 190차 봉사후기 ) 2025년 11월 갈비3종과 새우토마토달걀.. 6 행복나눔미소 2025.12.08 3,660 5
41135 케데헌과 함께 했던 명왕중학교 인터내셔널 나잇 행사 24 소년공원 2025.12.06 8,202 6
41134 멸치톳솥밥 그리고,…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 24 챌시 2025.12.04 6,951 5
41133 남해서 얻어온거 11 박다윤 2025.12.03 7,299 5
41132 딸의 다이어트 한 끼 식사 16 살구버찌 2025.12.01 9,789 3
41131 명왕성의 김장 28 소년공원 2025.12.01 7,594 4
41130 어제 글썼던 나물밥 이에요 10 띠동이 2025.11.26 7,803 4
41129 어쩌다 제주도 5 juju 2025.11.25 5,607 3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