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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그냥~ 구웠습니다......

| 조회수 : 16,039 | 추천수 : 7
작성일 : 2012-09-24 20:18:49

 

 

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농장에서 1박.......

 

딸아이는 동생 돌보고

아내와 저는 그나마 늦밤이라도 수확하려고 필사적......

 

이런일 저런일  일에 치어 사는 남편을 위해

그래도 마님체면 구겨가시면서 괴기를 구워줍니다.

 

여자팔자 참 거시니 합니다.

제가 어느날 느닷없이 땅사서 (7천평이 조금 않되는) 취미로 농사일 한다고......

그런데 그게 취미가 아니라 중노동이라는......

노가다판에서도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보기 힘들다는......ㅠㅠ

 

아내와 저는 둘이 쓰리잡......

말이 집에서 아이들 키우며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이고

각종 장부 -복식회계로- 처리해주고 잔일 처리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농사일 도와주며 괴기까정 구워야하는 ......

 

 


일욕심많은 남편만나 궂은일 마다앉으면서도

항상 입에서 맴도는 당쇠걱정......

(그려~   나 죽으면 너네들은 워쩔겨~ ㅋㅋㅋ)

 

이날......     당쇠와 그 똘마니들은 의자에 걸터앉아 처잡숫기 바쁘고

마님은 쭈그리고 앉아 고기굽기에 바쁘고......

 

너무 늦은 저녁이라

달랑 딸아이가 따온 깻잎 몇장에

돌미나리 쬐끔 -콧구멍으로 다 들이켜 버린......- 으로 쌈을 대체하고......

 

 

 



고등어와 모처럼 아이들에게 쏘시지까정 쏘시고......

 

 



근데 ......

이날 사용한 땔깜은 잣나무장작입니다.

 

마님 말씀이

소나무에 고기를 구우면 향이 아주 좋았는데

잣나무에 구워먹으면 어떨까 하는 ......

 

귀여움받으며 목숨 부지하려니

어쩔수없이 온산을 뒤져 잣나무 주워다가 땔깜준비는 했는데

그래도 맛은 소나무장작만 못하네요. ㅠㅠ

 

 

 


아이들은 종일 노느라 지쳐 일찌감치 쓰러졌고

장작불 지펴가며 아내와 단둘이 오롯한 시간......

 

너때문에 내 삶이 행복해졌다니 어쨌다느니......

가슴에 닭살이 돋아날 즈음에

마누라 병든 닭마냥 꾸벅거리더니

급기야 산막에 들어 코들 들이 골아대고.......

 

에휴~   저노무 콧구멍에 장작이라도 쑤셔 넣을까 싶은......

 

 

 


그리고 홀로 남은 시간......

아직 마저 채우지 못한 밤자루 하나 집어다가 곁에 내려놓고는

굽고 또 구워가며 배를 채웠습니다.

 

그려어~   인생 뭐 있어?

내가 뭐 운전기사 딸린 마이바흐 내어줄 능력은 않되어도

내가 기냥 오래오래 아주 쭈욱 늘어진 엿가락처럼

기일게 살면서 너네들 곁을 지키면  되는 것이것지......

 

 

 


술에 취했는지 분위기에 취했는지 장작불 연기에 취했는지

정신이 몽롱해 질 즈음에 하늘을 쳐다보니

나뭇잎사이로 보이는듯 마는듯 작은 초승달 조각들......

 

그런가봅니다.

삶이란거......

조금씩 구워져가며 소중한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설사 그것이 도자기가 아닌 한낮 옹기에 불과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소중하다는 것을......

 

 

 

 

 

 

 

3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ssac
    '12.9.24 8:33 PM

    제가 언제 행복한지 생각해보면
    사소한 한순간 이더라구요.
    여기는 엄청 많이 행복해 보이네요~

  • 게으른농부
    '12.9.25 5:01 PM

    맞아요. 정말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행복한 삶이 엮어져 가는 것 같아요.
    때로는 힘에겨울때도 있지만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행복인가봅니다. ^ ^

  • 2. 오달
    '12.9.24 11:59 PM

    정말 재미나게 사시네요. 제가 바라는 삶인데...용기도 없고...확신도 아직 없어서..부럽네요.

  • 게으른농부
    '12.9.25 5:02 PM

    저도 참 오래 생각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우연한 기회에 그냥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근데 많이 힘들어요. ^ ^

  • 3. 변인주
    '12.9.25 12:48 AM

    아내분의 머리 묶은 뒷모습이
    잘 여문 밤톨처럼 이쁘시네요. (이거슨 칭찬! 버전)

    늦은 밤 혼자 앉아 청승떨지 마시고
    어여 들어가 아내곁에 누워 주무세요. (이거슨 장모! 버전)

  • 게으른농부
    '12.9.25 5:04 PM

    칭찬버전에 대한 댓글 : 따뜻한 마음이 더 예쁩니다. (장모님 앞에서 말할때......)

    장모버전에 대한 댓글 : 밤이 무섭습니다. (맞을까봐서리......) ^ ^*

  • 4. 예쁜솔
    '12.9.25 1:02 AM

    울 옆지기가 땅 7천평 사서 농자 짓는다고 하면
    난 어찌했을까???
    아마 절대로 여기 없지 싶은데...
    정말 용기있는 멋진 여인이십니다^^

  • 게으른농부
    '12.9.25 5:05 PM

    제가 하는 일에 가끔 태클을 걸때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 시작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거든요. 그 덕에 제가 살아갑니다. ^ ^*

  • 5. livingscent
    '12.9.25 5:12 AM

    그래도 에너지가 넘치시네요^^
    7천평이면 얼마만큼인지 감도 오지 않지만 무지 넓은거 맞죠?ㅎㅎ
    그 땅에 농사를 짓는 일이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은 아닐거 같네요.

  • 게으른농부
    '12.9.25 5:06 PM

    그냥 농사만 지으면 그리 넓은 것이 아닌데
    다른 일을 겸하다보니 시간에 쫒길때가 많네요. 허둥지둥...... ㅠㅠ

  • 6. 콩새사랑
    '12.9.25 6:31 AM - 삭제된댓글

    행복은 멀리서오는것이 아니지요
    오랫만에 오붓한시간~~
    참 좋아보입니다 !!

  • 게으른농부
    '12.9.25 5:09 PM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저녁시간이며 휴일에는 가족이 대부분 함께 지내는데
    부쩍 커가는 딸아이의 이야기며 이제 한참 재롱부리는 아들녀석의 모습을 보면
    참 살맛나는 인생이다 싶습니다. ^ ^*

  • 7. 코스모스
    '12.9.25 9:44 AM

    숯불에 구워먹는 밤맛, 생각만해도 입에 침이 고입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농부님 부부의 모습 잘 배우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힘내셔서 좋은 농산물 지으세요. 화이팅.

  • 게으른농부
    '12.9.25 5:10 PM

    맥주안주로도 참 좋죠. ^ ^*
    말씀처럼 좋은 농산물 생산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8. myrrhdaisy
    '12.9.25 1:17 PM

    눈물납니다.
    어릴적 울 어머니아버지
    그모습입니다.
    해뜨기전 하루를 시작해 해가지고서야 돌아오는
    그런 매일을 육십년 칠십년을 사시고
    어머니는 아직도 팔십년을 살고 계십니다.
    어린 나는 깜깜한 집에 혼자 있지 못하고 동네 가게 전등 밑에서
    기다렸지요. 어둑어둑
    귀촌 귀농 이야기는 늘 저를 숙연케합니다.

  • 게으른농부
    '12.9.25 5:13 PM

    에구~ 그나마 지금은 기계며 농자재가 일손을 많이 줄여서 다행이지만
    그시절에 농사일이란것이 정말 힘든 일이었죠. 그나마 소가 없는 집들도 있었고......
    저희 장인장모님도 밤열두시가 넘도록 벼를 베곤 하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다 지난 일인데도 마음이 울컥해오곤 합니다.
    그렇게 힘겹게 저희들을 길러주셨는데 ......

  • 9. 영부인
    '12.9.25 3:21 PM

    부 럽 다~

  • 게으른농부
    '12.9.25 5:14 PM

    너무 부러워 하지는 마세요.
    가끔은 정말 너무 힘들때도 있답니다. ^ ^*

  • 10. marina
    '12.9.25 3:34 PM

    낮의 힘든 노동 뒤...한 숨 돌리는 시간이네요.
    힘들게 땀 흘린 후 먹는 저녁식사는 얼마나 꿀맛일까요.

    어둑한 저녁,장작불에 고기 구워 먹는 모습도
    쌀쌀한 밤 공기 속의 하늘 달도 참 좋아 보입니다.

  • 게으른농부
    '12.9.25 5:17 PM

    정말 꿀맛이죠~
    처음 밤줍는 일손 돕겠다고 오시는 분들이 아주 재밌을 것으로 기대하고 오시곤 하는데
    두시간만 지나면 표정이 달라지거든요. 허리, 다리 끊어질 것 같은......
    그걸 아침 여섯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이일 저일 하면서 그렇게 종일 땀을 흘린 이후의 저녁식사는 감사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 ^*

  • 11. 가능성
    '12.9.25 5:51 PM

    소나무장작.. 기억 해 두겠습니다.
    행복 해 보이십니다.
    행복은 멀리 높이 있는것이 아니고,, 가까이 낮으곳에 있음을,, 실감케 하는,,
    범사에 감사함을 다시 느낍니다.
    오래오래 건강히 엿가락처럼 가족을 지키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더불어 행복하시길.. 바래요.

  • 게으른농부
    '12.9.25 8:40 PM

    그것도 아마 하나의 조합인 모양입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저마다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

    두번의 자살시도를 통해 얻은 결론은 살아있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는 ...... ^ ^*

  • 12. 작은언덕길
    '12.9.26 5:44 AM - 삭제된댓글

    댓글에 깜짝놀라 로긴 했네요.

    물론 예전의 일이였겠지만, 부디 예전 괴로움 다 잊으시고 행복하세요.
    아이들도 가장 예쁠 시절이고, 농부님도 그리고 저렇게 단아한 예~쁜 모습을 하고 계신 사모님의 뒷모습도
    모두 모두 아름답기만 해요.
    가족이 함께 모인자리.
    당연한거 같지만, 그리 단순한것은 아니랍니다.. ^^

  • 게으른농부
    '12.9.26 5:59 PM

    ㅎㅎㅎ 벌써 10년이 넘은 일이네요.
    배신당하고 망하고 구속될 처지에 놓이고......(결국은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은 기분이었죠.
    그래도 살아있으니 견딜수 없을 것 같았던 고통의 시간도 추억으로 남네요. ^ ^*

  • 13. 곰씨네
    '12.9.26 11:51 AM

    멋지세요!!
    전에 친정아빠가 야심차게 가족먹을 배추농사 지어보겠다고 도전하셨다가
    감당못하셔서 결국 나머지 가족들이 주말마다 노역;;;ㅋㅋㅋ
    그 이후 농사라면 고개를 저었는데
    게으른농부님 덕분에 야곰야곰 그 노역;의 추억이 사라지네요^^*

  • 게으른농부
    '12.9.26 6:00 PM

    ㅎㅎㅎ 가족들이 드실 정도면 2-300포기면 충분하실텐데......
    저도 처가에 농사일 도와드릴때는 너무 힘들고 그랬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흙냄새가 그리워 지더라구요. ^ ^*

  • 14. 꿈을꾸는소녀
    '12.9.26 12:33 PM

    아 맛있겠네요 어디서나 바베큐가 가지는 매력은 어떤음식도 못따를듯하군요

  • 게으른농부
    '12.9.26 6:02 PM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으니 더 맛있는 모양입니다. ^ ^*

  • 15. 직장맘3
    '12.9.27 8:28 PM

    귀한 시간이셨겠어여.
    저 이런거 너무 조아하는데,
    진심 부럽사와요~~

  • 게으른농부
    '12.9.28 5:26 PM

    허접한 천막이지만 그럭저럭 하룻저녁 주무실 방도 있으니
    시간되시면 가족들과 함께 놀러 오세요. 연중 무료개방중입니다. ^ ^*

  • 16. 연지맘
    '12.9.28 6:12 PM

    글을 어쩜 그렇게 재미나게 쓰시는지요
    저희도 남편퇴직 하면 귀농할까 하는데...힘든 농사일 보다도 가족들에 사랑과 애정이 삶에 녹아있으시네요. 너무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뒤로 한발 물러서 관조하시는 모습도 멋지십니다.
    자연이 주시는 여유도 있겠지요
    딸 하나 있는거 다 키우면 남편과 손잡고...

  • 게으른농부
    '12.9.29 4:46 AM

    에구~ 과찬이십니다.
    때로는 농사일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왜 이런짓을 했나 후회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즐거움에 이제는 벗어나기가 힘들게 생겼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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