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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포도나무집

| 조회수 : 5,130 | 추천수 : 5
작성일 : 2025-08-20 13:21:25

포도나무 집.


동네에서는 우리집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담 옆에 심어 놓은 포도나무는 해가 갈수록 줄기가 굵어지더니 이사를 가야 하는 

그 해엔 포도가 수십 송이 열렸습니다.

집장사가 지은 집이라 동네집들의 모양은

모두 똑 같았지만 우리 집만은 그 포도나무 때문에 다른 집과 달랐고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었습니다.


포도나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작은 텃밭엔 상추,열무,고추,배추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고 가지,토마토는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주변엔 보라색 분홍색과꽃과 노란 붓꽃이 수줍게 피어 있었습니다. 

맨몸으로 서울에 온 부모님들이 힘들게 장만한 집이었기에 어머니는 막내 동생을 업고서 집을 쓸고 또 닦았습니다.

집을 사기 위해 진 빚을 갚기 위해 우리 밥상엔 김치와 콩나물 국 또는 우거지 국이 올라 왔습니다.

우거지 국은 어린 내가 시장에서 쓸만한 배추잎을 주워오면 어머니께서 끓여 주시는 특별 메뉴였어요.

배추잎을 푹 끓여 숨을 죽인 다음 멸치와 된장을 넣은 물에 파 송송 썰고 고춧가루 솔솔 뿌려 먹는

우거지국밥은 한 그릇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하는 영양식이었습니다.

내 국그릇의 멸치가 동생 국그릇의 멸치보다 한 마리라도 적으면 괜히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한푼 두푼 아끼며 살았지만 

아버지의 실직이후 어머니 아버지께서 은행 이자 때문에 걱정하는 일이 잦아 졌습니다. 

오빠와 나는 우리라도 돈을 벌어 부모님을 돕자고 결심하고 떡볶이를 만들어 팔기로 했습니다. 

쌀떡은 비싸니까 밀가루를 반죽해서 긴 떡 모양으로 만들고 고추장과 물을 넣었습니다.

내 친구들이 첫 손님이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파는 것 보다 많이 준다는 말에 코 묻은 돈 10원을 들고 온 친구들 .

준비된 밀가루 반죽 떡은 그러나 고추장,물과 섞여 먹을 수 없는 붉은 죽이 되었고 

오빠와 나의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사업은 롤러 스케이트 대여업이었습니다.

저금통을 털어 그때만 해도 귀했던 프라스틱 롤러스케이트를 샀습니다.

한번 타는데 10원 매일 열명만 타도 우리는 금방 돈방석에 올라 앉을 것 같았지요.

그러나 두 번 대여 후 바퀴가 빠지고 끈이 끊어져 들인 돈마저 찾지 못한 채 

집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해 우리집 포도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익기 전에는 절대 따 먹지 말라고 했지만 

오빠와 나 그리고 동생 들은 시기만한 파란 포도를 눈물을 찔끔 흘리며 몰래 한 알씩 따먹곤 했습니다.

 

그러나 포도가 다 익지도 않았는데 은행빚을 갚지 못해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포도나무 집, 우리집...... 

지난 3년간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너무 행복했었는데 그 행복마저 그 집에 놔두고 나와야 할 것 같았습니다.

까맣게 익어가는 포도들을 그렇게 고스란히 놔두고서 우리 식구들은 단칸방으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차 안에서 어머니는 고개를 치마폭에 파 묻은 채 서럽게 우셨습니다.


그 이후로 꿈속에서만 찾아가는 포도나무집. 

포도는 그때마다 줄기에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

 

40여년간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장을 했고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아 키우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집을 장만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사는 집 담 옆엔 포도나무를 심고싶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정성껏 키워 포도가 열리면 한 바구니 가득 따서 이웃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모두와 나누는 그런 마음으로... 

그때가 되면 내 마음속의 포도나무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게 되겠지요.

 

늘 꿈꿔왔던  포도나무를  테라스 텃밭에 심고

8년  살고 올해 2월  이사 나왔습니다.

한약찌꺼기 10포대를 넣고  키운 포도나무엔 

포도가 100송이 가까이 열렸습니다.

이제  또다시  포도나무집은  꿈속의 집이 되었네요.   그래도    해마다 포도는 우리가족 모두의 마음에  열리겠지요.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요리보고
    '25.8.20 3:11 PM

    어릴적 포도나무 집이야기에 눈물이 찔끔 나오네요.. 어머님이 얼마나 속이 쓰리셨을지...
    나중에 테라스에 포도나무를 심으신걸 보시고 어머님이 좋아하셨나요?
    저 탐스런 포도나무를 두고 어떻게 이사나오셨어요..
    새로이사오신분은 횡재하셨네요!!

  • 은하수
    '25.8.20 3:43 PM

    4남매 대학 다보내시고 어머니는 고생많았던 생을 65세에 마감하셨어요.
    엄마 이야기는 다음에 할께요

  • 2. hoshidsh
    '25.8.20 7:55 PM

    글을 어쩌면 이렇게 잘 쓰시나요..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 포도 먹을 때마다 생각날 것 같아요

  • 은하수
    '25.8.21 8:56 PM

    어린시절 제가 겪은 일이라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너무나 사랑하는 집과 포도나무를 그대로 놔두고 떠나왔습니다.

  • 3. 뭉이맘14
    '25.8.21 6:23 AM

    테라스에도 포도나무를 키울수 있군요.
    포도알이 크고 싱싱하네요.
    이 글 읽고 50년전 저희 집에 있던 포도나무, 사과나무랑 그시절이 생각났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은하수
    '25.8.21 8:57 PM

    아이들 맘속에도 포도나무 한그루 심어주고 싶었어요

  • 4. 김태선
    '25.8.21 9:29 AM

    그 이후로 꿈속에서만 찾아가는 포도나무집.

    포도는 그때마다 줄기에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

    ***************************************
    이 대목에서 목이 메이네요..
    잔잔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
    님의 어릴 적 그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테라스에서 포로나무라니...
    대단한 노력이세요,,,
    건강하세요

  • 은하수
    '25.8.21 2:44 PM

    꿈속에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찾아간
    우리집.
    엄마 돌아가신후 엄마 보고 싶어
    또 가고 간집
    그마음 알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5. 꽃피고새울면
    '25.8.23 12:30 PM

    엄마 이야기 먼저 읽고 은하수님 글 찾아왔어요
    포도가 어쩌면 이렇게도 잘 영글었을까요
    그래서 더욱 힘든 마음이었을테지요
    글을 참 잘 쓰셔서 읽는 마음이 좋아요

  • 은하수
    '25.8.23 3:42 PM

    꼭 살고 싶던 집에서 8년 살았으니
    많이 살았다 생각하고 있어요.
    집도 사람도 시절인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6. 비니유
    '25.8.25 9:29 PM

    저희 친정주택 마당에도 포도나무가 있었으나
    저리 탐스럽게 열리지는않았었는데
    잘 키우셨어요
    은하수님 덕분에 어린시절 집이
    그때의 젊은 엄마와 아빠가 생각이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은하수
    '25.8.25 10:11 PM

    어린시절 집에 포도나무가 있었다니
    대단합니다 . 비니유님 마음속에도 포도가 열리겠어요. 전 제가 사는 집 한구석엔 무슨일이 있어도 포도나무를 심겠다고 어릴때부터 다짐 또 다짐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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