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나는 참 못된 아들이었나 보다

| 조회수 : 7,201 | 추천수 : 88
작성일 : 2010-08-20 12:08:19
자신이 쓴 옛 글을 읽는다는 건 지난 일을 돌아보고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요즘 간간히 들춰보는 나의 과거 속에서 가족을 새삼 발견한다.


[2004년 05월 05일 00시 49분 20초]
시간상으로 영시 지나 1시이니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가족이란 말이 떠나지 않는다.
가족이라…….

후후~~ 머리 아프군!
가족을 위해 내일 아침은 뭐할지나 생각해야지.
역시 먹는 게 최고 아니겠어.
어린이날이니 아이에게 뭔가 특별한 걸 해줘야하나? 라면 끓여주면 좋아할 텐데……. ㅋㅋ

밥은 있고, 돈가스 냉동 칸에 지난주에 있었고……. (그동안 안 먹었다면)
생선은 별로고……. 찬밥이니 볶음밥에 돈가스나 구울까?
맞다 버섯 있던데 버섯 덮밥에 돈가스가 좋겠다.


[2004년 05월 06일 06시 39분 12초]
아들이 몹시 피곤해 하고 기운 없어 한다는 말을 며느리에게 들은 어머니,
아들에게 전화해 “이 썩을 놈아, 술 좀 작작 먹고 다녀…….” 욕을 한바가지 퍼붓더니
무슨 버섯에다 홍삼 등등을 넣어 만든 거라며 약을 가져오셨다.

당신 뱃속에 들었을 때 당신께서 황달을 앓은 적이 있어 간이 안 좋을 거라며 “술 먹지 마라”를 입에 달고 사시고 피곤해서 얼굴색이라도 변할라치면 간 검사부터 받아보라며 가슴이 내려앉는 우리집 노인네.

약 받아들며 “열 많아서 삼 안 좋아하는데. 필요 없는데.” 투덜거렸지만 미안했다.
당신도 오랜 당뇨로 고생하시면서 약은 당신께서나 드시지. 아버지나 드리시지. 할머니도 계신데……. 정말 송구했다.

약의 효과와 정성에 대해 구구절절이 설명하며 며느리에게 당부하는 말씀에 처에게 한 번 더 미안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란……. 진맥 잡고 지은 약도 아니고 그저 피로회복제 수준의 약 같은데. ‘너도 같이 먹어라.’ 이러면 오죽 좋을까. 돌아가신 후 처에게 같이 먹자고 했더니 ‘왜 같이 먹느냐’ 한다. ‘당신 건데!’ 이 씁쓸함이란.

아무튼 미안했다.
그래서 약이라고는 소화제도 싫어하지만 부지런히 먹어 빨리 없애버리기로 했다.


[2004년 06월 07일 05시 26분 27초]
“약은 다 먹었냐?”는 어머니 물음에 “예” 하고 얌전하게 대답만 하고 말 것을.
입이 방정이라고 한 달 전 참고 못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먹긴 먹었는데 무슨 진맥잡고 지은 약도 아니고 ‘애미도 같이 먹어라’ 했으면 좋자나”
“꼭 시어머니 티내는 것도 아니고…….”

“왜? 뭐라 하데”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듣는 내가 그랬다고 같이 일하는 거고 같이 피곤한 건데…….”


약간의 침묵 후 “참 나! 약 한재 지어줘야 하나보네”

*지난주 있었던 어머니와의 대화였습니다. 약간 후환이 걱정되기도 하고 잘 한 건지 못 한 건지. 아무튼 지난번 같은 옹색함은 없어지겠죠.


[2004년 07월 27일 07시 19분 56초]
무지하게 더운 여름 한줄기 비가 그치고 난 일요일 사골 사다 곰국을 끓였다.
뽀얗게 우러나는 곰국을 보며 문득 ‘나이 50이 넘으면 부인이 곰국 끓일 때가 가장 두렵다는, 사골 국에 전기밥통 밥 알아서 챙겨먹으라며 혼자 여행갈까 봐 두려움에 떨게 된다.’는 우수개 소리가 생각났다. 꼭 내가 곰 국 끓이는 부인 같았다.

“밥은 밥통에 있고 곰국은 전자렌지에 데워서 드세요. 아버지!” 이렇게 말하며 서둘러 훌쩍 내려가 버리는 자식은 아닐까?

늙고 병약한 두 노인 중 한분은 병원에 또 한분은 집에 남겨둔 채 출근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서둘러 자리를 뜨는 자식들, 그 자식이 끓인 곰국이 이 여름 이열치열의 더위나 식혀 줄 수 있을지.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진선미애
    '10.8.20 12:22 PM

    어제 뉴스 인가요? 자신 봉양문제로 왈가불가하는 자식들 얘기를 들으신 노부부
    음독후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할머니는 병원에............

    자식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반이라도 양가 부모님께 해드리면 효녀소리들을텐데.....
    그래서 전 자식들에게도 기본만 합니다 ^^;;

    곰국 사진 없으니 무효인거 아시죠? ㅎㅎ

  • 2. 오후에
    '10.8.20 1:05 PM

    진선미애님//그러게요. 돌아가신 후 알게되는게 많네요.

  • 3. 부리
    '10.8.20 4:30 PM

    갑자기 부모님께 전화하고 싶어지네요..
    오늘은 안부전화 드려야겠어요..^^

  • 4. 가을여인
    '10.8.21 5:51 AM

    아내분 입장을 잘 헤아려 주시는 속 깊은 남편이시네요.

  • 5. 블루
    '10.8.21 4:54 PM

    ㅠ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41166 뉴욕에서 발견한 미스터션샤인 글로리호텔 8 쑥과마눌 2026.04.03 1,830 2
41165 친구들과 운남여행 39 차이윈 2026.03.28 6,027 4
41164 행복만들기 194차 봉사후기) 2026년 3월 감자탕과 쑥전,.. 8 행복나눔미소 2026.03.25 4,341 9
41163 몬트리올 여행 16 Alison 2026.03.21 6,111 5
41162 이빵 이름좀 알려주세요 2 ㅂㅈㄷㄱ 2026.03.12 8,049 1
41161 193차 봉사후기) 2026년 2월 설맞이, LA갈비구이와 사골.. 7 행복나눔미소 2026.03.09 4,315 6
41160 두쫀쿠 지나고 봄동이라길래 4 오늘아침에 2026.03.09 6,672 3
41159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20 ilovemath 2026.03.07 5,044 6
41158 키톡의 스타 들이 보고 싶어요. 20 김명진 2026.03.04 6,634 6
41157 대만 수능 만점 받은 딸 자랑은 핑계고~ 48 미미맘 2026.03.03 7,895 11
41156 제 최애 가수는요. 19 챌시 2026.03.03 5,938 3
41155 모녀 여행 후기_속초편 15 발상의 전환 2026.02.26 8,063 7
41154 pão de queijo 브라질리언 치즈 빵 만들기 26 소년공원 2026.02.16 8,961 5
41153 애기는 Anne가 되고,.. 14 챌시 2026.02.13 9,403 5
41152 절에서 먹은 밥 시리즈 올려봅니다 10 써니 2026.02.09 9,809 3
41151 베트남 다녀오고 쌀국수에 미친자가 되어버린 26 솔이엄마 2026.02.04 10,449 7
41150 192차 봉사후기) 2026년 1월 석화찜과 한우스테이크, 우렁.. 8 행복나눔미소 2026.01.28 6,766 5
41149 강제 디지털 디톡스... 를 준비중입니다 ㅠ.ㅠ 27 소년공원 2026.01.25 11,900 4
41148 돼지껍질 묵 만들어 봤습니다 20 주니엄마 2026.01.21 6,459 3
41147 안녕하세요, 자스민 딸입니다. (결혼식 감사인사) 47 jasminson 2026.01.17 11,006 12
41146 혼자먹는 저녁 소개 17 챌시 2026.01.15 10,739 3
41145 191차 봉사후기 ) 2025년 12월 소불고기전골과 달걀말이 7 행복나눔미소 2026.01.09 6,310 6
41144 굴 꽈리고추 알아히오 19 챌시 2026.01.07 8,120 3
41143 30 그리고 60 19 주니엄마 2026.01.06 8,400 2
41142 콩장만들어보기 7 박다윤 2026.01.06 5,072 4
41141 82님들 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6 진현 2026.01.01 9,196 4
41140 딸과 사위를 위한 한식 생일상 42 에스더 2025.12.30 13,106 6
41139 챌시네소식 27 챌시 2025.12.28 6,804 2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