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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내 손 맛의 힘 또는 비밀 - 비상시

| 조회수 : 8,461 | 추천수 : 103
작성일 : 2010-07-12 16:57:44
지난 금요일, 지인의 부친상(喪)이 있었다. 그런데 제주였다.
이래저래 급히 비행기 표 구해 금요일 밤 9시 제주에 도착해 조문 마치고 보니, 조문객 있을 데가 없다.
제주 모 병원의 장례식장 이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빈소만 있고 조문객 맞이방이 없었다.
층수를 달리하는 식당이 있긴 한데 이것도 밤 9시에 문을 닫아버렸다 한다.

황당한 상주는 근처에 급히 펜션 하나 얻어 육지에서 온 조문객은 펜션으로 보냈다 한다.
내가 펜션에 도착해 보니, 급히 구매한 같은 반바지 입은 중년의 남성 한 무더기
웃통은 벗고 배 내밀고 멀뚱히 TV보면 앉아 있더라.

“아니 회라도 떠다 먹지, 왜들 이러고 있어.” 하니
“뭐 생각 못했네, 밥 못 먹었지 라면 사다놨어. 소주는 있다.” 한다.

결국 “어디 횟집이라도 갈까? 차편도 없고 그냥 사다 먹자.” 설왕설래하다 사다먹기로 했는데
이미 회 떠오기엔 늦은 시간이고 늦게까지 하는 횟집도 없다는 말에
할수 없이 대형마트라도 가서 뭘 좀 사오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대형마트서 폐점시간쯤 할인해 파는 회 사고
역시 반값인 꼬막 두 팩과 김치, 청양고추를 사다 펜션 야외탁자에 둘러앉았다.
참으로 이상한 상가 술자리가 됐지만 생각도 못한 바닷가 조문객 정경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잘 넘어 가더라. 회는 금방 동이 나고 꼬막을 삶았다.
처음엔 박박 씻은 꼬막 소금 넣고 삶아 까먹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주인집에서 소금만 조금 얻어놓았을 뿐인데. 생각보다 빨리 회가 떨어졌다.
아무래도 국물 안주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아진 꼬막을 큰 접시에 덜어 놓고 주섬주섬 있는 것들 꺼내니 김치, 고추, 라면이 다다.
‘이걸론 매운탕도 못 끓이겠다.’

한참 멍 때리다가 꼬막 삶은 물에 청양고추 잘라 넣고 라면 건더기 스프 두 개 뜯어 넣어 다시 한 번 끓였다.
파도 있고 버섯도 있으니 구색은 갖췄다. 확실히 매운 맛이 더해지니 국물 맛이 좀 산다.
그래도 부족한 맛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라면스프 한 꼬집 정도 집어 살살 국물에 뿌려주었다.
국물의  탁도가 변하지 않을 만큼만. 이제 완벽하다. 꼬막 삶은 짭짤한 맛에 고추의 매콤한 맛
그리고 아무도 못 알아보는 비밀의 맛이 더해진 완벽한 국물 안주가 만들어졌다.

꼬막 안주 내오자 다들 “와~” 하더니 “좋은데, 괜찮은데.”를 술잔만큼이나 연발한다.
조문 간 제주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술 따라 바람 따라.

인류가 만든 조미료 중 최고는 아무래도 라면스프란 사실을 확인하는 밤이기도 했다.
올 여름 휴가지, 특히 야외에서 마땅한 재료나 맛낼 거리가 없다면 적극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필요와 시장기가 맛을 낸다고 꽤 괜찮은 음식이 나오곤 한다.

* “그런데 조문 가서도 꼬막 삶는 난 뭐냐?” 허~ 허~~ 헐!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피어나
    '10.7.12 5:14 PM

    급히 구매한 같은 반바지 입은 중년의 남성 한 무더기
    웃통은 벗고 배 내밀고 멀뚱히 TV보면 앉아 있더라.

    이 부분 보면서 저희 집 텔레비젼 앞에 같은 자세 취하고 있는 사람 생각이 나서 한참 웃었습니다.

    재미있는 글 늘 흥미진진하게 읽는 애독자 올림.^^

  • 2. 영이
    '10.7.12 6:28 PM

    미치겠다 정말...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조문가셔서도 요리를..... ^^

    그나저나 조개류 완전 좋아하는데,,, 저 꼬막 국물 너무 맛있어 보여요.. 우와~

  • 3. 뽀로리
    '10.7.12 7:05 PM

    어릴때 시골가면 할머니가 해주신 꼬막 생각나요..짭쪼름하고 쫄깃한..
    근데 전 꼬막고를줄 몰라서 못해먹어요.

  • 4. 부리
    '10.7.12 8:42 PM

    언제 봐도 글이 그림을 그려지게 하세요..어떤 모습들인지 꼭 본것만 같아요^^

  • 5. dolce
    '10.7.13 12:00 AM

    글 잘쓰시는 것 같아요 ㅎㅎ
    기억에 남는 상가집이시겠어요 ^^;

  • 6. 여인2
    '10.7.13 9:25 AM

    ㅎㅎ 어디서나 요리본능^ㅡ ^ 라면스프의 위력이 대단하군요!!

  • 7. 콜린
    '10.7.13 10:01 AM

    오후에 님 넘 재밌으셔요.
    깔깔대면서 읽었어요 ㅎㅎ
    조문 잘 다녀오셨지요?

  • 8. 쎄뇨라팍
    '10.7.13 10:45 AM

    ^^

    오후에님 조문다녀오신거 맞지요? ㅎㅎ
    암튼..
    순간순간 대체능력이 탁월하신듯 합니다
    아마도 IQ 200이상이 되실듯..ㅎㅎ

  • 9. 오후에
    '10.7.13 12:53 PM

    피어나님//어디나 비슷한 풍경이 있습니다. 사람사는게 비슷해선가봅니다.
    영이님//저도 미치겠습니다. '내가할께, 니가해' 이런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리 되더라는 아무래도 팔잔가봅니다. ㅋㅋ
    뽀로리님//꼬막 고른다는게 무슨 말씀이신지? 꼬막을 살줄 모른다는 말씀은 아닐 것같고.... 씻고 손질한다는 말씀인가요?
    부리님//그렇지 않아도 사진이 없어 아쉬웠는데... 그림이 그려지신다니 다행이고 감사
    dolce님//아주 기억에 남는 상가입니다. 여러모로.
    여인2님//이런경우 저주?받은 요리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신이 내린 요리본능이라고 해야할까요?
    긍정적으로 살려면 신이내린 요리본능이라고 해야겠죠.... ㅎㅎ '신이 내린 요리본능' 쓰고 보니 아주 맘에 드는 표현인데요.
    콜린님// 재밌다니 감사. 조문을 너무 잘 다녀와서 탈입니다. ㅎㅎ. 넘어진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딱 맞는, 조문 간 김에 또 마침 상황도 그러하니.... 였답니다.
    팍님//분명 저는 조문 간거였습니다. 꼬막 삶으러 간거아님 ㅎㅎ 아이큐는 1/2 곱하시면 맞을 듯 ㅋㅋ

  • 10. 독도사랑
    '11.11.18 8:11 AM

    진짜 맛있어보이네요 ㅎㅎ 너무 먹어보고싶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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