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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지금 출발해요." - 반성의 밥상

| 조회수 : 9,013 | 추천수 : 145
작성일 : 2010-07-05 12:31:33
지난 밤 제법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골골대며 아침에 “아침 어떻게 할까?” 물으니
H씨 “그냥 빵 먹으려고…….” 하기에 ‘웬 빵이냐!’며 내쳐 잤습니다.
10시쯤 일어나 보니 H씨 부재중 전화 있더군요.

“일어났나? 해서 전화했어.”
“좀 전에, 언제와, 점심은 뭐 먹을래요.”
“나야 해주는 건 뭐든 좋지. 국수나 냉면도 좋고 00씨 먹고 싶은 거”
“그래도 아침에 빵 먹었잖아. 밥 할까?”
“아~ 빵 먹어서 이렇게 배가 고프구나!”
“언제 오는데?”

이런 통화가 있었습니다.
뒹굴 거리며 신문보기도 하고 삐딱하게 누워 리모콘 놀이도 하고
발가락으로 선풍기도 틀었다 껐다 하며 장마철 오전을 게으름으로 가득 채우고
‘한 시 좀 넘어 온다.’는 H씨 시간에 맞춰 점심 준비를 했습니다.



늘 하던 대로 굴러다니는 컵 몇 개 씻고 밥부터 앉혔습니다.
쌀이 좀 모자랍니다. 모자라는 양을 수수로 채워 강낭콩 넣고 새 밥 했습니다.
오랜만에 뜨거운 국도 끓였습니다.
텃밭에서 따온 아욱 박박 치대서 된장 넣고 시원하게 끓였습니다.
상태 안 좋은 숙주 있기에 팍팍 삶아 숙주나물도 하고 상추는 겉절이로 무쳤습니다.




‘그래도 밥심으로 사는 한국 사람인 H씨 아침에 빵 먹고 갔는데…….’
뭔가 부족한 듯 해 뒤져보니 당면이 있습니다.
‘시금치 있고 당근 있고 버섯 넣고 잡채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씨는 잡채 같이 당면 든 음식 좋아합니다.

따로 잡채 재료 각각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당면부터 자작하게 물과 올리브유 넣고 삶았습니다. 도토리 묵 말랭이도 급히 불립니다. 말린 묵은 끓여도 크게 퍼지지 않기에 다른 재료들과 같이 넣고 볶을 생각입니다.
삶아 냉동해 놓은 시금치 해동하고 당근 채 썰고 버섯도 찢어 당면이 익어가자 같이 넣고 볶았습니다. 간장으로 간하고 참기름 좀 더 넣고 들들 볶았습니다. 아 동그란 어묵도 몇 개 넣었네요. 토마토도 한 접시 썰어 냈습니다.




40여분 만에 후다닥 상 차리니 1시입니다.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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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시 반이면 온다는 사람이 2시쯤 전화 왔더군요.
“지금 출발해요.”라고 하는데 괜히 기운 빠지데요. “전화라도 하던가…….” 궁시렁거리며 국은 다시 냄비에 담아 데우고 무료해진 마음을 달래려 음식 사진 찍고 놀아도 보고 식고 불어버린 잡채 우적거리며 먹어도 보지만 빠진 기운은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심통만 살~ 나데요. 그래서 컴퓨터 켜고 이곳에다 ‘꽁시랑거리기라도 해볼까’ 하고 딱 저 위에 까지 글 쓰는데 H씨 왔습니다.

뭐! 급 화색 띤 얼굴이 되고 “이제와요. 늦었네.”하며 반갑게 맞은 나. ^^*
아무튼 먹어치운 잡채 그릇 다시 채우고 다시 끓여 놓은 아욱국도 떠 점심상 차렸습니다.

둘이 먹기엔 너무 큰 탁자 한켠에 차린 점심 두 내외 마주 앉아 먹은 지난 토요일 풍경이었습니다. 낯익은 풍경입니다. 거꾸로. 보통 제가 “이제 출발해.” 아니면 “아직……. 늦을 것 같은데 먼저 먹어요.” 라는 말을 했었죠.



* 일요일에 뇨키 다시 도전했습니다. 그건 다음편에... ㅎㅎ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미주
    '10.7.5 12:39 PM

    오후에님은 가끔씩 나를 헷갈리게 한다는 ㅎㅎㅎ
    두내외분 대화를 꼭 한번씩 더 읽어야 이해를 하니 말입니다.
    저 상추겉절이에 밥한술 넣어 슥슥 비벼먹으면 좋겟습니다~

  • 2. 짱짱짱
    '10.7.5 3:20 PM

    풉~ 이담에 물려줄... 이 나라가 잘 되길 바라는 소박한 맘에서..라는 글보고 웃었어요.
    원글님......웃어서 죄송해요.^^

  • 3. 어중간한와이푸
    '10.7.5 3:26 PM

    결혼 연식(!)이 좀 되셨을 법도 한데, 서로 이름 부르고 존칭도 쓰시고...금술이 부럽사와요.^^
    토마토가 엄청 싱싱해 보입니다. 밭에서 따셨나...나무에서 빨갛게 익은건 정말 달고 맛나던데요.

  • 4. 땡땡
    '10.7.5 6:58 PM

    퇴근해서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뜨건밥, 뜨건국 준비하는 마눌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
    다시 데우다가 화딱지나서 전화라도 해주지 하면 오히려 일하다가 바빠서 그랬어 해버리네요.
    그게 뭐 그리 힘드냐는 듯이..한번이라도 마눌을 위해서 상을 차려본다면 이 맘을 이해할수 있을텐데..이따가 집에 오면 오후에 님 글 보여드릴까봐요.
    근데 분명히 안믿으려고 들거예요. 안봐도 비됴. 으휴~

  • 5. 오후에
    '10.7.5 11:34 PM

    미주님//헷갈리셨세요? 누구말인지 달아야겠네요. ㅎㅎ 그렇지 않아도 상추겉절이 싹 비웠습니다.
    짱3님//부디 맘에 드는 반찬들로 집밥을 드셨길... 감사
    어중간님//잊지 않으시고 댓글 감사! 이름부르고 존칭쓰는건 금슬이라기 보단 습관입니다. 첨부터 그랬는지라 그래도 연식좀 됐다고 반말도 섞어쓰는걸요.
    땡2님//전화도 없이 늦으면 식은 밥 차가운 국을 줘야 합니다. 싫다면 굶기고요. ㅎㅎ

  • 6. espressimo
    '10.7.6 12:32 AM

    통화내용이...연인들 대화 같아요. 부부도 연인 맞는데, 그래도 왠지 연인들 통화를 엿듣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 사이 좋으신 것 같아 읽으면서 항상 웃음이 지어져요.

  • 7. 너트매그
    '10.7.6 2:01 AM

    남 이야기는 왜 이렇게 재밌을까요. 오늘도 1도쯤 가슴이 따뜻해져 갑니다.

  • 8. 프리
    '10.7.6 11:40 AM

    늘 지금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사세요.. 오후에님^^

  • 9. dolce
    '10.7.6 5:55 PM

    소설책 읽는 기분이예요 ^.^*
    H님도 뇨끼 드셔보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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