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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수요일 아침상 - 소박한거라 우기자

| 조회수 : 8,483 | 추천수 : 131
작성일 : 2010-06-23 12:47:12
조용했다.
새벽에 한다는 월드컵 나이지리아 전 때문에 일찍 잤다.
‘대~한민국’까진 아니라도 ‘와~’와 아쉬움 섞인 탄식이 울려 퍼지는 아파트,
덕분에 잠 못 자거나 부스스 깨어나 TV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밤 열시도 안 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정작 조용했다.
긴장하며 일찍 잔 탓인지 새벽 3시쯤 잠이 깨긴 했으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지고 있나?’ ‘양 팀 다 한 골도 못 넣나…….’ 하며 뒤척이다
다시 새벽녘 단잠에 빠졌는데 5시 알람이 울렸다.



‘뭘 하나?’ 버릇대로 엎드려 생각한다.
‘어제 오이지 무쳤고 찬밥 있고 감자 삶으면 되고……. 가지부침? 볶음?’ 하며 일어났다.

압력솥에 담긴 찬밥은 그대로 낮은 불에 데우고 감자부터 삶는다.
지난밤 껍질 벗겨 물에 담가둔 알 작은 감자, 아릴지도 몰라 소금과 식초 적당히 넣었다.

어제 밤에 무쳐둔 오이지 꺼내려 냉장고 열었다. ‘비지’를 보았다.
가지부침이나 볶음을 생각했던 건 까맣게 잊었다. 생비지 한주먹 냄비에 담고 물 좀 넉넉히 부었다.
김장김치 이파리 쪽으로 만 잘라 넣고 김칫국물 한 국자 보탰다.
단 맛을 위해 파도 한 뿌리 다듬어 준비해뒀다. 마지막 간보며 넣으면 된다.



두부를 만들고 나면 항상 비지가 문제다.
두부에 비해 양은 많고 활용도는 떨어지는 비지 처분은 정말 난감하다.
게다가 비지는 저장성도 좋지 않아 쉽게 상한다.
먹다먹다 결국 비지를 버릴 때면 ‘아깝다.’는 생각을 넘어
‘내가 이걸 왜 했을까.' 두부만큼은 해 먹는 것 보다 사먹는 게 여러모로 낫지 않을까.’ 한다.

“이번 주말은 아이가 온다 하니, 새로 두부 할 텐데 비지는 고스란히 남아 있고 새 비지까지…….” 참 난감하다.
“그나마 저장성을 좀 높여, 두고 먹거나 나누어 주려면 띄우기라도 해야겠다.”
“그나저나 비지 띄우기에 마땅한 전기밥솥도 없는데, 이 여름에 어찌하누!”



입 짧고 손은 큰 사람, 저렴한 입맛에 손은 작은 사람, 손은 작지만 입도 짧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함께 산다면 음식 양, 재료 구입을 누구에게 맞추고 누가 해야 할까?
입 짧고 손 큰 사람은 먹지도 않으면서 많이 해, 제 때 다 먹지 않고 남겨서 문제다.
손 작은 사람은 남기진 않으나 매번 장을 보고 음식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무엇이든 잘 먹는 저렴한 입맛은 주로 남은 음식과 재료를 먹어치우기 위한 식사를 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그저 ‘때우고 먹어치우기’ 식사만 할 뿐,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식사를 못해 문제다.

제 각각 입맛과 손 크기를 가진 우리 집 넘쳐나는 비지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만 깊어간다.




*** 음식은 문화고 개인 또는 집단의 기억이 담긴 역사고 때론 가치관인 것 같다.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미주
    '10.6.23 12:59 PM

    오늘도 역시 잘보고 갑니다.
    비지찌게도 오이무침도 참 맛나보입니다.

  • 2. 행복한 우리집
    '10.6.23 1:46 PM

    우리 집안 사람들
    투표권 있는 사람들은 다 했습니다

    어느당 편도 아니지만
    지금 먹고살 만한 사람들까지 무료급식해 줄 필요까진 못느끼니까요

  • 3. 여인2
    '10.6.23 1:50 PM

    비지를.. 냉동시키면 못쓰나요??? 저희 엄만 콩 갈아서 얼려놓고 걍 쓰시던데요..???

  • 4. 오후에
    '10.6.23 4:25 PM

    미주님//비지찌게는 맛있어 점심 도시락도 싸갔다더군요. 오이지는 짰어요. 제대로 절여졌다는... ㅋㅋ 제 입맛에도 짰으니까요. 아마도 저거 다 먹으려면 주말은 되야할듯합니다.
    우리집님//땟깔은은 사진차이겠죠. 감사... 굳이 기계없어도 되는데... 믹서로도 되요. 그리 어렵진 않아요. 콩물 짤때 손목이 좀 아플뿐... 지지에 밀가루 좀 섞어서 동글동글 두툼하게 비지전 만들면 맛있어요. 신김치 얹어도 맛납니다.
    여인2님//매주 나오는 비지 냉동시킨들 쓸때가 없어요. ㅠ... 한마디로 소비보다 생산이 너무 많다는....

  • 5. 최살쾡
    '10.6.23 5:35 PM

    음식은 가치관 맞는거 같아요.

    저도 하도 사다쟁이고 뭐든 넉넉히 만들어먹자 주의라ㅋㅋㅋ
    조금조금 사다 먹는 사람은 이해를 못하더라구요

  • 6. 보헤미안
    '10.6.23 5:41 PM

    우앙, 오늘 생애 첫 오이지 꺼내서 무쳤는데 전 저렇게 예쁘게 쪼글쪼글하지 않고 너무 탱탱해서 첫 실패작을 우울하게 무쳤어요.
    오이지가 참 예쁘네요. 저도 내년엔 저렇게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만들고싶어요 ^^

  • 7. 여인2
    '10.6.23 6:04 PM

    오메... 두부를... 드실때마다... 만들어서 쓰신단 말인가요?!!! @ㅁ @;;
    유 윈!!

  • 8. 또야씨
    '10.6.23 11:24 PM

    저도 비지때문에 고민중이예요.
    냉동실에 한덩어리 쳐박아뒀는데....
    쿠키레시피 한번 찾아 봐야겠어요.

  • 9. 영이
    '10.6.24 12:46 AM

    아... 저런 두부 정말 먹고 싶어요... ㅠ
    두부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저런 단단한 손두부는 식감도 좋고 너무 맛나더라구요.
    엄마가 어쩌다 시골에서 손두부를 얻어오시면,, 먹기좋게 잘라서 새우젓 넣고 자박자박 두부찌게 끓여주셨는데....
    아~ 먹고 싶다..

  • 10. 엘리
    '10.6.24 9:56 AM

    아 정말 맛있어보이네요 ㅠㅠㅠ
    키톡은 진짜 중독되는 듯 ㅠㅠㅠ
    으앙

  • 11. 라랄랄라
    '10.6.24 10:51 AM

    오이지 비쥬얼이 "나는 사각사각한 치감을 자랑하노라~" 말하는듯 하군요^^

    입짧고 손큰 일인으로써 공감하며 글보았네요.

    콩비지는 저의 경우에 밥을 할때 넣기도 하는데요. 일명 콩비지 밥.
    생강양념한 돼지고기에 묵은지 송송 썰어넣으면 별미라지요.
    때로는 있는 야채 넣고서 전을 부치기도 하는데요. 비오고 기름냄새 땡기는날 권해드립니다.^^

  • 12. 오후에
    '10.6.24 12:02 PM

    최살쾡님//'가치관 맞는 것 같다' 공감해주시니 감사 또 감사... 뭐든 넉넉히 만들어 먹자주의가 나쁠건 없지만 입이 짧은게 문제죠 ㅋㅋ

    보헤미안님//뭐 내년까지 기다리십니까... 다음달쯤 다시 해보셔요. 해볼수록 느는게 음식입니다. 올해는 아무래도 마른장마같아요. 오이값도 쌀 듯...

    여인2님//일주일에 한번만 하면 충분합니다. 가끔 2주에 한번도 하고요

    또야씨님//비지로 고민하시는 분 많으시네요. 제가 지금까지 비지로 해본 건... 비지찌개, 비지전, 비지장, 비지밥 정도입니다.

    영이님//단단하기론 이번 두부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듯합니다. 염촛물도 좀 센던것같고 밤새 물별으로 눌러놨더니.... 완전 단단이더이다. ㅋㅋ

    엘리님//맛있어 보인다니 감사... 그렇다고 울지마셔요. ㅎㅎ

    라랄랄라님//이번주말엔 콩비지밥 해야겠어요. 사각사각하기도 했지만 짠맛이 먼저 올라왔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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