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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먹자고 사는 건지 살자고 먹는 건지…….'-

| 조회수 : 7,821 | 추천수 : 192
작성일 : 2010-06-11 11:54:59
“덥다. 2주쯤 됐나 비 안 온지…….”

6월이라 그런지 해도 길다. 퇴근시간인데도 아직 해가 한창이다. 더위도 여전하다.
더위에 식욕도 없다. ‘더운데 저녁엔 뭘 먹나.’ ‘내일 금요일이니 뭘 새로 만들기도 그렇고…….’
겨우 서쪽에 걸린 듯 한 햇볕 받아가며 걷는데 시외버스 휙 지나가는 게 보인다.
갑자기 분당 집에 가고 싶어졌다.

이리 더운 여름 날, 냉장고에 갓 꺼낸 시원한 커피나 미숫가루 또는 냉국을 건내며 환하게 웃는 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꽤나 행복한 퇴근 길일게다. 나도 그런 때가 있긴 했다.
애가 크고 맞벌이 하면서 없어진 풍경이지만. 그런 행복이 없어진게 딱히 맞벌이나 아이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은 늘 술 먹거나 늦게 귀가하는 내 탓이 크고 다음은 뭐 서로 ‘나도 더워 기력 없는데 언제 너 챙기랴’겠지…….
‘애 챙기기도 버거울 테고.’

1시간 30분여 흘러 성남 터미널에 내렸다. 휴대폰 꺼내 보니 40분 전쯤 ‘퇴근한다.’는 문자와 있더라.
저녁전이겠다 싶어 전화했다. “뭐 하냐.” 물으니 오늘 수업이 많았다며
“지치고 기운 없어 그냥 누워 있다.” 한다. “저녁 같이 먹자.” 말하고 부지런히 집으로 향했다.

설거지 하며 H씨 나를 맞는다. “힘들다며?” 물으니 “국수라도 먹으려면 치워야지” 한다. 밥이 없다.
배고프진 않은데 내가 국수 먹으면 좀 거들 테니, 자기는 청소하고 나는 비빔국수 준비하잖다.



국수 삶을 물 올려놓고 양념장 만들고 커다란 접시에 먹다 남은 부지갱이나물, 콩나물 냉채,
무말랭이 무침을 돌려가며 담았다. 아침에 꺼내 먹고 그냥 놔둬 많이 신내를 풍기는 열무김치도 올렸다.
마침 텃밭서 잘라온 ‘두메부추’ 있기에 이것도 한주먹 잘라 얹었다. 기운내라고.
상추도 찢어 얹고 나니 쟁반국수 흉내는 냈다.
아직 초여름 더위라, 얼음까지 올릴 건 없을 것 같아 그냥 양념장에 비벼 마주 앉아 먹었다.



5시 알람이 울리고 일어났는데 좀 멍하다. 날은 여전히 덥다.
밥부터 앉히려 쌀 씻는데 개수대 끝자락에 달팽이 한 마리 보인다.
‘어디서 왔을까?’ ‘어제 씻은 상추에서 떨어졌나! 그럼 며칠 냉장고에 들어 있었다는 얘긴데 참 장한 놈이다.’
아파트 밖으로 던지려고 집어 드는데 달팽이집이 버석거린다. 밑으로 던지지 못하겠다.
창문열고 벽에 살짝 올려놨다. ‘기운내서 땅으로 돌아가거라.’

밥 앉히고 두부 반모 꺼내 들기름 두르고 노릇노릇 부쳤다.
딱 한 가지 두부부침에 양념간장 뿌려 탁자에 올려놓고 나왔다. “아침 잘 먹었고 고마워요.” 문자왔다.

아무래도 올 여름은 꽤나 더울 모양이다.
부디 부엌에서 불과 씨름하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음식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덜하길 바랄 뿐이다.
먹자고 하는 건지 살자고 먹는 건진 모르겠지만, 짜증내자고 하는 게 아니니 짜증내면서 까지 할 일은 아니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프라하
    '10.6.11 12:01 PM

    부디 부엌에서 불과 씨름하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음식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덜하길 바랄 뿐이다.
    먹자고 하는 건지
    살자고 먹는 건진 모르겠지만
    짜증내자고 하는 게 아니니 짜증내면서 까지 할 일은 아니다.

    공감 백배~~즐겁게 먹고 삽시다~~

  • 2. 너트매그
    '10.6.11 12:23 PM

    어린 시절에 '먹으려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에 관한 단막 드라마를 봤습니다.
    기억 속에서 지 맘대로 뒤틀렸지만, 결정적인 내용은 남과 북, 그러니까 공산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란 남녀가 사랑하게 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격론을 벌이는 장면이 있었어요.

    북한에서 온 이는... (그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 지 기억이 안나네요;) 먹기 위해 산다, 라고
    했습니다. 그걸 보고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죠. 아니... 살기 위해서, 살아서 이런 저런 즐거움을
    누리려고 일단 먹는 거지... 저거 바보 아냐?
    그러다가 엄마에게 이 내용을 물어봤더니, 우리 엄마도 먹기 위해 산다시는 거에요.
    근데 울 엄마가 이북에서 넘어오신 분이거든요. 어린 시절에 삼팔선이 그어지자마자
    몰래 내려왔대요... 어린 마음에...아니 울 엄마가 이북 출신이라 그런가? 그래도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란 건 아닌데 왜 저러나? 하고 골똘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제 서른이 넘어 생각해보니... 이거 참 복잡하고 개인적인 문제더군요.
    오늘은 먹자고 살고, 내일은 살자고 먹고 하는 날들의 끝없는 반복이더라구요.
    마지막 줄 깊이 공감하며 추천날리고 갑니다 ^^

  • 3. 미주
    '10.6.11 12:34 PM

    이상하게 좋은글에 추천을 꼭 잊어버리는데
    오늘은 글을 읽어내려가며 오늘은 꼭 추천을 꾸~~~욱 누르리라 ㅎㅎㅎㅎㅎ
    가끔 누구에게든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때가 있지요.
    오늘 오후에님 글을 읽으며 참 감사함을 느낍니다.

  • 4. 진명화
    '10.6.11 3:38 PM

    실감납니다~~

  • 5. 김혜진(띠깜)
    '10.6.12 12:14 AM

    국시다~~ 그것도 비빔국시~~. 전 요즘에 국시만 보면 눈이 @@ 해집니다요.
    근데, 잔잔한 일상의 수필 한편 읽은것 같습니다.
    읽고 돌아서 다시 읽어보게 만드네요~~ 공감 합니다.....
    근데, 국시 넘 먹고파요. 그래서 지금 국시 삶으러 갑니다. 얹을 고명 아무것도
    없어도 걍 초고추장만 듬뿍 넣고, 참기름 서너방을 뿌려서 비벼 먹을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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