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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결혼기념일 아침상

| 조회수 : 14,332 | 추천수 : 197
작성일 : 2010-05-31 14:46:52
“축하해요. 고마워!” 아침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무슨 날’을 왜 챙기는 걸까? 아마도 기억하고 싶어서 일게다.
좋으면 좋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끄집어내는 기억들이 내일을 위한 오늘의 기록이라 여기기 때문일 게다.
오늘을 위한 과거의 기록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도 그랬다.
날마다 뜨는 해고, 해마다 오는 달력의 그날이지만 그 설렘과 마음가짐을 떠올리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일을 위한 오늘의 기록으로 과거를 기억했다. 결․혼․기․념․일.

아침상을 차렸다.
상추, 쑥갓, 셀러리. 들깨머위탕. 두릅 순 무침. 곤포무침. 묵무침 따위로 결혼기념일 아침상을 차렸다.



아침 일찍 텃밭에 나가 채소 걷어 들이며 명륜당 은행나무 밑, 사모관대 불편하고 어색하던 신랑을 떠올렸다.
원삼 족두리 차림으로 합환주에 입만 대었다 때는 신부를 보고 집례를 맡은 진행자가 “합환주는 다 마셔야 백년해로 한다”고 놀렸었지. 그 말에 신부는 억지로 못 먹는 술 인상 쓰며 마셨었지. ‘5백년 되었다’는 은행나무 밑 여기저기 앉아 구경하던 어른들 신부의 술 곤욕이 재미난 듯 깔깔 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곤욕을 치르는 신부가 안타까우셨는지 “아가! 시늉만 해도 되는 것이다. 다 안 마셔도 돼야!” 큰어머니 외치셨다. 들깨가루 얹어 머위탕 끓이니 5월의 그 웃음소리 들리더라.

미역 무치듯 초고추장 만들어 곤포 무쳐내고 그 양푼에 두릅 향 물씬 풍기는 두릅 순도 조물조물 무쳤다. 베란다 화분에 심어둔 실파 얼른 꺾어다 양념간장 만들었다. 어제 밤 미리 쒀둔 도토리 묵 담긴 접시 위에 뿌렸다.







물에 불려 싹 띄운 현미에 메밀, 깐 밤을 넣고 지은 밥까지 퍼내니 제법 상차림 모양이 나온다.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신부를 건네받는 결혼식이 싫었었다. ‘신랑신부 손잡고 동시 입장할까.’ 생각했지만 가뜩이나 말 많은데 ‘별난 결혼식’한다는 소리 보태기 싫었다. 그래서 찾아낸 게 전통혼례였다. 집안 어른들이고 친구들이고 볼거리 있고 한가한 야외 결혼식이라고 모두 흡족해 했지만 정작 우리 둘은 후회했었다. 우선 옷이 너무 불편했다. 그냥 한복만 입는 것이 아니더라. 또 웬 절은 그렇게 많이 하는지……. 게다가 여자는 남자의 두 배수 절을 한다는 걸 몰랐었다. 좀 평등해보자는 시도가 제대로 폭탄 맞은 격이었다.

이다음에, 나는 딸아이 건네주는 결혼식도 싫지만 ‘음양이치 어쩌고.’하며 두 배 절하는 결혼식 풍경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딸! 넌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에 선물도 없냐?”는 물음에 축하 노래 불러주고 ‘커피 타오고 설거지 한다.’하더니. 설거지는 결국 내가 했다.

“언제 이렇게 준비했어. 잘 먹었어요.” 하기에
“마음 있으면 다 해, 시간 없어 못하진 않아.” 심상하게 대꾸했지만 기분은 좋더라.



스스로 차린 아침상 양가 부모님 빈자리가 조금 아쉽다.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loveahm
    '10.5.31 3:49 PM

    오후에님 사모님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봐요...
    전 나라를 팔아먹은 걸까요?
    하긴 저도 저리 못차려 주니 할말은 없습니다.
    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어 보이고 좋으네요^^

  • 2. 미주
    '10.5.31 4:21 PM

    오늘도 잘 읽고 고개 끄덕이고 많이 느끼고 갑니다.

    울집 양반도 제 생일엔 제가 딱 좋아할만한 반찬 몇가지 준비해서 아침을 차려줍니다.
    이십여년을 살고서야 이제서야 절 많이 생각해주는 남편이 고마울뿐입니다^^

  • 3. 어중간한와이푸
    '10.5.31 4:52 PM

    정녕 "어젯밤 미리 쒀둔 도토리묵"이라 쓰셨습니까?
    K양. H씨에 이어 점점 오후에님의 정체(!)가 궁금해 지는데요...^^
    저도 주말에 첫조카 결혼식 다녀오면서 이제는 우리의 결혼문화도 좀 바꿔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답니다.

    몇번째 기념일인진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4. 싸리꽃
    '10.5.31 5:25 PM

    음~~ 너무나 로맨틱한 꽃반지 마무리...ㅎㅎ
    축하합니다^^

  • 5. 옥당지
    '10.5.31 6:41 PM

    제가 좋아하는 밥상이에요...늘 이렇게 드시나요?? 우와...^^

    그리고 결혼 기념일...축하드려요!!

  • 6. 좌충우돌 맘
    '10.5.31 9:22 PM

    어쩜...

    글도 이렇게 멋지게 쓰시고...
    자꾸 자고 있는 교주에게 따가운 시선이 가니...이러면 지는거다. 지는거다....ㅎㅎㅎㅎ

    오후에님이 이토록 신봉하시는 그분의 심정을 꼭 알려주시길^^
    아....
    제대로 건강식인 그 밥상에 나도 앉고 싶다아~~~~~~~~

  • 7. 맑은샘
    '10.5.31 11:10 PM

    오후에님 명륜당에서 '혼례'치루셨나봐요~ 성대에 친구들이 많아서 자주 놀러갔었어요. 명륜당 은행 나무 밑에 앉아서 더운 땀 식히던 때가 생각나네요.

  • 8. 푸른하늘
    '10.6.1 10:30 AM

    명륜당 너무 반가운이름입니다. 가을 어느날 꽃잎처럼 떨어져 있던 은행잎들이 다시 생각이 나네요..

  • 9. 쎄뇨라팍
    '10.6.1 11:24 AM

    우선..
    많이많이 축하드립니다^^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근사한 밥상을 차렸다는 풍문은
    익히 들어본 적 없고요
    아!!!!!! 대체 이러신 분이 이 꼬레아에 있었다니..
    적잖이 놀랬습니다

    오후님의 직업은 아마도 작가가 분명할 듯 싶습니다

    si or no ???

  • 10. 오후에
    '10.6.1 5:16 PM

    loveahm님// ㅎㅎ 그렇다고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자학까지야... 간절히 바라시면 이루어지실 수 있는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미주님//그 생일상 부럽네요 ㅋㅋ
    어중간한와이프님//묵을 미루 쒀두지 않고 바로 먹을수는 없잖아요? 뭘 그리 놀라시옵니까? 제 정체는 그냥 살고 있는 사람일 뿐이옵니다. 꼬리달리거나 재주넘는 거시기는 아니옵니다.
    싸리꽃님//꽃반지 핸폰으로 찍었더니 저렇게 나오네요. 아무튼 예나지금이나 꽃반지는 이쁜것같다는...
    옥당지님//늘 저렇게 먹을 수 있나요. 우리집은 1식 3찬이면 보통 진수성찬에 속합니다. 감사
    죄충우돌맘님//저희 집 H씨께선 별 감흥이 없으신듯... 그저 격려차원의 칭찬을 이따금 할뿐
    입니다. 하여 그분 속 깊은 뜻이야 제가 알 수 없습니다.ㅎㅎ
    맑은샘//예 명륜당서 했습니다. 은행나무도 나무지만 저는 툇마루가 더 좋았습니다.
    푸른하늘님//저는 은행잎 떨어질 땐 안가봐서^^ 은행나무가 워낙 멋스러우니 그 풍경은 상상이 갑니다.
    세뇨라팍님//꼬레아에 제법 있는 인종들로 압니다. 직업? no... 전혀 관계없습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

  • 11. 할머니
    '10.6.3 1:55 AM

    주차장에 마련된 투표장 보니 개점 휴업상태 같았어요. 관계자들과 투표하는 사람은 한두명뿐...

  • 12. 블루(美~라클)
    '10.6.5 2:16 PM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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