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게시물들이 정말 사람을 울렸다 웃겼다가 하는겁니다.
그래서 보석같은 게시물들 또 없나 하면서 예전 게시판에 들어가 보고 구석구석 뒤지면서 정이 붙었어요.
그러면서 제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답니다.
혼자 천연 화장품이라거나 비누를 만들어 쓰면서 '자연에게 해나 좀 덜끼치고 살자'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궁상을 떠는 건가 싶어서 외로웠거든요.
그런데 EM! 발효액에 대한 82님들의 열정과 관심을 보면서 덩달아 저도 신이났어요.

한 여름 내내 좁은 집에서 EM 발효시키던 패트병들이 떠오르네요.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한 20병을 일렬로 늘여놓고 애지중지 신주단지 모시듯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어요.
그 후 지금까지 야금야금 잘 쓰고 있답니다.
특히 저는 샴푸와 반반 섞어 쓰는데(반반무많이..-.-)
비듬이라거나 두피 간지럼증, 두피의 각질제거(지성피부라 피부처럼 두피도 피지가 많이 생겨요.)에 효과를 봤어요.
아, 그리고 하루는 이태원길을 걸어서 괜히 산책한답시고 나갔다가 잠시 앉은 벤치에서 모기님들을 맞닥뜨린겁니다!
얇은 상의를 뚫고 등까지 온통 모기 물린 자국으로 가득했었는데, EM 발효액을 화장솜에 묻혀 대 놓았더니 가라앉았어요.
이 때의 저는... 정말 EM에 대한 신뢰로 눈에서 빛이 나올 지경(..)

양배추 스프 저도 해 먹었답니다.
카레도 타먹고, 된장도 풀어 먹기도 하고, 너무 잘 먹어서 효과는 보지 못했습니다. (ㅜ_ㅜ)
제가 외국에 있을 때 얼큰한 라면 생각이 나면,
동남아 라면 한 봉지를 사서 라면도 반, 스프도 반만 넣은 후
고추가루 2스푼을 풀고 양배추를 와장창 넣어 먹었어요.
그러면 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양배추가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어서 그랬나봅니다.

아빠의 단골 메뉴인 고추장 찌개

엄마의 단골 메뉴인 무 시래기 찌개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 보다 더 82 키친토크에 감사하는 게 있어요.
무엇보다 잊고 지낸 엄마의 음식, 어릴 때 저녁이 되면 "밥 먹어라"하고 부르던 그 소리의 느낌,
아빠가 퇴근하셔서 같이 먹던 식탁의 풍경 같은 것을 저 스스로 되찾게 되었어요.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서도 그렇지만, 집밥의 존재를 생각하지도 않고 산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문득 키친토크에 올라오는 각 집들의 저녁 풍경, 아침 풍경들을 보면서
아...
하고 그런 기억들이 다 떠올라 엄마한테 전화도 하고 많이 쫑알거렸어요.
뭐하면서 산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까마득히...
키친토크의 음식들을 보면서 "와 저런 것도 집에서 하는구나"하며 감탄하고 경탄할 때도 있지만,
"맞어맞어! 우리 엄마도 저거 해 줬는데!!"하며 내 기억 속의 모습들을 발견하는 게 좋았어요.
가족이라는 든든한 '닻'을 음식을 통해 하나 하나 지어가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82보고 하도 따라해서 남동생이 그러는데 오히려 지금은 제가 더 집처럼 밥을 먹는대요.

고추잡채

깐쇼새우

누룽지탕
이것은 무슨 중국 음식 3종 세트냐 싶으시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 아빠는 항상 어릴 때 부터 식구들을 대동하고 큰 중국집에 가서는
팔보채 큰 거, 유산슬 큰 거, 그리고 제일 비싼 짜장면!을 사 주시는 게 낙이셨어요.
그게 외식이었어요.
왜냐하면 아빠 자신이 요리집에서 다른 것을 많이 못 드셔 보신보신 까닭에
팔보채, 유산슬, 그리고 짜장면이 제일 맛있는 것이기 때문이었죠.
탕수육 처럼 튀긴 음식은 일반 짜장면 집에서도 배달해서 시켜 먹을 수 있는 것이니
다른 좋은 걸 먹여 주신다고 골라 주신 게 그것들인거죠.
그래서 식사로 짜장면을 시킬 때도 제일 좋은 걸 시키라고 하세요.
일반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도 하여간 젤 비싼 걸 시켜야 아빠가 좋아하셨어요. ^^;
그래서 저는 누룽지탕을 작년에야 처음 먹어 봤답니다 -_-;
헉!
누룽지가 왜이렇게 비싸..라고 생각했는데.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그릇으로 소스를 붓는데 '치아악~ 챠작~' 뭐 이딴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닙니까!
미각과 청각!
이것은 바로 소리없는 아우성..아우성.. 공감각적 심상 ... - _ -;
암튼 그 때 여럿이 둘러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제가 내색은 못했지만 엄청나게 흥분해 있었고
처음 보는 누룽지탕을 좀 겁내하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얼었단 얘기)
저것이 누룽지탕의 정체였구나.. 바로 저것이! 바로 저것이 정체!!
이제야 비밀이 풀렸다. 그래서 비쌌구나.. 해삼, 새우, 오징어 등등 팔보채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 가격이었구나. 누룽지탕이란 저런 것이었군...
그리고 맛있더구만요.
그 후 집에 다니러 갔을 때였어요.
역시나 아빠는 저희 남매를 대동하고 차에 태우고 자랑스러워하며 중국집으로 갔고
그리고 팔보채와 유산슬을 먹고 있는데 (하여간 팔보채는 배 터지게 먹습니다. 이 메뉴가 좀 식상해서 다른 것을 시켜 보려고 해도 우리가족 모두들 겁이 나서 못 시켰던 것 같아요 악 촌스러워 :-)
옆옆 테이블에서 "치지직, 챠작" 뭐 이딴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것이었어요.
맛있고, 흥을 돋우는 소리같이.
그런데 아빠가 슬핏 그 테이블을 보더니... "우리도 다음엔 저런저런 걸 먹어 보자"고 하셨어요.
그 때 알았죠.
아빠가 누룽지탕의 존재를 모르셨다는 걸요.
난 누룽지탕 먹어먹어 봤는데.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고.
저거 배달시켜 먹기도 할할 만큼 비싼 요리도 아니고 평범한 건데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고.
힝.
그런데 김혜경 선생님도 그렇고 82 구석구석 검색을 하면 누룽지탕 해 드신 분들이 많은거예요.
그래서 뭐 제가 누릉지탕 한 번 해 먹고 올해 내내 가슴에 먹먹하게 남았단 이야기랍니다.
이제는 제가 음식을 해 드릴 때가 됐는데 82가 아니었으면
누룽지탕을 해 볼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사실 레서피를 찾아보면 어찌저찌하면 된다고만 하지,
옆에서 엄마가 가르쳐주듯이 용기를 주지 못했을 거예요.

그저께 갑자기 택배라고 초인종이 울리는 겁니다.
멍하게 좀비처럼 나가서 받고나서
10초 후 꺅 소리를 질렀어요. 흐흐흐흐
기억나세요? 순덕이엄마님께서 맞춤법 틀린 걸 찾아내면 멜론님의 쿠키를 쏘시겠다고 한 게시물?
제가 하는 일이 앉아서 공부하는 일이라 왠지 의욕이 솟아서 바로 38200016년만에 로그인을 해서
댓글을 달았는데 당첨이 되었답니다.
그 일로 쪽지도 처음으로 써 보고... 호호

성탄 선물 상자였어요. 정말..
저 뿅뿅이 비닐은 대충 잘라서 창문 사이로 바람새는 곳에 찔러 넣어 줬습니다.
흐흐 여러 모로 귀한 선물입니다.
지금도 제 키보드 옆에 쿠키들이 옹기종기 사랑스럽게 (저에게 먹힐 날만 기다리며;;) 모여 있네요.
너무 감사해서 멜론님께라도 제가 만든 작은 선물들을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아요.
그렇죠... 순덕이엄마님이 쏘시고, 멜론님께 선물이 가는... 수상한 거래;;
수제쿠키도 다 먹어보고, 가 아니라
성탄 선물까지 받고 한해 내내 제가 스트레스가 받을 때 마다 음식으로 풀게 해 주고,
효도도 하게 하고, 주위 친구들에게 맛있는 거 먹여서 배도 채워주며 인심을 베풀게 한
올 한 해 82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