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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아주 비싼 저녁 먹은 날

| 조회수 : 18,582 | 추천수 : 7
작성일 : 2013-05-08 13:42:19


퇴근 하며 H씨에게 전화를 했다.

바쁜 건지, 운전 중인지 전화를 안 받는다.

집에 도착하니, H씨 “나도 방금 왔는데” 하며 반겨준다.

 

“비빔국수 하려는데…….” 하며 물 올리기에 “외식합시다. 파스타.”라 했다.

“웬 파스타?” 되묻는 H씨에게

“그냥, 내일 어버이 날인데 부모인 우리끼리 자축하고 위로나 하자고”

대답한 연유로 어제 저녁은 아주 비싼 외식을 하게 되었다.

 

H씨 추천하는 파스타 가게로 향했는데 정기 휴일이란다.

근처 한 바퀴 돌았으나 카페나 다른 곳은 많은데 파스타 집이 안 보인다.

“꼭 파스타 먹고 싶은 거면 다른 곳으로 가자”는 H씨에게

“그 정도는 아니고 파스타 포기, 다른 것 먹고 커피나 합시다.” 라며

들어간 곳이 들깨수제비 집이였다. 그런데 양이 아주 많았다.

H씨는 남기고 나는 배불러 씩씩거릴 정도로.

 

해질녘 불어오는 바람이 좋기도 하고 배도 부르기에 둘이 좀 걸었다.

묵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은 요란해도 어스름 저녁 무렵 산책길은 호젓했다.

H씨 살며시 내손을 잡는다. “아무도 없는데 좀 다정하게 가지?” 하며.

“왜 이러시나. 젊어서도 잘 안하던 걸” 농을 던지고 “뭐? 다정하게 걷자고” H씨 답하며.

‘하하 호호’ 기분 좋게 30여분 걸었다.


 

나는 커피, H씨는 허브 차 시켜놓고 산책 후 한담을 두런두런.

9시가 돼가기에 차에 타려는데 와이퍼 사이에 끼어 있는 종이쪽지.

 

‘주 ․ 차 ․ 위 ․ 반’

 

H씨 “비싼 저녁 먹었네!” 한다.

 

 

아침, 점심을 모두 거르고 오후 3시쯤 집에 도착한다는 K를 위해 준비한 간식


오전에 텃밭서 뜯어온 상추, 쑥갓, 부추 따위를 깔고 두부는 끓는 물에 데워.

 


등심 한 조각 구워 두부위에 올리고 돌미나리 한 가닥씩.

소스는 간장과 마늘, 설탕, 올리브유, 식초에 포도즙을 넣어 블렌더로 휘리릭~~

 


 

다시마육수에 도토리가루 섞은 밀가루 쑥반죽으로 감자수제비를 먹었던 토요일 저녁

 

 

 

---------------------------------------------------------------

 

어머니 아버지께

 

어버이 날입니다.

요 며칠 기온이 올라 따뜻한 봄날을 만끽합니다.

오늘도 날이 좋습니다.

 

어제 저녁은 에미와 밖에서 했습니다.

파스타 먹으려다 들깨 수제비를 먹었습니다.

어쩌면 ‘집에서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걸 비싼 돈 주고…….’

한 말씀 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K는 기숙사에 나가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기억하시는 것처럼 여전히 예쁩니다.

저를 닮았는지 무심한 편이라 가끔 서운하게도 만듭니다.

그런 저 때문에 어머님도 서운하셨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타고난 성품인가 싶어 ‘그만그만하다’ 넘기고 있습니다.

외동이라 조금은 ‘무심한 성정이 덜 외로움 타지 않을까.’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어버이 날이라고 ‘축하한다.’는 문자가 오전에 왔습니다.

저녁에 집에 올까 했는데, ‘학회가 있어 못 올 것 같다’는 전갈과 함께요.

밥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여전히 새 모이 먹듯 딱 그만큼만 먹고 있습니다.

 

 

엄마! 아버지! 그냥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 밥 줘’ 이 말을 장난이라도 다시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엄마.

2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지윤마미..
    '13.5.8 2:00 PM

    항상 불러도 블러도...애뜻한데 이름 엄마, 아빠..
    그런데 젋어서 그런가 지금 어린 세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불러대면 정말..지금은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데..철 없는 소린가 싶어요..

  • 오후에
    '13.5.8 5:09 PM

    어머니도 그러셨어요. 삼남매였는데..
    힘들게 하면 밥줘 소리좀 그만해라.... 나도 힘들다 알아서들 챙겨먹어라... 야단치셨어요.
    귀에 거슬리는 거 저는 이해합니다.

  • 2. 달로와
    '13.5.8 4:46 PM

    전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이 글이 참 마음을 적시네요
    출산달이라 두근두근 하고 있어요
    둘째인데도 이리 무섭네요
    행복해 보이세요^^

  • 오후에
    '13.5.8 5:10 PM

    그냥 부모님께 편지쓰고 싶었습니다.
    엄마 나 요즘 이러고 살아.... 하는.

    둘째 순산하실겁니다. 걱정마세요.
    오늘 행복하시길.

  • 3. 날씬한팬더2
    '13.5.8 5:45 PM

    글 링크 걸어도 될까요?? 출처는 확실하게 밝히겠습니다!!!

  • 오후에
    '13.5.9 9:00 AM

    네 걸어도 됩니다. 그냥 편하게 퍼가고 링크 걸고 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 4. loveahm
    '13.5.8 5:59 PM

    마지막 줄에서 울컥합니다. 참 담담하게 글 잘쓰세요^^

  • 오후에
    '13.5.9 9:02 AM

    공감해주시니 감사.

  • 5. 피치피치
    '13.5.8 6:48 PM

    감자수제비 먹고프네요^^
    늘 행복하세요~~~^^

  • 오후에
    '13.5.9 9:03 AM

    한달쯤 있으면 감자가 나오겠네요.
    장마철 햇감자 수제비, 감자전이 생각나네요.

    오늘 행복하세요~~~

  • 6. 냠냠
    '13.5.8 11:23 PM

    부모님 다 건강하게 계신데도 글을 읽으니 눈믈이 핑도네요~ 요새 제맘이 힘들다고 넘 무심했어요
    불효녀는 웁니다가 딱 그 표현이네요...
    엄마아빠 항상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 오후에
    '13.5.9 9:04 AM

    그럴수 있죠.
    제맘 힘들다고 부모님께 투정부리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딥니까... ㅎㅎ

    부모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7. T
    '13.5.9 1:19 AM - 삭제된댓글

    부모님 두분 다 계신데도..
    눈물이 핑~~ 합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오후에
    '13.5.9 9:05 AM

    잠간씩 스쳐가는 부모에 대한 애틋함이죠.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 8. 시네라리아
    '13.5.9 8:37 AM

    요즘 야채를 안먹어설랑...
    오늘은 야채를 필히 올려야겟어요~~

  • 오후에
    '13.5.9 9:08 AM

    무슨 말씀을...
    요즘 올리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누가 해주는 사람 없나 하면서요 ㅋㅋㅋ

  • 9. 고성
    '13.5.9 10:37 AM

    아.. 아름답다... 어쩜 이렇게 일상의 글이 아름다우신가요..
    드시려다 만 비빔국수가 먹고 싶네요.

  • 오후에
    '13.5.9 3:20 PM

    헉` 이렇게 극찬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며칠덥더니 비가 오다말다하네요. 흐리기만 하고 비빔국수 오늘은 저도 먹고 싶습니다.

  • 10. 쎄뇨라팍
    '13.5.9 4:02 PM

    ^^
    언제나, 잔잔한 수필 한편을 대하는 느낌은 여전하시네요...ㅎㅎ
    따뜻한 마음 가지고 일하러 갑니다~~

  • 오후에
    '13.5.10 8:47 AM

    오늘 비가 잔잔하게 오는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봄비 ㅎㅎ

    ^^

  • 11. GAONINEMINI
    '13.5.9 11:00 PM

    어떤 이의 수필에서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담그신 김장 김치를 냉동실에 얼려두었다던 내용의 글이 생각납니다
    전 아직 엄마 밥줘 하면 금방 차려주실 엄마가 계시는 데도 님의 그 글귀를 보니 왜 하릴없이 눈물이 나는지요 입술을 떨며 울었습니다 아마도 언젠가 저에게도 닥칠 그 날의 두려움 때문이겠지요 어버이 날 전화 한통 못 드린 제 무심함을 탓하며
    오늘은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 오후에
    '13.5.10 8:52 AM

    엄마 밥줘... 참 철 없는 말인데 그 말이 왜 해보고 싶은건지...
    기댈 곳이 필요한건지... 괜한 미련을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불러낸건지...

    반가운 봄비가 옵니다.
    이 비 그치면 텃밭의 감자며 상추, 고추 쑥쑥 자라겠지요.

    오늘 행복하시길

  • 12. 화창한날
    '13.5.11 3:42 PM

    외할머니께서 엄마 10살에 돌아가셨어요...제가 열살쯤되어...나는 엄마 없으면 못살것같은데..엄마는 외할머니없이 어떻게 살았냐고 난 못살것같다고..했던기억나요..그때도 엄마가 없다는게 두렵고 무서웠어요..
    앞으로도 그렇게될까봐 걱정됐어죠..

    제 나이 서른여섯..엄마 환갑다음해에 떠나시고...
    엄마 말대로 그냥 살아
    지기는하는데..많이 그립네요..
    내 딸아이와

  • 오후에
    '13.5.13 2:44 PM

    그렇죠^^ 그냥 살아지기는 하는데 문득문득 그리움이 사무치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리움만 붙들수없으니...
    어머니와 연은 거기까지였나 하는 생각들을 요즘은 합니다.

    날이 많이 더워졌네요.
    봄비오더니 나뭇잎도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지고...
    오늘도 행복하시길... 따님과 함께

  • 13. 푸헤헤
    '13.5.11 4:42 PM

    덤덤히 읽어내려 가다가 마지막 '엄마 밥 줘'라는 부분에서 코끝이 찌잉~ 눈물이 그렁그렁...
    어쩜 그말을 그리도 당당하게 하고 지냈었는지...
    결혼하고 이역만리 멀고먼 곳에 나와 살다보니 친정엄마의 밥상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네요
    이제쯤엔 제가 늘 차려드려야 하건만..
    엄마앞에선 늘 철없는 막내딸이 되나봅니다

  • 오후에
    '13.5.13 2:46 PM

    '엄마 밥줘' --->이말 참 당당하게 했어요. 그땐.
    지금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정도로 부끄러운 말인데
    그땐 어찌 그리 철없고 세상물정몰랐는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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