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이천에 가서 그릇을 사와야지 하고 벼르다가 오늘 기어코 다녀왔습니다. 지난번 푸드채널 녹화 때 정신우씨 아주 이쁜 옹기접시가 있길래 물어보니 이천에서 구해온 것이라고 하는데, 어디 것이냐고 몇번이나 물었는데 제대로 답해주지 않고...그래서 무작정 나섰습니다. 가면 있겠지 하고...
오늘 아침, CBS 방송 마치고,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며, 취향 기호가 거의 똑같다는 이유로 자주 붙어다니는 수연씨를 저희 집 앞 동사무소에 앞에서 만났어요.
출발시간은 9시. 내부순환도로 → 동부간선도로 →강변북로 →청담대교 →수서 분당간 고속화도로 이렇게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가다가 성남에서 내려서서 모란시장 앞을 지나 3번 국도로 들어섰어요. 특히 갈마터널 부근 엄청 밀리는 곳으로 유명해서 은근히 걱정했는데, 진짜 서울시민이랑 경기도민들 모두 외국으로 피서를 떠났는지 별로 길이 안 밀리더라구요.곤지암의 배연정 국밥집이 나타난 건, 동사무소 앞에서 출발한 후 1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 "자~알 왔다"며 쾌재를 부르는 동안 동원대학이 나오고 곧이어서 왼편으로 광주요가 보여서 얼른 차를 꺾었죠.
전 광주요세일이 좀 하자가 있는 물건들을 쌓아놓아 부담없이 고를 수 있는 세일을 상상했었는데 너무너무 조용한 거예요. 그런 세일이라면 복닥여야 맞잖아요.
전시장으로 올라가보니 세트 반상기며 다기를 진열해 놓은 틈에 몇몇개에 한해서 20~30% 할인을 해서 파는 거더라구요. 솔직히 너무 비싸고..., 제가 생각했던 그런 세일은 9월에나 한대요.
그래서 다시 나와서 지순택선생님의 요도 들어가 보고 한국도원이든가, 하여간에 그런 길가에 위치한 대규모 공방엘 들어가봤는데 주로 고가의 다기 세트가 주류. 가격표가 엔화나 달러로 되어있는데 제가 사기엔 좀 비싸더라구요. 제가 찾는 것이 있음직한 매장엘 들어가니 좀 허접한 것들이 놓여있어 낙심천만이고...
하여간 사기막골을 찾아야지 맘 먹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죠. 미란다 호텔을 향해서 가다보니 오른쪽으로 도예 마을이 있는 것 같아서 우회전 해보니, 바로 제가 찾던 그 사기막골이더라구요.
큰길에서는 잘 안보이는데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우묵한 골짜기 안에 스무곳도 넘는 그릇가게에 모여있더라구요.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몇몇 가게에사 그릇 구경 하면서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예사롭지 않는 가게엘 들어갔어요. 일단 그릇이 너무너무 많은데다가 그중에 눈을 잡아끄는 그릇들이 있더라구요. 여태까지는 없었는데...
먼저 물건을 골라낸 건 수연씨였어요, 너무 이쁜 볼과 같은 시리즈의 대 접시.
주인을 아무리 찾아도 없고 cc-TV 화면만...
마침내 만난 주인 아저씨에게 서울에서 왔다며 좀 싸게 달라고 하니까 빙그레 웃으며 언덕위에 위치한 가게로 가서 자기 안사람과 흥정을 하라고 하네요.
가게 상호도 모른 채 들어가보니 일단 제가 찾던 그집 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거기 여사장님과 몇마디 얘기를 나눠 보니 바로 수원댁님이 가르쳐주신, 요리 선생님이신 박종숙선생님과 친구분이라는, 바로 그 현대공예를 제대로 찾아온 거 더라구요.
책 사진에 쓰려고 한다며 그릇을 몇 점 골랐는데 이천 여주 분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어오는 지라 잠시후 다시 오기로 하고 일단 자리를 뜨려하니까, '일하면서 밥해먹기'를 보여달라고 하더라구요. 마침 지참하고 있던 책을 빌려드리고 미란다호텔로 갔어요.
호텔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 현관에 연두색 티셔츠를 입은 분이 보이는데, 참 이상하죠?, 전 우리 식구들 얼굴은 본 적이 없어도 그냥 분위기만 보면 알 수 있어요, 수연씨 보고 "우리 식구 아냐?"하고 물었는데 그분도 제쪽으로 달려오시는 거예요.
바로 여주댁. 차도 없이 40분이나 버스를 타고 저를 만나러 와주신 분이었어요.
호텔로비에서 얘기를 잠시 나누는데 파란마음님이랑 두투미맘이랑 안오시는 거예요. 아무래도 호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주차장 밖에 계시나보다 싶어서 일단 파란마음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업무와 관련된 상담이 끝나지 않으셔서 조금 있다가 식당으로 오시겠다고 하시고. 두투미맘께 전화를 드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차요금 정산소 옆에 계신다고...
이렇게 도킹을 마치고 근처 청풍명월이라는 식당에 들어갔어요.
너무 반가워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느라, 솔직히 전 음식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데 배는 부르데요. 소녀처럼 명랑하고 너무 인상이 좋은 여주댁님과 조신한 현모양처형의 두투미맘님, 그리고 두투미맘님의 친구분 은비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얼마나 허겁지겁 달려왔을 지 안봐도 눈앞에 선한, 파란마음님이 오셨어요, 뭐랄까 아주 소박하면서 사람좋은 미소가 얼굴에 가득한, 그런 분이셨어요.
진짜 저 오늘 감동했잖아요. 여주댁님, 두투미맘님, 파란마음님, 정말 어찌나 따뜻하고 정이 가는지...얘기 한마디 한마디가 재밌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10년은 친하게 지낸 친구이며 후배같은지...
식사 후 파란마음님과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직장이 있으면 이 대목이 영, 그리고 모두 같이 사기막골의 현대공예에 다시 갔어요.
어제 집을 나서면서 그릇값으로 10만원 이상은 쓰지 않으리라, 집에 있는 빗재가마의 접시나 대접, 이방자 여사의 접시 등과 짝을 이룰 수 있는 접시 몇개만 사리라, 말은 촬영용이지만 내가 두고두고 정붙이고 쓸 수 있는 실용적인 것들만 고르리라 하고 맘 먹었드랬어요.
그런데 이미 광주요랑 몇몇 요에서 그 엄청난 가격표를 보고 어지간히 주눅이 든 상태라서 그릇을 고르는데 다소 적극성이 결여됐다고 할까, 하여간 그릇이 맘에 드는 지 보다는 일단 그릇 바닥에 붙은 가격표가 더 의식 되더라구요.

이런 제 맘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현대의 여사장님은 푸른빛이 너무 아름다운 접시 두장과 그 보다 작은 접시 두장을 보여주네요. 그러더니 다소 투박한 그릇을 내밀며 아주 좋은 그릇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집에 있는 그릇들과 어울려 쓸 수 있는 걸 고른다고 하니까, 제가 밥 먹으러 간 사이 일밥을 좀 읽어 봤노라며 주로 서양의 식기인 것 같은데 그것과 어울리는 걸 찾는다면 차라리 그 그릇들만 쓰고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투박해서 내켜하지 않는 그 회색그릇을 다시 보여주더라구요. 몇몇 개를 골라서 계산대 옆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보니 조금씩 조금씩 정이 드네요.
손으로 빚은 그릇들은 기계로 찍어서 전사지를 붙인 그릇과는 달리 똑 떨어지는 맛이 없고 좀 어설퍼 보이기는 해도 두고두고 정감이 가잖아요. 그 회색 그릇을 놓고 이것 저것과 비교하면서 1시간 정도가 지났을 까 점점 그릇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래서 베이지색 볼 2개 추가하고, 또 다른 이쁜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렇다고 다 살 수도 없고... 아쉬움을 남기면서 확독까지 사고 계산을 마쳤어요.
우리 두투미맘님이랑 여주댁님, 저랑 같은 그릇 쓰고 싶으시다고 제가 고른 볼과 같은 걸 죄 한장씩 사시고...참 재미나게 그릇을 샀어요. 두투미맘님은 예쁜 핸드폰 줄을 하나 사서 선물로 주시구요.두투미맘님의 네살박이 아들이 어찌나 제게 애정공세를 펴는지...아주 행복했답니다.
현대공예에 한 2시간 머물렀나? 그집 사장님에게 참 좋은 얘기를 들었어요.
"선생님 같은 분이 우리 그릇 많이 쓰셔야 해요, 책에도 많이 내주셔야 우리 도예가들이 살아요. 여기 있는 그릇들, 그 도예가 선생님들이 젊다는 이유 하나로 값이 싼 건데..., 선생님 같은 분들이 우리 그릇을 많이 쓰셔야 우리 도예가 살아요"
맞아요, 우리나라 도예의 역사라는 건 세계 어디 내놓아도 자랑할만한 것인데 제가 너무 소홀히 했구나 하는 반성도 했구요.물론 우리 도자기가 좀 무겁기도 하고, 맘에 쏙 드는 걸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값도 만만치않고, 이런저런 이유로 소홀했는데.
그 사장님, "우리 그릇 쓰려면 참 많이 참아야해요"라는 말씀이 실감이 나더라구요, 좀 무거워도 참고, 손으로 만들어 가마에 구운 것이다보니 그릇 마다 색이나 형태가 조금씩 다른 것도 참아야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왔습니다.돌아온 코스는 중부고속도로 →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간선도로 →내부순환도로 이렇게 해서 들어오니 1시간10분쯤 밖엔 안걸리네요.
집에서 돌아와서 주욱 펴놓고 집에 있던 도자기들과 조화도 살펴보고... 그리고 조심스레 손으로 설겆이를 해서 엎어뒀어요. 어디다가 어떻게 넣을까, 궁리하면서.
아참, 그 사장님이 권해주실 때 제가 탐탁치않게 여겼던 그 그릇, 가지고 와서 보니 제일 예쁘네요. 벌써 거기에 저녁밥 담아먹었어요. kimys와 둘이서 저녁을 해결해야하는데 kimys가 또 김치말이를 먹자는 거예요. 그래서 김치말이를 새 그릇에 담았는데...와 밥이 더 맛있네요. 김치말이 품격이 올라갔다고 할까요? 한장 밖에 안 사온 그 볼 , 벌써 한 장 더 갖고 싶으니 어떡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