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에 퇴직한 오빠와 8개월전에 퇴직한 오빠의 친구
그리고 조기퇴직을 하고 자영업자가 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나의 남편
그렇게 부인들까지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오빠는 완전히 은퇴했고 오빠의 친구분은 구직중이었다
자영업자인 남편은 일을 마치고 왔다
남자들끼리 한 테이블에 앉고 여자들끼리 한 테이블에 앉았다
식사가 나오기 전 세 남자는 자기들이 집안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자랑하기 시작했다
먼저 오빠 친구분이 <나는 오늘 아침 반찬으로 브로콜리를 데쳤다>고 자랑했다
옆자리의 부인들이 <브로콜리를 데쳐서 반찬을 만들 정도면 잘 하는 편>이라며 칭찬했다
그러자 오빠가 <나는 내 밥을 스스로 챙겨먹고 먹은 후 설거지도 한다>고 자랑을 했다
오빠의 여동생인 내가 크게 칭찬하려고 했으나 올케언니가 <하이고. 어쩌다 한번>이라며
핀잔을 주는 바람에 오빠는 칭찬받지 못했다.
남편의 차례였다. 사실 그 자는 (자영업이 과중하기는 하나) 집안일을 하나도 하지 않으므로 자랑할 거리가 없었지만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옷을 벗으면 꼭 세탁바구니에 갖다 넣는다>고 자랑했다.
부인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부인들의 야유에 내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에효>하고 한숨을
쉬었다. 내 팔자야. 까지 하고 싶었지만 오빠 친구분의 부인이 계셔서 예의를 갖추느라
참았다
횟집의 마지막 음식인 매운탕이 나왔는데 각각의 테이블에 매운탕 냄비 하나씩과
수제비 반죽와 비닐장갑이 주어졌다. 남자쪽 테이블에서 <기다리면 아주머니가 수제비를
떼서 매운탕에 넣어 주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나왔다.
부인들 테이블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내가 수제비 반죽을 떼고 있었는데
부인들은 남자들에게 <비닐 장갑을 주는 건 직접 떼 넣으라는 소리>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 테이블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 남편이 비닐 장갑을 끼고
수제비 반죽을 떼기 시작했는데,
아주 찰지게 치댄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떼내면 되는데
부엌일이라고는 하지 않는 이 인간은 반죽 덩어리를 한손에 잡고
마치 딸기 따듯이 밀가루를 동그랗게 떼내는 것이었다.
그 때 방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던 중년 여성들이 크게 소리치며
<야아. 저 아저씨 수제비 반죽 떼는 것 좀 봐라>하면서 손뼉을 치며 몰려 들었다
술에 취해 호탕해진 부인들이 빙 둘러서서 남편이 딸기따듯 수제비반죽을 떼서
매운탕에 넣는 것을 보고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그 와중에 남편은 자기를 둘러싼
부인들에게
<제가 수제기 떼기만 2년을 했고><특히 저는 수제비 반죽을 떼어낼 때 손목의 스냅을
사용합니다>같은 소리를 했다. 아주 장관이었다. 술취한 부인들은 진짜 웃기다며
배를 잡고 웃다가 사라졌고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들은 맛만 좋다며 수제비가 들어간 매운탕을 잘도 먹었다
밤바람이 차가웠다. 오빠와 오빠의 친구는 국민학교 동창이었다.
부산 연산동에 살았다. 해가 지도록 골목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놀았다.
엄마가 저녁 먹게 오빠 데리고 오라고 시킬 때까지 골목에서 놀고 있었다.
오빠를 데리러 가면 하늘이 남색으로 짙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오빠와 오빠 친구가 은퇴를 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지 오래되었다.
오빠와 오빠 친구는 그 때 골목에서 헤어지는 것 처럼 마치 소년들처럼 헤어졌다.
내일 만나서 다시 놀 것 처럼.
오빠와 남편이 앞서서 걸어가고. 나와 언니가 뒤따라 걸었다.
세월은 언제 이렇게 흘러가 버린걸까. 오빠와 언니. 나와 내 남편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어 버렸을까. 그렇게도 예뻤던 언니가 이렇게 나이들어 버렸네.
세월은 조금씩 흘렀을 것인데 우리는 갑자기 모두 나이들어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춥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같이 걸어가고 있는 언니의 손이 따뜻했다. 손을 잡고 걷는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