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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응모] “술빵”이라고 아시나요?

| 조회수 : 4,549 | 추천수 : 3
작성일 : 2006-10-12 13:57:11
저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양복점을 하셨는데, 직원하나 월급 줄여보자하여, 어머니가 공장에서 함께 일을 하셨거든요.
저는 손이 귀한 집의 1남2녀중 차녀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5대 독자셨거든요. 언니가 처음 태어났을 때, 할머니나 아버지 모두 실망하셨지만 그래도 첫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생각에 넘어갔지만, 둘째인 제가 또 딸이자 대노(?)하셔서는 병원에도 안 오셨다합니다.
6대독자인 제 남동생이 태어났을때의 풍경. 상상이 가시죠?

그런 할머니 밑에서 자란 제가 당연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겠다고요?
아닙니다. 할머니 살아생전 제일 이뻐했던 손주가 바로 저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었지요.

제가 아마 5, 6살정도였나봅니다. 전 그때 또래아이들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던 인형이 꼭 갖고싶었습니다. 인형이 생기면 이쁜 옷도 입혀보고 싶었고, 머리도 따주고 싶었죠. 당시에 5000원 정도했던 미미인형같은건 꿈을 못꿔도, 1500원하는 인형은 그나마 팔도 돌아가고 머리도 돌아가서 그 인형이 꼭 갖고싶었더랬습니다.
그때 제동생의 하루 용돈은 300원, 저는 100원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주말에는 안 주셨고, 안주시는 날도 많았구요. 전 그 1500원짜리 인형을 사기위해, 매일 받는 100원 용돈을 며칠에 걸쳐 열심히 모았죠..
그게 한 천원쯤 모아졌을 때, 저희 셋을 돌봐주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몸이 아파 몸져누우셨습니다. 아마 감기몸살이셨었나봐요.
전 그때 모아놓은 천원을 가지고 구멍가게앞에서 한 3,40분을 서성거리며 고민했던거 같아요. 그리고 고민끝에 그 돈으로 복숭아 통조림을 하나 샀습니다.(전 그때 아프면 통조림을 먹는거고, 그걸 먹어야 병이 낫는줄 알고있었거든요)
그리고는 그 통조림을 들고 누워계신 할머니한테 가져가서 드시라고했죠.
그때 우시던 할머니 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부터였던거 같습니다. 할머니가 세상에서 저를 제일로 이뻐하셨던게..
제 동생은 6대 독자라서 귀애하셨지만, 저는 진짜로 저를 좋아해서 이뻐해주신다는걸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수 있었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음식솜씨며 살림솜씨가 참 야무지고 좋으신 분이셨어요. 매일 저희 간식으로 삶은 밤이나 고구마, 그리고 먹다남은 막걸리가 있으면 일명 술빵이란걸 만들어주셨죠.
그런데 전 그런 간식들이 싫었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달고 맛난 과자나 초콜렛 같은걸 먹고싶은데, 친구들앞에서 챙피해서 먹을수도 없는 저런것만 주시니까요. 지금으로치면 진짜 웰빙 간식이었는데 말이죠..
그 술빵이란건 밀가루에 우유랑 계란이랑 설탕, 그리고 먹다남은 막걸리랑 그리고 몇가지를 넣어 반죽한걸 폭이 깊은 후라이팬에 넣어 굽거나 찌는 형식으로 만드는 건데요, 술냄새가 많이 났죠.
그래도 참 맛있었는데, 전 그게 너무 먹기싫어서 하루는 할머니한테 이런 얘기를 한적도 있어요. “이 빵에서 술냄새나요. 아이한테 술을 먹이면 어떻해요. 제가 이거먹고 취하면 할머니는 좋겠어요” 뭐 대강 이런식으로 반항을 하곤 했지요.

어느날인가 아이들 전집을 판매하는 한 아주머니가 저희 집을 방문하셨는데, 베토벤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걸 할머니가 어떻게 아시겠어요.
그래도 할머니는 그 아주머니가 배고프실거라고 여기셨는지, 아니면 전집을 살 형편이 안되니 혹여라도 그 아주머니의 그런 유식한 얘기를 우리 손주들이 들으면 교육에 도움이 될거라 여기셨는지, 그 아주머니를 들어오시라하시더니 저희를 그 아주머니 옆에 앉혀두고는 저희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그 술빵하고 우유를 내오시더군요.
그 아주머니 한시간여를 설명하시면서 그 술빵을 정말 맛나게, 어떻게 만드는거냐고 물어보기까지 하면서 혼자 그 많은걸 다 드셨어요.
전 그 많은걸 다 드시는 그 아주머니가 더 신기했는데..ㅋㅋ

오래 사실줄 알았던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임신을 하고나니 갑자기 그 술빵이 먹고싶더라구요. 비슷하게 생긴 걸 길에서 옥수수빵이라며 팔길래 사먹어봤는데, 영 그 맛이 안나더라구요. “내게 너무 특별한 음식”이란 글을 보니 갑자기 그 술빵이 떠오르네요.
할머니 살아계셨으면, 제가 낳은 울 아기 너무 이뻐하셨을거고, 시댁에서 힘들어하는 절 품에 꼬옥 앉고 “한숨 자고나믄 다 나아질거다”라고 말해주셨을텐데..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어요..그 술빵이라도 한입 먹어볼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천랑이
    '06.10.12 1:59 PM

    이글 올리고보니 밑에 우노리님이 옥수수 술빵 만드는 법을 올려주셨네요..근데 저희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건 너무 심플했던거라 같은건지 다른건지 모르겠어요..

  • 2. 준&민
    '06.10.12 3:07 PM

    술빵... 먹고싶네요. 저도 천랑이님처럼 어느날 추억속에서 헤엄치다 한번 만들어봤는데...
    실패했습니다. 점점 옛날 먹지도 않던 음식들이 그리워지지요? 가을이라 더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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