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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음식이 배만 채워주는 것은 아니라네...

| 조회수 : 8,443 | 추천수 : 86
작성일 : 2009-06-10 20:54:59
우리 집엔  좋은 누룽지 만드는 전용 무쇠 솥이 있습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끼 먹을 분량의 밥을 지을 수 있는 크기이지요.
친정엄마가 한창 잘 쓰시던 솥이었는데 어찌어찌해서 뚜껑 잃어버린 짝 없는 솥이 되었어요.
그 뒤로 녀석은 우리집의 누룽지를 눌리는 전용 솥이 되었습니다.
친정의 식습관이 밥 먹은 뒤 꼭 누룽지로 입가심하거든요.정말 친정집의 완소 냄비였답니다.
그런 그 솥을 제가 결혼으로 집을 떠나며 꾸렸던 짐 속에 같이 넣어 나왔습지요. ^^;;


그렇게 저와 같이 집을 떠나왔던 그 솥 또한 제가 꾸린 제 집에서도 완소 냄비 그 자체였습니다.
저희 집에선 골치 아픈 찬 밥 처리란 고민 자체가 없었을 뿐더라 그런 문장 자체의 출현도 허용치 않았지요.
완소 무쇠 솥 덕분으로 말이지요.
몇 술씩 남은 밥도 한 공기쯤 모이면 누룽지를 만들면 그 뿐이었고.
기껏 끼니 준비를 다 해 놓았는데 갑자기 식사 약속이 생기면 남은 밥 또한 녀석이 해결 해 주었고.
끼니 때 귀가하지 못할 같아 밥을 해 놓고 외출했지만 돌아 와 보면 손도 대지 않은 밥도 다 녀석의 차지였지요.
길이 들대로 들어 누룽지를  눌려 구워내는 솜씨는 가히...벌건 장작불에 허연 김을 모락 내뿜는 가마솥에 견줄만 하답니다.물론 덩어리 진 찬 밥을 솥 바닥과 면의 온도 차를 잘 이해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고루  펴 바르는 솥 주인의 노하우도 더해져서 말이지요.그런 탓으로 우리 집 누룽지는 우리 집을 아는 지인들에겐 유명하고 인기가 좋답니다.


이 누룽지를 유독 좋아하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누룽지를 눌리는 솥의 주인인 저는 정작 눌리는 재미이지 누룽지를 그닥 즐기지는 않습니다.
끓여서 좀 먹을까...말이지요.
그런데 이 친구는 누룽지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우리 집에 오면 누룽지 그릇이 놓여져 있는 곳부터 갑니다.
갓 만들어진 누룽지도 딱딱하지만 만들어 놓은 누룽지는 마르기까지 해서 딱딱하기가 이루 말 할 수가 없거든요.
차가운 건 덤이구요.그런 걸 덥석 집어들어 와그작 와그작 어찌나 잘 부숴먹는지...
씹는 소리만 듣고 있는데도  제 이가 다 아플 지경이라니까요. 또 이걸 모전자전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제 겨우 20개월 된 친구의 아들도 누룽지 하나 쥐어주면 그렇게 조용 할 수가 없어요.
다 먹으면 더 달라고 칭얼대는건 수순이구요.
입 짧고 반찬 타박 심한 신랑이랑 사는 친구 가는 길에 누룽지를 있는대로 탈탈 털어 싸 주면 얼마나 좋아하는 줄 몰라요.
" 야호! @@이 아빠 며칠 아침은 해결 됐다! 니 누룽지 끓여 아침으로 챙겨주면 그건 좀 먹어..."


그 친구가 요즘 많이 힘듭니다. 어렵습니다.
동양화 난을 잘 치던 제 친구는 영국 유학까지 같다 온 재원 중의 재원이었습니다.
그런 그 친구가 남편의 일방적의 사직과 이어진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겪다가 2년 전에 작은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친구는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겪는 수모들을 이야기하며 어린 두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울었습니다.
"이 보 전진 위해서 일 보 후퇴! 몰라? 울지마...생각 잘 한거야. 창피하긴 뭐가 창피해. 평생 살 집도 아닌데.
얘! 난 이번에 너 다시 봤어. 괜히 유세 떨며 허세부리지 않고 실리적으로 대처하는 거. 바야흐로 실용정권시대 아니냐!"
친구의 등을 토닥이며 너스레를 떨었었지요.
그 날...친구를 위로하고 친구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파트 현관에서 입 짧던 친구 신랑을 보았습니다.
임대 아파트 화단 잔디 밭에서 골프 스윙 연습을 하던...그를.


우리집 쌀 독은 황토항아리입니다. 항아리 안에는 표주박 모양의 플라스틱 쌀바가지가 들어있습니다.
그 조그마한 쌀 바가지 두 개 양이면 우리 세 식구가 한끼를 맛나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사이...저는 꼭 반 바가지를 더 퍼 담아 밥을 합니다. 그리고 그 남은 밥으로 매일 누룽지를 만듭니다.
밥상에 올리고 남은  몇 수저를 모아 누룽지를 만들기엔...
갑작스런 식사 약속으로 손도 안 된 한 솥의 밥을 기다리기엔...
친구는 누룽지로 아침을 때워야 할 때도..그저 누룽지로 아이들의 주전부리를 해결해야 할 때도..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녁을 준비하려고 쌀 독을 열었습니다.
와그작. 와그작.
누룽지를 먹는 친구의 모습이 귓가에 맴돕니다.
표주박 모양의 바가지를 들어 쌀을 펐습니다.
한 바가지.
두 바가지.
...그리고 반 바가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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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도 올렸던 글이예요. 혹 보신 분이??? 계시더라도 모른척 해 주세요.
제가 요즘 자게에서 익명으로 너무 왕성하게 활동을 하다보니 회원인증겸..키톡 업데도 해야겠기에...^^;;;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이든이맘
    '09.6.10 9:09 PM

    옥당지님.. 잘 지내시고 계시죠..^^
    따뜻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요즘 경기불황에.. 갑작스럽게 남편이 실직을 하게 되어서.. 많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옥당지님 글 읽으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네요..
    특히 친구분한테 해주신 말씀이 꼭 저한테 해주시는 말씀같아서.. 여러번 읽고 또 읽었어요...
    한번 뵈었지만 너무 따뜻하신 분이라 항상 생각나네요
    제가 나중에 정식으로 초대하고 차 대접할께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구요...^^

  • 2. 20년주부
    '09.6.10 11:09 PM

    음식은 추억을 함께 하지요~
    누룽지를 보니 90세가 되어가시는 이모가 생각납니다.
    지금도 가끔 누룽지 튀겨서 설탕뿌린 것을 친정 어머니편에 보내주십니다.
    이모부 일찍 돌아가시고 평생 자식없이 혼자사신 이모께 너무 무심한 것 같은 반성을 해봅니다.

  • 3. 아뜰리에
    '09.6.11 12:49 AM

    자게만 휘 둘러보고 잠자리에 들려다 오랜만에 키톡도 살짝 들러보고가려다 옥당지님 글 보고 댓글 다네요.
    이런 글 참 좋습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들을 자주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약하지만 이런 분들 커밍아웃 시키며 서점에서 만나게 해드리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 누룽지의 고소함이, 바싹하며 씹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 4. 별찌별하
    '09.6.11 10:28 AM

    옥당지님 정말 좋은친구세요..
    친구분은 옥당지님 같은 친구 있어서 든든하실거에요.

  • 5. naamoo
    '09.6.11 11:36 AM

    살다보니 남편보다 더 오래묵은 친구도 .. 일년에 한두번 . 챙겨주기가 힘듭니다.
    옥당지님..글 보니., 사는게 이런거다.. 싶네요.
    그리고.
    임대아파트 화단 잔디에서 골프스윙연습하더라는 그 친구 남편분. . .
    정말.. 제 동생이라면 발이라도 걸어주겠습니다. 넘어지라고. 대체 ..뭡니까???

  • 6. 밍~
    '09.6.11 12:11 PM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저에게도 전해져와 눈물이 핑 도네요..
    옥당지님 친구 생각하는 마음씨도 예쁘고, 친구분도 꼭 다시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어요.

  • 7. 상큼마미
    '09.6.11 12:32 PM

    친구생각하시는 옥당지님 존경스럽습니다 ^^

  • 8. 열~무
    '09.6.11 12:44 PM

    참 우리 사는게 힘이 드네요
    저희도 너무 힘이 들어 어떨땐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은데...

    저희 남편도 오랜시간을 고전만 하고 있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장사라고 시작은 했는데..
    6월들어 매출이 엄청 떨어져 버려 어서 시간이 가길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 업종이 여름이 완전 비수기인가 봅니다.

    아침에 남편 전화에 한숨만 쉬고 있답니다.
    출근길에 타임벨트가 나가 버려 수리비가 40만원이 나온다고 하네요...

    참 사는거 어렵습니다.
    전 친구한테 하소연도 못합니다.
    대기업 차, 부장되는 마눌님들이 옷을 백화점가서 40-50만원 샀다고 자랑하는
    것들이 저 있는데서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사는거 힘들다고...
    전, 유구무언 할말이 없습니다.

  • 9. 플로라
    '09.6.11 4:30 PM

    글을 읽다 보니 따뜻한 눈물이 흐르네요. 어제 저녁 옥당지님 닭북채조림으로 식구들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조리고 나서 팬에 남아있는 간장소스에 물과 가래떡을 넣어 떡뽂이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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