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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오늘은, 아니 오늘부터 메주 쑤는 날

| 조회수 : 3,467 | 추천수 : 22
작성일 : 2003-11-24 21:17:12
인우둥은 시험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나와봐야겠죠.
그동안 입 간질거리고 엉덩이 들썩이는데도 꾹 참고 공부만 했는데
밀린 글들 읽으려니 눈앞이 캄캄하군요. ^^

오늘은 저녁에 퇴근해서 보니까
할머니가 메주틀을 꾹꾹 밟고 계세요.
콩을 삶아 메주틀에 넣고 네모난 모양을 단단하게 빚으시느라 그리 하신 거지요.
만들어 놓은 메주가 예닐곱 개 되고 남은 콩이 두세 개 정도 분량 밖에 안 되길래
"할머니, 왜 올해는 메주를 이렇게 조금 쒀요?" 했더니
"그럼, 메주를 한 날에 쑤냐?" 하십니다.
저는 메주 쑤는 것도 김장처럼
한꺼번에 싹 절이고 한꺼번에 싹 무치고 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 한 가마(인우둥네는 일부러 밖에 가마솥을 걸 아궁이를 만들었어요) 쪄서 빚어놓고
내일 또 한 가마 쪄서 빚어놓고... 한 이레 정도는 해야한다는 겁니다.  꽈당!

사실은...
그동안 서울에서 살면서
김장 담글 때도 당일날 와서 간이나 보고 돼지고기 삶은 것이나 훔쳐먹을 줄 알지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김장한다'하면 그저 배추에 속 넣고 쓱쓱 버무리는 것만 생각나고
'메주쑨다'하면 삶은 콩 줏어먹는 것만 떠올랐던 겁니다.

그런데 시골 내려와서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놀란 것은
김장이고 메주 쑤는 것이고 장 담그는 일, 푸성귀 키우는 일...
그 모든 것은 계획적이고 치밀한 '준비'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시간'과 뼛골이 녹아내리는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을 다시 새삼스레 알게 되었지요.

인우둥네는 지난 일요일(16일)에 김장을 했는데요.
엄마는 당일날 내려오셔서 하루종일 일하셨지만
할머니는 (배추농사, 무 농사 지으시는 것은 제외한다고 해도) 일주일 정도 김장을 준비하시더라구요.
갖은 양념들 다 갈무리하고 김장독도 닦고 심지어 우물(집 밖에 우물이 하나 있거든요)주변 청소까지...
무슨 손님을 맞는 것처럼 김장하는 데에 준비하는 것이 많더라구요.
오늘 메주 쑤는 것도
방에 메주 걸어놓는 나무도 점검하고
토종꿀통을 개량(?)시켜서 만드신 메주틀도 손 보시고
삭정이 꺾어 나무를 때서 가마솥에 콩을 삶으시고
그걸 또 다시 퍼 와서 방에서 메주를 빚으시고...
지금 메주들은 안방에서 보드라운 짚을 침대삼아 조로록 누워있답니다.
조금 '꾸득하게' 말려야 짚으로 맬 수 있다네요.
(그 와중에 또 낮에는 초하루라 절에도 다녀오셨어요. 기운 센 천하장사 로보트 태권 할머니!)

그러니 주는 밥이라고 앉은 자리에서 편케 먹고
돈 번답시고 손발 게을러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할머니를 보면서 자꾸 숙연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정말 아쉬운 것은
제가 이 모든 과정을 다 기록하지 못한 거에요.
김치 담그는 법, 메주 띄우는 법, 술 담그는 법, 장 담그는 법, 두부 만드는 법, 떡 찌는 법....
내가 다 해내지 못하더라도
기록만이라도 꼭 남겨두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마구 들어요.
벌써 우리 엄마 세대만 해도 못하시는 것이 많잖아요.
(인우둥 엄만 쉰이 넘어도 김치 안 담그신답니다. 할머니가 밭에서 툭툭 따서 바로 절군 맛난 김치를 항상 공수해주시기 때문이죠. ^^)
곧 디카가 장만되는대로
할머니의 요리, 노동, 애환... 이런 것들을 담아놓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인우둥입니다.
* 김혜경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11-24 21:30)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방우리
    '03.11.24 9:20 PM

    할머니 요리,노동,애환 82쿡에도 올려주실거죠?

  • 2. jasmine
    '03.11.24 9:22 PM

    저도 꼭 필요한 레시피가 그것들입니다.
    전, 어디서 배울데가 없네요. 울 엄마도 요즘은 귀챠니즘으로 안하시거든요.
    꼭 자료정리하셔서 제게도 좀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 3. 김혜경
    '03.11.24 9:31 PM

    인우둥님 키친토크로 옮겼습니다..그리구 조금 손질해서 헬로 엔터에도 좀 올려주심 안될까용??

  • 4. 치즈
    '03.11.24 9:39 PM

    사진과 함께 꼭 기록해보시라고 하고 싶네요.

  • 5. 꽃게
    '03.11.25 8:54 AM

    시험 잘 치르셨어요? 이런 것 물어보는 것 아니라던데ㅋㅋㅋㅋ

    메주...
    저도 집에서 한 3년 어머니랑 하다가 제가 너무 고달퍼서 친정엄마께 미뤘어요.
    친정엄마 하시면 제 몫으로 가져와서 장만 담그죠.
    정말 메주 쑤는 일이 장 담그기의 90%이상을 차지해요. 얼마나 힘이 들던지...

    그런데 인우둥님 메주를 그렇게 많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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