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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먹는거야? 아무도 모를걸.

| 조회수 : 9,839 | 추천수 : 25
작성일 : 2011-06-24 13:07:17



일요일 아침 도시락을 쌌다.
두부 부치고 가래떡 굽고 산딸기와 블루베리 챙겨 K에게 다녀왔다.
녀석이 기숙사에서 내려오길 기다리는 동안 버찌를 땄다.
길을 점박이로 만들고 있는 벚나무 열매를 학교 경비아저씨 따고 계시기에 나도 용기를 내 한주먹 땄다.









K에게 “너네는 이거 안 따먹어? 열매가 멀쩡하게 다 있네.” 했더니
“먹는 거야? 아무도 모를걸.” 하며 “엄마, 아빠 채집 좀 하지 마.” 한다.

중학교 때, 학교에 감나무가 많았다.
가을이면 그 감 따 먹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생각이 난다.
감 따먹다 걸리면 ‘정학’이 교칙이던 학교였는데,
등굣길 머리 위로 어깨로 발밑으로 툭툭 떨어지던 홍시 앞에 교칙은 교칙일 뿐이었다.
모자로 떨어지는 감을 받아내다 모자 속에서 떠져버린 감 때문에 여러 명 울상이 되기도 했었다.
그 때 애들 같았으면 저 버찌 익기도 전에 남아나지 않았을 거다.


-------------------------------------------------------------------------------------------


K에게

신문에서 보니 ‘리차드 기어’라는 배우가 불자인 모양이더라. 그런데 그 사람 인터뷰에
“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랍니다.’라며 보살의 원(願)을 세우고 수행한다.”라는 말이 있었어.
불자가 원을 세우고 수행하는 거야 당연한 걸 텐데.
그 원이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대답이 보기 좋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길 바란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만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
나아가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바란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야.
타자의 행복을 바란다는 건 그만큼의 실천을 한다는 거니까.

전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고통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연민이라면
친절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행동”이라고 했던 말 기억하니?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고 친절하게 살피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오늘도 행복하려면 어떻게 너와 관계된 존재들을 바라봐야 할까?

행복은 내 안의 나만의 행복도 있지만 타자, 다른 존재와의 관계속의 행복도 있다.
마치 두 얼굴을 가진 것 같기도 하고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해.

퀴즈 “무언가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무언가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에 대한 답은 찾았어?
답은 ‘감사’야. 감사하는 마음, 무언가에 감사한다는 건,
뭔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것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라고 생각해.

연민과 친절이 너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바라보고 소통하는 그릇이라면 감사는 아마 내용물쯤 될 거야.
생명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공기를 하찮게 여긴다면, 인식조차 할 수 없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숨 쉬기’를 통해 연결된 식물과 같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알 수 있으며
네 생명활동의 소중한 요소를 알 수 있겠니…….
그렇다고 공기와 같은 실제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만을 감사대상으로 하라는 얘긴 아니야.
살면서 사소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잘 살피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소중하고 특별한 것으로 여기라는 말이야.

누군가 너에게 베푼 작은 친절이나 도움을 너의 지위나 상황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의 실천이었던 친절’은 그냥 너의 잠시 편리함 정도로 끝나고 말 거야.
하지만 네가 그걸 감사하게 받아들인다면 차원이 다른 것으로 되돌려지지 않을까?

남들이 모두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라도 스스로에게 늘 물어보렴.
저게 과연 당연한 건가? 저것의 가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늘 스스로에게 물어보렴.

‘감사’라는 말이 나오니까 ‘배 사’라는 말이 생각난다.
할머니가 잘 하시던 말인데. 지금 생각하면 할머닌 언어유희에 능하셨던 분 같아.
요즘 말로 하면 개그 감이 있으셨던 게지.
어릴 적 무슨 생각에서인지 뜬금없이 청소 같은, 할머니가 시키지 않을 일을 해 놓곤 했었는데.
그럴 때 마다 할머니에게 자랑 겸 공치사를 했었어.

“엄마! 어때? 잘 했지?” 하면 “그래, 잘했구나, 기특하네.”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고
나는 꼭 “뭐 좀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라며 간식 같은 걸 바라는 뉘앙스를 풍기곤 했지.
그러면 할머닌 바로 “뭐 감사? 감은커녕 배도 안 산다. 니 콧구멍이다.
넌 내가 해준 밥 먹으며 매일 감 사냐? 배라도 사와 봐라.” 하셨지.
감사를 먹는 감을 사는 것으로 말을 바꾸거나 “엄마 심심해”하면 “간장 줄까?”로 대답하시던
할머니 개그가 그땐 썰렁하고 놀리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재밌게 느껴진다.
그 땐 왜 할머니가 해주시던 밥을 당연히 여겼는지 안타깝기도 하고.

K야
우리 사소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그 가치를 높여보자.
현대 사회에서 ‘감사’라는 가치는 그냥 마음가짐이나 표현이 아니라
때론 소유와 연결되어 엉뚱하게 나타나기도 해. 물건 형태의 선물이 대표적일 텐데.
물건 값에 따라, 내 필요에 따라 감사의 마음과 표현이 달라지지.
이 경우 ‘소유’라는 형태가 발생하기 때문인데. ‘감사’의 가치조차 물신성에 빠진 경우일거야.
소유와 무관한 ‘감사의 마음가짐’ 늘 자신에게 묻고 살펴야 할 대목이야.

오늘도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사회적 감수성을 활짝 열고 ‘감을 사’는 연습을 해보자.

비가 많이 온다. 작은 우산 쓰고 비 맞지 말고 좀 불편하더라도 큰 우산 쓰고 다녀.

그럼 오늘도 행복하렴.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nature1214
    '11.6.24 1:39 PM

    새까맣게 익은 버찌가 탐스럽네요
    평소 윗트넘치는 글로 재밌게 웃음주시더니 삶의 깊은 통찰력과 이타적삶의 진정한 행복을
    잔잔하게 속삭이시네요
    어쩐지 그런 멋진분이실줄 알았다능~~~

  • 2. 레몬사이다
    '11.6.24 1:47 PM

    글이 참 좋아요. 편안한 글체도 그렇고...
    올리는 글들 너무 잘 읽고 있어요.
    그런데 버찌가 먹는거였군요.
    예전에 한번 먹어봤는데 너무 떫어서 먹을 수가 없던데....

  • 3. 크리스티나
    '11.6.24 2:26 PM

    버찌가 벗꽃 떨어지고 나서 열리는 것 맞나요?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벗나무 밑에는 이맘 때 되면 차를 주차하면 열매에 테러당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주차자리를 남편이 알려주더라구요. 소나무와 벚나무 사이.. 예전에 국어책에서 배운 버찌씨 나오는 사탕가게 이야기가 생각나요.

  • 4. 오후에
    '11.6.24 2:51 PM

    nature1214//았~ 제글을 위트넘친다 하시니 잠시 어리둥절 했지만... 비록 착각하셨을지라도 기분은 좋네요. 버찌가 정말 작익어지요?? 살짝 손 대 땄는데도 터져버리더라구요...

    레몬사이다님//버찌 먹는 거긴 한데... 그닥 맛은 없어요. 요즘 애들은 절대 안먹을겁니다. K도 그걸 왜 따먹어 하더군요.

    크리스티나님//예 벚꽃지고 열리는거 맞습니다. 요즘 주장장에 벚나무 있으면 차가 엉망이 되죠. 버찌씨 나오는 사탕가게--->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지네요. 난 왜 기억에 없을까...ㅋㅋ

  • 5. jasmine
    '11.6.24 6:12 PM

    아버님이시죠? 아닌가.....
    음식을 이렇게 정말 손수 만드시나요? 볼때마다 감탄을 합니다.
    우리동네도 땅에 떨어진 버찌때문에 신발 바닥이 말이 아니예요. 저는 한번도 따볼 생각은 못했는데...
    아빠가 챙기는 딸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해요...항상 따님과 잘 소통하시길...

  • 6. 엑셀신
    '11.6.24 6:16 PM

    ㅎ 오후에님 땜에 82는 멀리하다가도 들어오게되요.
    장난스러워지고 가벼워지는 제 맘을 좀 잡아 앉힌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버찌가 좀 쓰지 않나요?

  • 7. 산체
    '11.6.24 7:53 PM

    퀴즈의 정답은 감사였군요... :) 오늘도 생각할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8. 스콜라
    '11.6.24 7:56 PM

    셀프 탄핵

  • 9. 프라하
    '11.6.24 9:01 PM

    그럼 오늘도 행복하렴.....
    냉큼....
    그럼 저도 오늘 좀 행복해지렵니다..험험..;;;

  • 10. 원지현
    '11.6.24 10:00 PM

    두부부침 어렷을때 무지 조와했엇는대.....

  • 11. pink dragon
    '11.6.24 10:02 PM

    버찌...
    둘이 먹다 둘다 쓰러졌던 기억이... ^^
    대학 캠퍼스내에 자주 걷던 길 양옆으로 벚나무 가로수가 흐드러졌었지요.
    벚꽃이 무상히 지고난 자리에 까맣게 익어가던 버찌를 두고 사이좋게 걷고 있던 친구와 실갱이가 붙었지요.
    저는 버찌도 먹는 열매다, 친구는 못먹는다 옥신각신 하다가 제가 하나를 따서 먹어보였답니다.
    생각했던것보다 맛이 있었다고 기억이 되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친구도 덩달아 맛을 보더니...
    둘이서 경쟁하듯 손에 닿는 버찌를 한참이나 따 먹었지요.
    그러다 둘이 우리가 뭐하는 짓인가 하며 마주 보며 웃다가... 둘다 쓰러졌습니다... ㅋㅋ
    천진하게 웃는 우리의 입 언저리는 마치 전설의 고향을 찍다 분장 못지우고 튀어나온 저. 승. 사. 자...
    웃겨서 깔깔대다 쓰러졌다눈... ^^
    버찌 볼 때마다 그 때 그 친구 얼굴이 떠올라서 큭큭대곤 합니다.
    벌써 20년이 되어가는 추억이 되었네요. 아 갑자기 슬퍼질라고 하넹...

  • 12. 오후에
    '11.6.24 11:04 PM

    살면서 천천히 가르치시고 오늘은 맛있게 외식하세요. 괜히 분위기 안 좋으면 가족식사 망치잖아요~
    아이들은 따로 설명함 해 주시며 잘 가르치셔야 할 듯요. ^^;

  • 13. 은혜
    '11.6.25 1:23 AM

    버찌씨 나오는 사탕가게-의 이야기 제목은 <이해의 선물> 이랍니다
    중학교인가 국어책에 나오는 이야기이죠..
    들으시면 생각나실겁니다...
    사탕가게와 금붕어가게가 배경인데 어디가 먼저인지는 헤깔리네요...
    작가가 금붕어가게주인인데 어느날 어린아이가 금붕어를 몇마리 주문하여 들고는
    터무니없는 돈을 내미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어릴적 비슷한 경험-사탕가게에 들어가 사탕을 한봉지 골라들고는 버찌씨를 내미니 주인아저씨가 빙그레 웃으시며 거슴른돈 까지 손에 쥐어주셨던 -이 떠올라 잠시추억하다
    자신앞에 금붕어를 들고 서있는 그 아이에게도 그렇게 거스름돈까지 건네주었던 내용이
    어머!!!저도 갑작떠오르는데 주인공이름이 위그든씨였던거같아요...

    한번 찾아읽어보세요.....이해의 선물....

  • 14. 파란하늘
    '11.6.25 6:24 PM

    늘 사색할 거리를 안겨주시는 오후에님같은 아빠를 둔 딸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감사라는 말이 요즘 제 화두가 되곤 하는데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이
    늘 생활화된다면 그다지 부대끼며 살 일이 없을 것 같네요.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남의 행복을 기원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진정 아름다움 그 자체이죠.^^

  • 15. 루루
    '11.6.25 10:09 PM

    어릴적 저희 집에 벗나무가 큰게 두그루 잇었어요. 그래서 벗찌 열릴 때면 아예 가지에 걸터 앉아서 따먹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ㅎ

  • 16. 오후에
    '11.6.28 9:45 AM

    은혜님//들으니 그런 글이 있었던것도 같고 여전히 생소?하기도하고...ㅋㅋ 암튼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파란하늘님//"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남의 행복을 기원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진정 아름다움 그 자체이죠" 22222 말처럼 쉽지 않지만 맘이라도 먹는게 낫지 않을까 합니다.

    루루님//벚나무가 두 그루나 있는 님의 어릴적 집이 부럽네요. 가지에 걸터 앉아 버찌 따먹는 꼬마가 그려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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