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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아무래도 손이 느린 것 같아요

| 조회수 : 9,162 | 추천수 : 90
작성일 : 2010-10-20 17:33:51



H씨가 “고추 말려서 자르며 내가 이 미련한 짓을 왜하나 했어.” 말하며 보여주던 붉은 고추입니다.

김장 무, 배추 심으며 걷어온 붉은 고추 건조기에 말렸다가 가위로 실고추처럼 잘게 잘라 놓은 겁니다.
냉동고에 넣어두고 요긴하게 쓰고 있다. 단맛과 매운 맛, 붉은 색깔 맛까지 아주 맘에 듭니다.
비록 매운 고추 말린 걸 일일이 가위질한 사람은 힘들었지만 쓰는 사람은 편하고 고마운 식재료입니다.


집까지 두어 정류장 남았는데 H씨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출발한다.” 고.
퇴근시간 차 막힐 건 뻔 하고 한 시간은 넘게 걸릴 테고 ‘써프라이즈!’ 저녁상이나 봐 놔야겠습니다.
시간 되면 청소도 좀 하고.

‘근데 뭘 하나?’ 궁리하며 집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부엌으로 달려가 설거지부터 합니다.
아침은 뭘 먹었는지 솥은 깨끗이 비워져 있고 다행히 설거지 거리가 몇 개 없습니다.

설거지 마치고 급히 현미에 팥 넣고 밥부터 앉힙니다.
주섬주섬 식재료 꺼내 보니 두부와 주먹만 한 애 호박 한 개, 솎은 총각무청 씻어 놓은 게 있습니다.
뚝배기 꺼내 총각무청 한 줌 집어넣고 자박하게 물 붓고 끓입니다.
센 불에 끓기 시작하면 된장과 다진 마늘 좀 풀고 중약 불에서 국물이 졸아들도록 지지면
구수한 된장 맛이 부드러운 무청에 제대로 밸 겁니다.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이 빠진 접시 *^^*


호박은 채 썰어 센 불에 소금 간해 후루룩 한 번 볶은 다음 붉은 고추 얹어 여열에 익혀 냈습니다.
밥이 뜸 들기 시작하고 뚝배기선 구수한 된장 지지는 냄새가 올라오기에
역시 예의 그 붉은 고추 한 꼬집 넣어주고 불을 더 낮춥니다.

후라이팬 찬물에 헹궈 다시 불에 올리고 팬이 달궈지자 들기름 두르고
손바닥에서 큼직하게 두부 썰어 주르륵 올려 놓습니다.
두부는 다른 기름보다 들기름에 부치는 게 노릇노릇한 색이 사는 것 같습니다.

이제 상만 차리면 되는데 애고 거실 탁자가 엉망입니다.
신문에 책에 컵에 과일 쪼가리 담긴 접시에……. 행주 들고 달려가 대충 치우고
내친 김에 걸레 챙겨들고 거실 청소까지 마칩니다.

좀 환해진 거실 탁자위에 푹 무른 솎은 총각무청된장지짐과 호박볶음, 두부부침으로 상 차리고 보니 김치가 빠졌습니다. 금치가 되었다는 배추김치도 내볼까 하고 김치 통 꺼내는데 무생채가 보입니다.

한 번 먹을 만큼 남았는데 시큼한 맛과 냄새가 제법 오래 된 것 같습니다.
김치 꺼낼 생각은 잊고 ‘이걸 어찌 먹나?’ ‘비벼 먹어 말아?’ 하다가 젓가락으로 무채들만 살짝 건져 참기름 넣고 깨도 뿌리고 뒤적뒤적 무치고 나니 그럭저럭 새 맛이 납니다.




H씨가 미련한 짓이라 말할 만큼 고되게 만든 저 실고추 잘 쓰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음식 색깔 맞추기도 괜찮고 본래 매운 맛에 말린 고추의 단맛까지 은은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실고추라는 식재료도 팔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꼴~랑 이것 준비하는데도 근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난 집안일에 손이 느린 것 같다’는 생각이 사진 보니 드는군요. ㅠ.ㅠ




“나 그렇게 게으르진 않은데”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열무김치
    '10.10.20 6:00 PM

    전 한 시간이면 식탁 치우고 행주 빨면 다 휙 지나가던데요 -.,-

    우와~~~~~~~~~~~~~ 오후에 님만큼 차릴려면 아침부터 준비 해야해요 ㅎㅎㅎ
    무청지짐이랑 다시 살아난 무생채랑 밥에 쓱 올려서 ~~~

  • 2. 순덕이엄마
    '10.10.20 6:48 PM

    한시간에 청소하고 반찬 하고 ..모터달은 손 자랑하나욤? ㅎㅎㅎㅎㅎㅎㅎ

  • 3. 프리
    '10.10.20 8:23 PM

    붉은 고추 참 이쁘게도 썰어놓으셨네요...
    요즘 무값이 아직 후덜덜이라... 무채 사진에 확.... 꽃힙니다.

    저 어제 김치 담그면서..무채 아주 조금만 넣었어요... 그냥 새로 안 사고 있는 무로....
    배추보다 무 값이 안내려간다 하니 이유를 모르겠네요.,,그쵸?

  • 4. 너트매그
    '10.10.20 8:34 PM

    언제나 좋은 글... 새큼한 생채에 참기름, 깨 넣고 조물조물한 냄새가 느껴지네요.
    근데 이빠진 그릇 써도 되나요?
    저도 아까운 그릇이 이 빠지면 써보고 싶은데... 사기 조각 나온다고 해서 매번 버리거든요.
    써도 된다는 의견이 대세면 쓰려구요.

  • 5. 코댁
    '10.10.21 1:11 AM

    아웅...우리 신랑을 떠올리며 비교하려고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사람은 다 다르다. 울 신랑도 훌륭하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오늘따라 오후에님 글이 더 주부스럽네요-- 정말 마나님은 좋으시겠어요. 일을 해줘서 고맙기도하겠지만 뭐든 함께 하는듯한 기분이 들거같애요.

  • 6. 오후에
    '10.10.21 11:39 AM

    열무김치님//제가 일을 그만큼 대충한다는 거겠죠. ㅎㅎ
    순덕이엄마님//한시간이나 준비했으면서 '겨우 이거'야 소리 들을까봐 미리 엄살 부렸습니다. ㅎㅎ 사실 손 빠른 편도 아니고요. 순덕이엄마님 상처럼 차릴려면 전 진짜 아침부터 준비해야 할겁니다. 진짜 모타 달린 손 갖고싶어요.
    프리님//오대산도 다녀오시고 김치도 담으시고 바쁘십니다. 무값 안내려가는 건 누군가 사재기 한다는 거겠죠. 작황이 안좋은 것도 있겠지만.... 너무 비싸요.
    너트매그님//그런 얘기 있긴 한데 전 그냥 써요. 유약바른 면이야 이미 떨어져 나갔고 속은 흙으로 구운건데... 가루로 떨어지는 미세한 흙좀 먹는다고 죽기야 하겠어 하는 맘으로요.
    코댁님//잘하셨습니다. 비교하지 마옵소서...

  • 7. 훈이민이
    '10.10.21 3:13 PM

    늘 오후에님 글 잘보고 있습니다.
    사실 H님 넘 부러워하면서요 ㅎㅎㅎ
    우리집 양반(?)도 오후님 반에 반도 못가지만 고추 자르라고 시키면 저정도로 잘합니다.
    단지 자발적이냐 아니냐에 차이지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8. 늦여름
    '10.10.22 1:08 AM

    저기 실고추를 저는 안먹어요.
    어느 분이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게 그게
    대장에 암이 생긴 자리에 실고추 덩어리가 쌓여있었더랍니다.
    그 분이 실고추를 즐겨 드셨던 듯해요. 즐기지마세요;;

  • 9. 오후에
    '10.10.25 9:13 AM

    훈이님이님//저 고추는 제가 자른거 아니랍니다. ㅎㅎ 이쁘게 실고추 만들어 보라 하세요. 이왕이면 요리도 해달라 하고...
    늦여름님//걱정감사.. 전 고기를 안먹어서 그쪽 걱정은 좀 덜한 편이랍니다. 소화되지 않고 대장까지 도달할 정도의 음식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실고추 모양의 덩어리였겠지요. 삼가 가신분의 명복을 빕니다. 오후부터 추워진다네요 건강챙기시길

  • 10. atomcandy
    '10.10.26 1:57 PM

    오후에님!
    먼저 생신상에서도 봤지만, 정말 실고추 좋아하시네요.
    이렇게 활용도가 높을 줄 알았으면,,
    고추가루 빻을 때, 조금 남겨둘걸 했습니다..
    전 오늘 처음뵙는 분이라, 꺼꾸로 글을 읽고 있습니다..

  • 11. 오란氏
    '10.11.22 11:11 AM

    어쩜 저리도 정갈할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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