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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 응모) 침을 꼴깍 삼키게 했던 폐백음식들.

| 조회수 : 4,350 | 추천수 : 56
작성일 : 2006-10-25 10:15:15
'지금은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습니다.' 왜 옛 어른들은 그렇게들 말씀 하시더라구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린시절, 학창시절, ...... 제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 '예식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집은 지도의 남쪽끝에 있는 작은 소읍이었고 예식장이라고 해봐야 그 작은 읍에 달랑 두개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주말만 되면 어찌 그리 예식도 많은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절대 가능하지 않을것 같은 - 거의 30분에 하나씩 예식이 잡혀 있었거든요.-일이지만.... 그때엔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이었고 집에는 할머니 아빠 엄마가 계셨는데 아빠가 많이 편찮으셔서 좀 먼 시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으니 집에는 연세 많으신 할머니와 저 뿐이었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빠의 병이 오랜 입원으로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갑작스런 집안의 먹구름이 저를 화악 덮쳤습니다. 소읍에서 공무원이셨던 아빠에게 무어그리 큰 재산이 있었겠어요. 게다가 아빠는 오랜 입원으로 휴직하셨고 엄마는 병실을 지켜야 했으니 경제활동은 물론이고 일주일에 한번 집에 오시기 힘드셨지요. 사실 처음에는 어떤 경위로 제가 예식장에 '취직(?)' 하게 되었는지 언제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던 어느날 부터 저는 아빠의 선배가 하시는 예식장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답니다.

엄마는 피아노를 아주 잘 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어릴때 부터 피아노를 배웠지요. 제가 예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피아노 덕분이었습니다.  그때 그 작은 읍에서는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어린아이가 또 별로 없었던것도 같습니다. 저는 30분마다 이어지는 결혼식에서 피아노를 치고 사진촬영을 할때엔 의자도 옮기고 신랑신부 친구들 사진찍을때 친구들이 별로 없으면 사진에도 찍히고 끝예식때에는 식장 정리도 하면서 주말을 보냈습니다. 생각보다 힘든일이었습니다. 그땐 그 일이 얼마나 싫었었는지...... 그때부터 제 호칭은 여러사람들에게 '김양아' '미쓰김' 이었었기에..... 저는 그 호칭 정말 싫어합니다. 으윽...

그런데 그렇게도 싫어하던 예식장 아르바이트에서 제가 제일 흥미로와하고 좋아했던 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폐백이었습니다. 간혹 피아노를 치는 사람을 고객이(?) 직접 데리고 온다거나  예식의 시간차이가 생기면 저는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대신 폐백 준비실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온갖가지 예쁘고 고운 먹거리들이 더욱 예쁜 치장을 하고 예쁜 그릇에 담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것은 구절판이었습니다. 어떤때엔 곶감이 어떤때엔 육포가 어떤때엔 노오란 은행이 리본줄을 매고 반짝임을 입히고 곱게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폐백음식을 만들던 아줌마들은 바쁜 와중에서도 어찌 그리 말들이 많으셨던지 온갖 읍의 소문들이 아줌마들의 입에서 나왔던것도 같네요. 지금생각해 보면 좀 의아하기도 하지만 그 때엔 정말 귀하고 귀했던 바나나 송이도 폐백상에서 처음으로 봤었습니다. 물론 흔한 풍경이 아니었지만요. 그 바나나의 깊은 인상으로 시작되었던 건지.... 그건 저도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폐백 상을 좋아했었습니다. 신랑 신부가 고운옷을 차려입고 절을 하고 절을 받고 뭐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저는 그때 '행여 저 폐백음식 누가 놓고가진 않나' 눈을 굴리며 살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밥상도 제대로 차려먹기 힘들었던 그때 주전부리라고는 없었던 저에게 정말 너무도 유혹적이고 참기힘들었던 폐백상에 오른 음식들. 대추는 어떻게 저렇게 높은 탑을 쌓고 있을까 , 밤은 어찌 저리 이쁜 모양으로 깎았을까, 은행은 어떻게 저리 반짝거릴까, 닭은 어찌 저리 목을 꼿꼿하게도 세우고 있을까.

한참을 잊고 있다가, 잊고 살다가  얼마전에 폐백음식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이제는 노인이 된 엄마 아빠께서 '뭐 쓸데없는 폐백음식을 배우러 다니냐'고 하셨지만..... 저는 대답을 못하고 그냥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때 그렇게 먹고 싶었던 폐백상 음식들을 실컷 먹어볼 수 있어서 넘 좋았습니다. 물론 제가 배웠던 폐백음식이 그 옛날 제가 너무도 바랬던 그 음식들보다 더 고급스럽고 화려했지만...... 지금도 저는 그때의 그 음식들이 ...... 그립습니다. 한 참 놀기좋아하는 아이때의 놀고싶던 바램을 보두 빼앗아버렸던 주말 아르바이트였지만...... 하루종일 일하고 나면 그 다음날 발바닥이 아파 학교가기도 힘들고 싫어하게 했던 아르바이트였지만.....너무나 일찍부터 내게 어울리지 않는 호칭을 붙여준 아르바이트 였지만......그때 페백음식 준비실에서의 그 마음떨린 설레임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cherish
    '06.10.25 12:25 PM

    와 공감 백배예요.
    저는 호텔에서 일했거든요, 한달에 예식 20번씩!!!
    근데 항상 폐백음식은 다르더라구요.
    닭 머리는 항상 징그러웠다는---
    글을 너무 정감있게 잘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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