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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굴비 이야기

| 조회수 : 10,913 | 추천수 : 0
작성일 : 2012-02-19 23:26:00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굴비는 최고의 생선이었습니다.
갈치, 꽁치, 고등어 같은 생선은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생선이었으나,
굴비는 그렇게 쉽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은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옛날 얘기 속의 자린고비가 굴비 한마리를 매달아놓고 반찬삼아 밥 한술 먹고, 굴비 한번 쳐다보고 했을까요.
두번 보면 "짜다, 한번만 봐라"했다잖아요.

굴비는 큼직한 조기를 소금물에 절였다가 어느 정도 말린 것을 말하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냥 소금물에만 들어갔다나온 것 같은, 거의 말리지 않아 생물조기나 다름없는 것을 굴비라고 팔고있지요. 
거의 말리지 않은 것이라 받자마자 냉동해놓고 먹어야하구요.
또 이걸 구우면, 예전에 먹었던 그 굴비 맛이 아니어서,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랬는데, 며칠전 친정오빠가 굴비를 몇마리 주었습니다.
아마 오빠도 저 같은 불만이 있었나봐요. 요즘 굴비가 우리 어렸을 때 먹었던 그 굴비 맛이 아닌 것이...
명절에 들어온 굴비를 베란다에서 말렸다며 몇마리 주었습니다.
굴비를 주면서 " 너무 많이 말린 것 같더라"하길래, "그럼 찢어서 고추장에 무쳐먹을 때 염려놓으셔"했는데요.
아, 그게 글쎄, 어렸을 때 먹었던 바로 그 굴비 맛입니다.

 



보기에도 요즘 파는 굴비보다 많이 말랐죠?
맛이 궁금해서, 한마리 가스렌지에 달려있는 그릴에 구웠는데요,
수분이 적은 탓에 거죽이 보통 것보다 많이 타긴 하는데요, 맛을 보니 딱 옛날 그맛 입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런데 구워보니, 왜 요즘 굴비를 그렇게 말리지않은 상태로 파는 것이 알것도 같았습니다.
아마, 조기를 말려서 팔면 크기가 많이 줄어들어 제 값 받기 어렵고,
덜 마른 것에 비해서 비린내도 심하고,
또 구워 놓으면 많이 말리지 않은 것에 비해서 양이 적어서 불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빠가 말려준 굴비를 구워먹으면서...잠시 5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1983년인가, 84년인가, 근 30년전 어느 여름 저는 남해쪽에 피서를 떠났더랬습니다.
휴가지에서 전화를 했더니, 그만 아버지가 쓰러지져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거에요.
아직 일정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서울에 올라와보니,
아버지께서는 뇌동맥이 꽈리처럼 부풀어 터지는 뇌동맥류 파열로 입원중이셨어요.
당시로서는 참 어려운 수술이었던 뇌수술을 받으셨지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이시던 아버지께서 굴비가 드시고 싶다고 하는거에요.
당시 제가 다니던 신문사 바로 앞길이,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새벽이면 수산시장이 섰던 곳이어서,
신문사 앞길로는 어울리지 않게 건어물가게도 있고 생선이나 어패류 파는 가게가 여러개 있었어요. 
건어물가게에 가보니 가게 앞에 큼직한 굴비가 한두름 걸려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비싸보였습니다.
한두름을 다 살 능력은 되지않아서, 한마리만 팔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하게 팔수 있다고 하는데, 
당시로서는 거금인 5천원을 주고 한마리 샀습니다.
길이가 20㎝도 넘는 큼직한, 그 굴비 한마리를 들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굴비 한마리를 받아든 우리 엄마는 그걸 구울데가 없어서 그걸 들고 연세대 앞 굴다리 근처의 어느 식당에 가서,
굽는 삯으로 5백원을 내고 구워서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드실 때 옆에서 한점 먹어보니, 어쩜 그렇게 맛있는지..아버지께서 달게 드시는 이유를 알 수 있더라구요.
그후에 한 마리 더 사다 드리고는 더는 못사다드렸습니다.
당시 5천원이면 지금 돈으로 몇만원인데...그 굴비값도 부담스러운 가난한 월급장이였죠..제가...

지금도, 당시 사다드린 굴비의 크기며 마른 정도, 맛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한데..요즘은 그런 굴비를 통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굴비를 찾을 수도 없고, 그런 굴비를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도 이젠 안계시고..
큼직하고 통통하며 많이 마른 굴비...이젠 그저 제 머릿속에만 있는 그리운 굴비입니다. 

2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녹차향기
    '12.2.20 12:20 AM

    저도 생선을 먹을때면 '원래 머리가 제일 맛있는 거야'라며 자식들 살 발라주시고
    본인은 머리를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제가 25살 벌써 10년전에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그 모습과 목소리가 생생해요
    오늘 아버지 생각에 잠을 설칠거 같네요 선생님...

  • 김혜경
    '12.2.20 12:30 AM

    새해들어서 아직 성묘를 못다녀와서인지, 요즘 아버지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버지께 가서 엄마 모시고 다녀온 여행보고도 해야하는데...

  • 2. 발발이
    '12.2.20 12:27 AM

    선생님의 글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네요.

    우리집도 내일은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말린생선을 쪄 먹어야겠네요.

    뭐든 귀해야 맛있는 법인데, 저는 부모님이 말린 생선을 보내주시니 고마운 줄도 귀한 줄도 모르고 냉장고 속에

    넣어만 두고 있었는데 내일은 먹으면서 부모님께 전화도 해 드려야겠어요.

  • 김혜경
    '12.2.20 12:31 AM

    저도 아버지 살아계실때는 제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거 잘 몰랐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절절해지고, 후회도 되고...

  • 3. 물방울
    '12.2.20 12:31 AM - 삭제된댓글

    벌써 5년이 되었군요
    엊그제 같기만 한데...

    요즘은 생물도 큰게 보기가 힘들죠
    예전 제가 어린시절..6,70년대..에는 팔뚝만한게 맛도 무지 좋았는데..
    제 어머니도 그맛이 늘 그리웁다고 하세요
    어느때 부터 남획으로 큰것도 보기 힘들어지고 맛도 예전보다 못하고...
    한점만 뚝 떼어 올려도 한숟가락 가득차던 큰 참조기가 먹고 싶어요

  • 김혜경
    '12.2.20 12:33 AM

    그러게요..벌써 5년입니다.

    아, 요즘 그렇게 큰 굴비가 없는 건, 씨알 굵은 조기가 적기 때문인가보네요.
    예전 조기랑 굴비가 그립습니다.

  • 4. 프리티
    '12.2.20 12:48 AM

    저는 오늘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어요.
    여동생과 함께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요.
    15년이 지났는데도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넘치는 사랑을 주고 가신 덕분에 오늘도 제가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내게 해주신 것의 만분의 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참으로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아버지를 둔 선생님과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 김혜경
    '12.2.20 9:03 AM

    저는...5년이 흘렀다고...처음에 비해서 그리움이 흐려져서, 가끔씩 아버지께 죄스런 마음이 듭니다.
    엄마는 떠난 사람, 조금씩 잊어야 살 수 있다고 괜찮다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하시지만...저는 아버지께 미안하지요.

  • 5. 향한이맘
    '12.2.20 3:12 AM

    큰애가 열이많이나 일어나 해열제먹이고 몸 물수건으로 닦아 재우고 나니 잠이안와 들어와봤어요 굴비 고추장에 무친것..입맛돕니다 출산을앞두고있는데 친정엄마가 조기사다 베란다에 말리고있다 연락왔어요 조기를 유난히좋아하시는 울엄

  • 6. 향한이맘
    '12.2.20 3:16 AM

    마..늘 이렇게 직접말리셔서 냉동해놓으시고 주시지요 몇년전 돌아가신 친정아빠는 생조기매운탕을 참좋아하셨는데..새벽 잠이안와 주저리주저리 남겨봅니다

  • 김혜경
    '12.2.20 9:04 AM

    큰 자제, 열은 좀 떨어지셨는지 모르겠네요.
    다들 아버지와 조기에 관한 추억들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저처럼..

  • 7. 겨울비
    '12.2.20 4:10 AM

    저도 그 바짝 마른 영광 굴비를 알지요.
    노릇 노릇 하게 마른 굴비를 짝짝 찢어서 고추장에 찍어 먹던 모습을 기억하네요.
    오빠가 그 굴비를 아주 좋아했고 특히 그 굴비알이라면 어쩔 줄을 몰라하며 좋아했는데, 다행히 제 입맛에는 좀 짜다는 생각이 들고 저는 별로 즐기지를 않아서 큰 다행이였지요.

  • 김혜경
    '12.2.20 9:05 AM

    그 비릿한 구운 굴비를 찬물에 만 밥과 먹으면, 참 맛있었는데...

  • 8. 소연
    '12.2.20 8:30 AM

    아침부터 코끝이 찡합니다...
    저랑 식성이랑 성격이 많이 비슷하신 친정아빠...
    제나이 30대 초,아빠연세 60..세 이젠 10년만 지나면
    아빠 가실때 나이랑 같은 나인데.. 아직은.. 아빠를 생각하면
    유치원적 아이같은 마음이에요..

  • 김혜경
    '12.2.20 9:06 AM

    제가..공연한 얘기를 써서 울적하게 해드린 건 아닌지요...

  • 9. 완전초보
    '12.2.20 11:14 AM

    어렸을때 부엌에 굴비를 두릅으로 걸어 놓고 한마리씩 연탄불에 구어먹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굴비가 부매랑처럼 휘어져서 말라가는데........빠짝 말라가면서 굴비자체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졌는데,,,,,그맛을 잊을수가 없어요.저희 엄마는 이제 그런굴비 없다고 포기하래요..추억의맛.

  • 김혜경
    '12.2.22 12:01 AM

    생선구이는 연탄불에 굽는 게 제일이죠.
    아, 불고기도 연탄에 구우면 얼마나 맛있는지..
    완전초보님 댓글보니까 옛날에 먹던 굴비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 10. candy
    '12.2.20 5:04 PM

    굴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데...엄마음식 생각이 많이 나네요.

  • 김혜경
    '12.2.22 12:01 AM

    나이가 아무리 많아져도, 늘 엄마의 음식은 그립죠??

  • 11. 희망걷기
    '12.2.20 5:34 PM

    저도 굴비 보니 얼마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이 나서 코끝이 찡하네요...
    오랜 시간 투병하셔서 거기다 코줄로 미음 드시는게 다인 투병생활서
    잡숫고 싶던게 많았던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저희 친정아버지께서도 굴비 참 좋아하셨는데....
    저도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줄 몰랐어요.....막내라 온갖 생떼에 억지에 아버지와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날 풀리면 산소가서 좋아하시던 커피...그리고 드시고 싶어하시던 하얀 쌀밥 꼭 올려드려야겠어요..

  • 김혜경
    '12.2.22 12:03 AM

    저도 산소에 갈때마다..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커피, 콜라, 호두과자 그런거 사가지고 갑니다.
    살아계실때 더 잘해드렸어야 하는데...아버지생각하면...참 후회되는 일이 많습니다.

  • 12. 베플리
    '12.2.20 7:35 PM

    저도 굴비에 대한 옛추억이 있어요.
    초등학교 다닐때 배탈이 나서 죽을 먹는데
    엄마가 굴비를 사다가 밥솥에 참기름 두르고 쪄주셨는데
    짭조름하니 얼마나 맛이 달던지요...
    그 맛을 아직도 못잊고 있답니다.
    요즘은 굴비가격 압박이 심해서 먹을 생각도 못해요..ㅜㅜ

  • 김혜경
    '12.2.22 12:03 AM

    아, 굴비를 그렇게도 먹는 군요..

  • 13. 삶의향기
    '12.2.21 4:09 PM

    선생님 글 보니 돌아가신 아빠생각이 나네요.
    아빠께서 병원에 임종을 앞두고 계실때 취나물을 맛있게 드셔서
    요리솜씨도 없는 제가 바쁘게 삶아 조물조물... 나물 만들어 드렸는데
    맛있게 드셨는지......그 기억은 안납니다.
    돌아가실즈음 이맘때인데, 달디단 겨울딸기와 취나물무침...을 드셨어요.
    또한 생선중에는 고등어구이를 꽤 좋아하셨구요.
    지난주일엔 미사시간에 아빠생각에 기도도 드리고
    곧 기일 다가오는데 아빠생각이 나서 몇자 적어보았네요..

  • 김혜경
    '12.2.22 12:04 AM

    저도 아버지 기일 다가와요.
    올해는 3월20일.
    정성껏 음식만들어서 올리려구요.

  • 14. 안젤라
    '12.2.21 10:35 PM

    굴비 드실때마다 아버님 생각이 나시겠어요
    전 비비빅을 즐겨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 나네요
    외국에 계실때도 비비빅은 즐겨 드셨다네요
    현충원에 성묘오실때 수요일로 잡으셔서 오세요
    노은동 퀼트 모임에 들려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

  • 김혜경
    '12.2.22 12:04 AM

    아...요즘도 모임 계속하세요??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할게요.
    제가 가서 커피 대접할게요.

  • 15. 낙엽동네
    '12.2.21 10:39 PM

    시큰해 지네요..ㅜㅜ

    친정엄마가 아빠께 자주 전화 드리라고 하시는데
    항상 맘 따로 몸 따로...
    제새끼일에만 급급하게 사니...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맞는 말인가 봅니다..아빠..죄송해요..ㅜㅜ

  • 김혜경
    '12.2.22 12:06 AM

    맞아요. 부모님보다는 아무래도 자식이 우선인 삶을 살게되지요.
    그러다보면 후회의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전화드리는 날과 시간을 정해놓고 한번 해보세요. 스스로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하시면 실천이 좀 쉬우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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