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비가 온 후, 오늘은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사무실에서 손님도 만나고, 업무도 보고 했는데, 어찌나 스산하던지요.
집에 들어와서, 밥을 하려니까, 너무 꾀가 나는 거에요.
"여보, 밥하기 싫다!"
"그럼 외식하지 뭐, 뭐 먹을까?"
"오랜만에...장어 먹을까?"
"그럴까!"
이렇게 의견이 모아졌는데....제 입으로 외식하자 해놓고, 외식하러 나가는 게 싫어지는 건 또 뭡니까?
우리 친정어머니 잘 쓰시는 말씀으로, '변덕이 죽 끓듯' 하는거죠.^^;;
말로는 장어구이 먹고 싶다고 해놓고, 나가려니까 귀찮은 거에요.
쌀 씻고, 메뉴 계획도 없이 일단 멸치육수부터 불에 올렸습니다.
"여보, 그냥 집에서 저녁 먹고 말까봐"
"왜, 하기 싫다면서... 나가 먹지"
"그냥 아무거나 해서 먹어"
"나가는 게 귀찮아서 그래? 그럼 편한대로 해"
날씨도 쌀쌀한데, 운전해서 외식하러나가는 것도 좀 그렇고,
먹고나서 "추워" "추워"소리하면서 집에 들어오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저녁 준비를 집에서 하긴 했는데요,
국이나 찌개거리가 딱히 없는 거에요.
집에 있는 재료들로 끓이는 국이라면,
달걀국이 제일 만만한데 바로 어제 비빔밥 먹을 때 먹었구요,
냉동실의 닭고기 꺼내서 카레를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카레 먹은지 며칠 되지 않았구요,
냉동실의 매운탕용 생선도 있는데, 넣을만한 채소라곤 무 밖에 없어서 그것도 그렇구요,
된장찌개를 끓일까 했더니 두부도 없고 호박도 없고,
그러다가 청국장 생각이 났습니다.
진하게 우려놓은 멸치육수에,
집에 있는 대로, 김치, 감자, 무 썰어넣고, 청양고추, 파 넣어서 마무리했는데요,
무염청국장을 넣었기 때문에 국간장으로 간해서 약간 싱겁게 끓였는데,
간이 마침 딱 알맞게 되었어요.
한 냄비 끓인 후 다시 먹을 만큼 덜어서 뚝배기에 옮겨담아 다시 한번 더 끓이는 것이 평소 스타일인데요,
오늘은 주물냄비에 담아 다시 한번 끓여 식탁에 올렸습니다.
이 냄비 너무 작아서, 사놓고 한번도 안썼습니다.
냄비에 붙어있는 스티커만 안 떼었으면 다른 걸로 바꾸면 좋은데, 스티커를 떼었으니 그럴 수도 없고.
그런데 한끼 된장찌개를 담으니까 그럭저럭 쓸만 하네요.
문제는 청국장 찌개가 아니라 카레 같아 보여 왠지 어색하다는 거...한복 자락 아래로 보이는 킬힐같다고나 할까요? ^^
아홉가지 나물 중 여섯가지는 다먹고,
남은 세가지 나물에, 고등어 구이, 김치, 구운 김, 청국장찌개,
이렇게 상을 차리니, 장어구이가 결코 부럽지 않는 저녁밥상이 되네요.
외식비...또 굳었습니다...^^
오늘 굳은 외식비로 장을 보면, 또 며칠간은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을 거에요.
나는 손 하나 깜짝 하지않고, 차려주는 밥 먹고, 설거지고 뭐고 없이 딱 일어서버리는 외식,
그게 참 편하고 매력있는 일이긴 한데요...요새는 그마저도 시들합니다.
소박한 반찬이라도, 내 집 밥이 젤인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