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 며칠, 거의 요리를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점심은 약속이 있어서 나가서 먹고,
저녁도 뭐 시켜다 먹기도 하고, 가족행사 때문에 나가서 외식하기도 하고...
사람 맘이 그렇잖아요?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그 편안함에 익숙해지고, 안주하게 되는거.
게다가 제 경우는 며칠 요리를 하지 않으면 뭘 해야할 지, 막막해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됩니다.
오늘까지 음식을 하지 않으면 부엌에 들어가기 더 싫을 것 같고,
냉동실과 냉장고에 재료를 쌓아두고도 뭘 해먹어야할 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것 같아서,
내키지는 않지만, 억지로 음식을 했습니다.
메뉴는 낙지볶음.
원래는 일요일 저녁에 먹으려고 냉동실에서 꺼냈는데, 그날 먹지 않고,
김치냉장고에 두었다가 오늘 볶았습니다.
매운탕 양념은 미리 잘 섞어 두었다가 풀어야 더 맛이 나는 것 같은데,
낙지볶음은 볶으면서 양념을 하나하나 넣는 편이 나은 것 같아요.
준비된 재료는 달랑 낙지와 양파, 파, 마늘뿐.
프라이팬을 아주 뜨겁게 달군 후 식용유 살짝 두르고 낙지와 양파 파를 모두 넣고 볶았어요.
낙지가 어느 정도 익어가기 시작할 무렵, 고춧가루 2큰술, 설탕도 2큰술, 맛간장 1큰술, 조선 간장 1작은술,
생각나는 대로 넣어서 볶았어요.
중간에 간을 보니까, 낙지는 질기면서 너무 맛이 없는 것 같은거에요.
참 큰일났다 싶더라구요, 며칠만에 하는 음식인데...가만히 생각해보니 다진 마늘을 넣지않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다진 마늘 넣고, 생강가루를 넣으니까, 맛이 극적으로 반전!! 참 마늘이 대단한 것 같아요.
깨소금 좀 뿌리고, 참기름 조금 뿌린 후 바로 불에서 내려서 접시에 담았습니다.
식탁에 올리면서 식구들에게 미리,
"낙지볶음이 좀 질긴 것 같아요!"하고 양해를 구했는데,
맛을 본 식구들이 아무도 낙지볶음이 질기다는 말에 동의를 하지않는 거에요.
뭐지? 싶어서 맛보니, 다행스럽게도 낙지가 연하게 잘 익은거에요.
우리가 보통 낙지나 쭈꾸미 같은 연체동물, 너무 많이 볶으면 질겨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너무 살짝 볶아도 질기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볶으면서 제가 간을 봤을 때 질기길래 좀더 볶았더니 오히려 딱 알맞게 익은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딱 알맞게 익은 정도를 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거,
몇분 볶으세요, 어떻게 될때까지 볶으세요, 이렇게 표현해야하는데 그게 참 어렵잖아요?
결국은 간을 보면서 볶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아, 불은 처음부터 끝까지 센불에서 볶아야한다는 팁은 드릴 수 있겠네요.

낙지볶음으로는 식탁이 너무 빈약할 듯 해서, 오랜만에 달걀찜을 했어요.
달걀 3개를 풀어서 뚝배기에 담고, 소금 간하고 파 좀 뿌려주고,
후추, 깨소금, 고춧가루 조금씩 뿌려준 후 알미늄호일로 뚜껑을 덮어서 찜기에 쪘습니다.
달걀물을 체에 거르지도 않았는데 알미늄호일 뚜껑 덕분에 표면이 매끄러워, 먹음직스러운 달걀찜이 되었는데요,
사진은 왜 이렇게 허옇게 맛없어 보이게 나왔는지...
제가 최근에 살림이 또 하나 늘었어요.
행주삶는 기계 만드는 회사에서 하나 써보라고 행주삶는 기계를 보내줬는데, 거기에 찜기도 있어요.
발열판은 하나인데, 냄비는 행주용, 찜용 이렇게 두개가 있는 거에요.
그 찜기에 뚝배기를 넣고, 스위치만 눌러뒀더랬어요.
밥상을 차리면서 보니까 스위치가 꺼져있길래 뚝배기를 꺼내보니 달걀찜이 딱 알맞게 되어있는 거에요.
덕분에, 반찬 하나가 거저 생긴 기분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