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버지를 뵙고...속리산 경희식당에 점심 먹으러 갔더랬습니다.
경희식당의 이두영사장님과, 제 친정오빠가 40년지기 친구라는 거...아시는 분은 아실거에요.
오빠와 고등학교때부터 단짝친구인데..
오빠가 대학교때...두영이 오빠 할머니가 하시던 경희식당에 놀러갔다가 벌어진 사건(?)도 있었습니다.
오빠랑 저랑 머리결이 비슷해서, 머리숱이 아주 많고, 머리올이 굵으며 약간 곱슬입니다.
경희식당에서 놀러가서, 문장대에 갔다오다가,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오빠의 머리가 산발(?)이 되는 바람에,
장발단속에 걸렸대요.
우리 오빠, 순경아저씨가 붙잡으면 좀 봐달라며 고분고분하게 굴 것이지,
"머리가 긴 게 아니라 숱이 많아서 그렇게 보인다"고 뻗대고 따지다가 괘씸죄에 걸려,
즉결재판에까지 넘겨졌었습니다.
모월모일 모시까지 모처에 출두해서 재판을 받으라는 처분을 받고,
모월모일에 엄마랑 같이 출두했는데, 냅다 오빠를 닭장차에 태워 법원으로 데려가더라는...
울 엄마..상상도 못했던 상황에..쓰러졌었잖아요..그때..ㅠㅠ
요즘처럼 머리를 길러서 땋고 다니는 남자도 있는 때에, 귀밑으로 머리가 좀 내려왔다고, 재판이라니...
참...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암튼 이때부터 오빠 친구이자, 우리 집에도 드나들어 저와도 안면튼지, 37년이나 되는 두영오빠...
82cook의 좋은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광고가 단 한개도 안들어와 운영비가 모자랄 때 제일 만만하게 전화할 수 있는 물주..^^;;

그 경희식당을 오늘 처음 가보았습니다.
갔더니.. 말로만 그 듣던, 상다리 휘어지는 상이 이렇게 차려져 나오네요.
반찬을 세어보니 마흔 몇가지인데..헷갈려서 세다가 말았습니다.

다 맛있었지만, 특히 요거..깨송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들깨부각을 튀긴 것 같았어요. 요게 너무 맛있었어요.
두영오빠가 점심시간이라 그렇게 바쁘지 않았더라면, 좀 싸달라고 해보는 건데..
마~~이 아쉽습니다...^^


도라지를 이렇게 한 것도 맛있었어요.
고춧가루 조금 뿌리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뿌린 것 같은데, 뻘겋게 무친 것과는 다른 담백한 맛이었습니다.

이 외꽃버섯은 순수 자연산이라 해서 많이 먹으려고 했는데,
먹고나서 입에 남은 향이 제겐 좀 생소해서..

생표고를 넣은 버섯전골도 맛있었어요.
먹은 반찬을 좀 자세히 찍고 싶어도, 다 잡히질 않아서..이렇게 석장으로 찍어봤습니다.



경희식당의 반찬들을 먹으면서, 남경희 할머니의 요리책 생각이 났어요.
아, 그게 그 북어보푸라기구나, 아 이게 박정과구나...하면서..
경희식당 음식의 특징이라면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다는 점입니다.
고춧가루도 많이 안 쓰고, 마늘도 많이 안 쓰고, 들기름이나 참기름도 많이 안쓰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어쩌면 맵고 짠,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좀 안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리고..경희식당이 인상적인 것은...

식당 곳곳에 이런 종이도시락이 쌓여있습니다.
이렇게 고무줄과 비닐팩 한장이 패키지로 되어있습니다.

스티로폼 접시가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도시락이라는 점이 반가워서 열어보면,
이렇게 칸이 나눠져 있죠.
이거..뭐 하는 거냐 하면요.

자기가 먹다 남긴 반찬을 싸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물은 나물 대로 이렇게 담아 집에 가지고 오면 한끼 비빔밥은 거뜬합니다.

나물뿐 아니라,
저랑 우리 친정어머니가 먹다 남긴,
황석어젓무침, 마늘장아찌, 감장아찌, 북어보푸라기, 소라초무침, 호두강정도 몽땅 쌌습니다.
김치와 깍두기, 나박김치, 된장찌개만 먹다남은 것..그냥 두고 왔어요.^^
김치 깍두기는 싸올걸 그랬다 싶은 생각도 나네요.
식당들의 반찬 재사용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기 훨씬 전부터,
이집은 이렇게 해왔대요. 그래서...여자손님들이 아주 좋아한다네요.
아예, 나물같은 건 다 먹기도 전에 더달라고 해서 챙기는 분들도 있다고...

속리산에 가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속리산뿐 아니라 곳곳에 추색(秋色)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나라걱정 하다보면...정말 밤잠이 안오지만....
이번 주말만이라도 잠시 눈을 들어 주변 산을 한번 바라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