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다방 콩다방 같은 커피전문점이 대세이고,
퍼콜레이터로 끓인 원두커피보다는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가 유행인 요즘,
30대 이하라면...정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 한자락 할까봐요. ^^
요즘에는 다방이라는 용어도 잘 쓰지 않아서 생소하거나, 아니면 이상한 영업을 하는 곳을 상상하게 되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다방이 지금의 커피전문점처럼 일반적인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마담도 있고, 차를 나르는 레지도 있고, 달걀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를 마시는 아저씨도 있고,
학교 앞 다방도, 뭐,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는 정도?!
당시 다방 메뉴 중에는 반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이 다방에 모여앉아 죽치고 시간을 죽일 때,
배가 안고프면 커피, 배가 좀 고프면 이 반숙이었습니다.
반숙이라는 것이..원래의 용어는 노른자가 반쯤 익었다는 뜻인데...
당시 다방에서는 노른자를 반만 익히거나 말거나...반숙이라고 불렀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수란(水卵)인데 말이죠..
수란은...중고등학교 가정시간에 배워, 집에 돌아서 실습을 해본..달걀요리인데..은근히 까다롭죠.
끓는 물에 달걀을 익힌 것이라,
느끼한 달걀프라이보다 담백하고, 퍽퍽해서 목이 메이는 찐달걀보다는 부드럽고...
그런데, 프라이나 찌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있어서, 잘 하게는 안되죠.
느닷없이, 며칠전부터..수란이 먹고 싶은거에요.
예전처럼 다방에 가서 반숙을 시킬 수도 없는 것이고, 오늘 저녁에 장난삼아 해봤습니다.
자료 검색도 귀찮아서..옛날 기억을 더듬어가며...
방법은 일단 냄비에 물을 펄펄 끓이고,
준비된 국자에 달걀을 하나 깨넣은 후에,
국자의 바닥을 끓는 물 위에 갖다대어 달걀의 흰자를 서서히 익혀갑니다.
흰자가 어지간히 익어가면 국자를 물에 담아 달걀을 익히다가,
국자에서 달걀을 분리, 달걀을 완전히 잠수시켰다가 건져내는 것이죠.
이때, 수란이 잘되고 못되고의 관건은 국자에서 달걀을 얼마나 잘 분리해 내느냐 하는건데..
오랜만에 해보는 것이라서, 은근히 걱정이 되는 거에요.
달걀 빨리 응고하라고 물에 식초를 넣으라고 했던 것도 같고,
국자에 기름을 아주 얇게 바르라고 했던 것도 같고,
아무래도 기름을 바르는 편이 쉬울 것 같아서..그렇게 했습니다.
식구들 앞앞이 작은 그릇에 수란을 담아냈습니다.
역시, 좀 까다로워서 그렇지, 어떤 달걀보다 맛있습니다.
수란을 먹으면서, 문득,
대학 방송국 활동할 때, 반숙 하나 먹어가면서 몇시간 동안 나름의 방송철학을 펼치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다 뭘 하고 사는 지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허리 23인치의 날렵한 아가씨에서 당시보다 부피가 두배는 되는 아줌마가 되는 동안,
그들도 머리숱이 왕창 빠져서 머리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확 늙어버린 아저씨들이 되어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회심의 미소도 한번 지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