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랑 저희 삼남매의 작은 소망이 있었다면...오늘, 이번 생신만이라도 같이 보내주셨으면 했던 것인데...
그 3주를 못참고..그냥 가셨어요...
저희는 압니다, 아버지가 조금 일찍 가신 건 엄마에 대한 사랑때문이라고..하루라도 아내를 덜 고생시키려는 때문이라는 거..
돌아가신 후 맞는 첫번째 생신이라서, 엄마랑 저랑 둘이서 대전 국립현충원엘 가기로 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고속도로는 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야하는 곳으로만 아는 사람인데...
이 얼마 만의 고속버스 여행인지.... 설레임 반, 걱정 반...

아침 9시10분 녹번역 플랫폼에서 엄마를 만나서 강남고속터미날에 가보니까, 9시50분.
10시에 출발하는 유성행 우등고속버스가 있어서 얼른 탔어요.
우등고속버스라는 걸 처음 타봤는데..좋던데요..의자와 의자 사이가 널찍하고 의자 등받이가 뒤로 확 젖혀지고..^^
타자마자 잠이 들어서 유성 다 가서 일어났어요.
내려보니, 12시5분.

유성터미널 근처에서 전복삼계탕을 먹었는데..1인분에 1만원이나 하는 그 삼계탕, 머리털 난 이후 그렇게 맛없는 삼계탕은 첨이었어요.
아기 전복 한마리가 얹혀져있다는 걸 빼놓고, 아무리 점수를 주려해도 줄 수 없었다는..
국물은 밍밍하고, 고기는 퍽퍽하고...ㅠㅠ...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나서, 유성에서 아버지 생신상을 준비했어요.
일요일 마다 재를 올리니까 전이니 나물이니 지지고 볶는 건 하지말자는 것이 어머니의 의견.
그래서, 내일이 어버이날이니까 우선 카네이션 바구니 하나 사고...
(흰색 카네이션 바구니는 없네요..하는 수 없이 빨간 카네이션으로..)
생일케이크도 제일 쬐끄만 걸로 하나 샀습니다.
고속버스가 휴게소엘 들러서 가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호도과자를 사려고 했는데, 휴게소를 거치지 않아서,
대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찹쌀떡과 단팥빵, 그리고 소보로빵을 샀어요.
과일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바나나와 참외와 포도를 사고,
또 너무너무 좋아하시던 콜라와 담배도 샀어요.
아, 너무나 사랑하시던 커피는 제가 집에서 타가지고 갔구요.
커피를 타면서, "나, 설탕 더 달라!"하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귀에 생생해서, 커피를 아주 꿀죽을 만들어갔어요.

생신상 준비를 다해가지고 택시를 타고 국립현충원엘 들어가니까, 2시10분쯤,
아직, 아버지 묘에는 석비가 세워지지 않았어요.
멀리 보이는, 미처 잔디가 자라지 못한, 목비가 즐비한 곳에 저희 아버지께서 잠들어 계세요.
마침 대전청사의 조달청에 볼 일 보러 서울에서 내려온 오빠가 2시50분쯤 도착, 함께 상 차리고 아버지께 절을 올렸어요.
회사일때문에 함께 오지 못해 아쉬워하는 동생에게는 포토메일을 날려주는 쎈쑤!!
당근 고맙다는 문자도 받았죠!!

자리를 펴고, 아버지 앞에서 엄마랑 오빠랑 도란도란, 아버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십년 태우시다가 불과 3,4년전 끊으셨던..담배도 두대나 드렸어요. 엄마의 승인하에..
엄마가, "여보 미안해, 담배 못피우게 하느라, 내가 각서도 받고, 그 각서 코팅해서 문에다 붙여놓고, 못되게 굴었지"하면서...
아버지랑 잠시 시간을 보내다 왔습니다.

"아버지, 현충일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니까..현충일 지나서 다시 올게요..○○이네가 이번 주말에 다녀갈거에요"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솔직히..발걸음은 잘 안 떨어지대요..
언제 석비가 세워지나, 어서어서 잔디가 좀 자랐으면..뭐 이런저런 생각에요...
그래도 오늘은 별로 안 울었어요.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햇볕이 잘 드는 좋은 곳에서 친구분들과 쉬고 계시는데...울 일이 아닌 것 같아서요...
돌아오는 길은 잘못 나서면 길이 너무 막혀 고생힌다며 천천히 올라가자는 오빠,
서산쪽에 가서 낙조나 보고 서울로 올라가자고 해서 차머리를 그쪽으로 돌렸는데...
해가 떨어지면서 구름속에 가려진데다가 대호방조제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도 저물어서,
낙조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삼길포에서 우럭회 먹고 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 겨우 귀가했어요.
하루 종일 차 타고 다녀서 몸은 좀 피곤하지만, 마음은 아주 기쁩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이담에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갈란다" 하실 때 너무 먼 곳이 아닌가 했는데..
사실 멀다는 것도 자손들이 성묘가기 먼 곳일뿐, 아버지께서야 그곳에 계시는 것이 명예 아닌가 생각했는데..
역시 아버지 뜻에 따라 국립현충원에 모시길 정말 잘했다 싶었어요.
아버지가 잘 계신 걸 보고왔으니..저도 이제부터는 울지않고, 씩씩하게 잘 살려구요...
그리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냥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