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을 비워야 하고...가족들의 점심은 걱정되고..그래서 아침에 싸놓고 간 막밥입니다.
왜..춤에도 막춤이 있잖아요...대충 막 추는...
이 밥도 주먹밥도 아닌 것이, 김밥도 아닌 것이..그냥 막 만들어서..막밥이라고 해봤는데...이상한 건 아니죠?
더운 밥에 밥에 뿌려먹는 가루, 이걸 일본말로는 후리가케라고 하지만, 한국말로는 뭐라해야할까요?? 밥이랑? 밥짝꿍?
암튼 이 가루를 밥에 뿌리고 참기름을 조금 넣은 다음에 김밥용 김에 둘둘 말았었어요.
말 때 가운데에 날치알을 조금 넣었는데..너무 적었는지..잘 보이지는 않네요.
그냥 외출하기 미안해서, 성의 표시만 하려했던 건데..이걸 싸면서 삼십년전 추억에 푹 빠져들었답니다.
1978년, 제가 대학 졸업반이던 때 이야기입니다.
3학년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섬 여행에 재미붙인 우리과 친구들, 졸업여행지로 울릉도를 잡았습니다.
울산쯤인가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를 가는 거였죠.
가는 뱃길은 날씨가 너무 맑아서, 배멀미하는 사람 하나 없이 하하호호 웃으면 즐겁게 배여행을 했답니다.
요즘 TV에 나오는 울릉도를 보면 관광하기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 같은데,
당시는 섬에 차가 단 한대 없고, 여관 하나 없는 아주 조용한 섬이었습니다.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이야기지요. ^^
뭐,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온갖 정보를 미리 수집하고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울릉도가 좋다더라'하는 정도의 사전지식만 갖고 당도한 울릉도는 저희 일행을 참 많이 당황시켰습니다.
막연하게 가기만 하면 훌륭한 숙박시설도, 식당도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도동항에 내려서 아무리 찾아도 여관 하나가 없는 거에요.
어차피 돈 없는 학생들이라 직접 밥을 해먹을거니까 변변한 식당이 없는 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숙박시설이 없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죠.
다행스럽게도 도동항에서 좁은 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깨끗한 민박집을 하나 잡게 돼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성인봉 등산도 하고, 배 타고 섬 주위를 관광하는 등 3박4일인지, 4박5일인지..그 일정을 잘 보내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기는 해야겠는데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우리 일행의 식사 때문에 여간 걱정이 되는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김밥이나 싸보려고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단무지나 소시지 같은 것을 좀 사려고 했는데,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는거에요.
어렵사리 구한 건 오직 김밥용 김 10장뿐.
친구들에게 가방을 열어 남은 양념들을 모두 꺼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밥 해먹고 남은 쌀을 싹싹 긁어서 코펠에 밥을 지어서, 민박집에 있던 양푼에 푼 다음,
되는 대로 남아있던 양념들, 간장 참기름 소금 깨소금 등을 넣어 간을 맞췄습니다.
김밥용 발도 없는 터라 그냥 김에 대충 밥을 얹고 대충 손으로 말아서 쑹덩쑹덩 썰어서 코펠같은데 담았습니다.
이게..제가 창의력을 발휘해서 만든 첫번째 음식입니다.
그전에 여행가서 만든 음식이라는 건, 뻔한 거..카레라이스, 캠핑찌개가 고작이었으니까 창의력이고 뭐고 없는 거죠.
이렇게 배에서 먹을 도시락까지 준비해서 배에 올랐는데...아..이를 어쩌면 좋답니까?
바다가 고요하지 못해, 망망대해의 일엽편주처럼 배가 마구 춤추는 거에요.
배 바닥에 난짝 누워있는데도, 정말 죽을 것 같은 거에요.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고 전날 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수다떨며 놀다가, 새벽부터 도시락을 싼다 부산을 떨었었어요.
잠은 배안에서 자면 된다며 잠도 자지 않구요.
게다가 전날 한 오징어가게에서 우리 일행이 모두 한두축씩 마른 오징어를 샀더니 값을 깎아주는 대신 같이 먹으라고 오징어 한축을 줬었어요.
모두의 오징어라고 밤새 그 오징어 한축을 모두 같이 먹어버렸는데...마른 오징어가 그리 소화가 잘되는 식품은 아니잖아요.
그게 딱 체한 거에요. 미련스럽게도 울릉도 오징어 한번 실컷 먹어보겠다고 악착같이 먹었던 거죠.
그러지 않아도 수면부족에 소화불량 상태에 배멀미까지 겹쳤으니...너무 괴로워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겠고,
정말 바다물로 뛰어들고픈 생각밖엘 나지 않는 거에요.
속에 들어있는 걸 모두 비워내고, 거의 시체처럼 늘어져서 선실바닥에 착 달라붙어 누워있는데,
친구 하나가 화사한 웃음을 띄면서 이러는 거에요, "니가 싼 김밥 진짜 맛있다, 얘, 너도 좀 먹지..."
허걱...완전 불난 집에 부채질이었는데... 입술 하나 달싹할 기운이 없어서 한 마디 대꾸도 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이 친구는 같이 수다떨고 놀다가, 제가 김밥을 쌀 때 나 몰라라 하며 쿨쿨 자던 친구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친구가 어찌나 얄미운지..
오늘 막밥을 싸면서, 그 때 그 밥이 정말 맛있었을까? 아니면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고파서 맛있게 먹었던 걸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첫번째 요리였던 셈인데...맛이라도 하나볼껄....아쉽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