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그 와중에....사진을 찍다니...제가 생각해도...거참...
실은 저희 친정아버지께서 지난 목요일밤 응급실로 실려가셔서, 아직 응급실에 계십니다.
위중한 상태라 응급실에 아직 계신 건 아니고, 입원실도 없고, 또 화요일날 내시경을 해야하기 때문에 응급실에 그냥 계셔야한대요.
응급실은 보호자용 간이침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보호자들은 은박돗자리를 펴놓고 그냥 주무시는데,
저희 어머니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신 터라 무릎이 마음대로 구부러지지 않아 바닥에서는 주무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요일밤엔 오빠, 금요일밤엔 동생, 토요일밤에는 조카, 일요일밤에는 오빠..이런 식으로 아버지를 간호하는 형편이죠.
엄마는 주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계시는데...
기왕 병원에 갈 거..엄마를 병원까지 모셔다드리거나 아니면 집으로 모셔올 때 가는게 나을 거 같아서 전화했더니,
저녁늦게 오라고 하시는 거에요. 아침엔 오빠가 모셔다 드린다고.
오후 4시쯤, "몇시에 갈까요?"하고 전화했더니,
"일곱시쯤 오려무나"하시면서, "오빠가 요리선생한테 도시락 싸오라고 하라더라"하시는 거에요.
"바쁜 원고가 있어서, 도시락은 못싸가고 맛있는 거 사갈게요" 했는데...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요새...아버지의 상태가 영 좋질 못하셔서...간호하는 사람들이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닙니다.
그나마 저는 아버지가 불편해하시기 때문에 결정적인 시중(뭔지...짐작하시죠??)을 들지 못해서 간호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나 애를 쓰는 엄마와 오빠를 위한 한끼 도시락...그거라도 해야 맘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쓰던 원고 부랴부랴 마치고, 눈썹이 휘날리게 도시락을 준비했습니다.
머릿속에는 새우초밥? 알밥? 김밥 등등 갖가지 메뉴가 스치고 지나갔지만 고작 한시간 남짓한 시간으로는 어림없는 것 같아서,
그냥 밥과 반찬을 싸기로 했어요. 그런데..뭐 마땅히 도시락반찬을 할만한 재료도 없고...
눈에 띄는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전부칠 생각은 어찌했는지..
아마도 만들기는 좀 번거로워도, 도시락반찬으로 집어 먹기에는 전이 만만해서 그랬을 거에요.
굴전과 부추전을 부쳤습니다.

도시락을 싸야지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렸던 것이 새우.
냉동실 새우를 해동판에 놓고 해동하면서, 케첩볶음을 할까 카레튀김을 할까 하다가 카레튀김을 했습니다.
간신히 해동된 새우에 카레가루를 묻힌 다음 튀김옷을 제대로 만들어서 튀겨야하지만, 시간도 없고 정신적 여유도 없는 관계로,
녹말가루 대충 넣고, 달걀 하나 깨넣고 대충 버무려서 튀겼습니다.
이거...대박이었습니다...

처음 생각에는 양상추 샐러드를 하려고 했는데..어제 쒀서 반만 먹고 남은 도토리묵이 눈에 띄길래 채소와 함께 무쳤습니다.
도토리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먼저 들기름 좀 묻혀준 후 깻잎이랑 오이 당근 대파 등을 넣고 살살 버무리다가,
맛간장 후추 그리고 들깨가루를 넣어 다시 살살 버무려서 완성.

그리고 냉동실의 싸리버섯 나물을 해동했는데, 미처 해동이 되지 않아 얼음이 서걱거리는 것을 담았는데,
가져가서 보니 다 녹아서 먹을만 하더라는...^^;;
김치는 가져가면 응급실에 너무 냄새를 풍길 것 같아서 송송 썰어서 대충 짠 다음 후추와 참기름만 넣어서 무쳐서 가져갔어요.
아침에 샌드위치 한쪽 드시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는 엄마, 아마도 아버지 시중에 지쳐서 식욕도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아침에도 잠시 병원에 들렀다가 낮에는 볼 일을 보고 밤샘하러 다시 병원으로 온 오빠랑,
응급실 한쪽에 마련된 보호자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펼쳐놓고 먹었어요.
밥 한톨, 반찬 한조각 남기지 않고 맛있다며 드시는 엄마와 오빠를 보는데....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동안 명랑한 척 하고 살았지만...꼭 그렇게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수술후 퇴원하신 아버지, 집에서 잘 드시고 몸조리를 잘 하시면 어지간히 좋아지시라 믿었었는데..
퇴원 후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나빠지십니다.
드시는 것도 잘못드시고, 거동이 불편해서 가까운 곳에 나가서 외식 한번 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퇴원 2주후 흉부외과에서 혈액종양내과로 이관해줘서 외래로 진찰받으시러 갔다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항암치료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항암치료를 할 수 없는 연세이시라서 할 수 있는 치료는 아무것도 없다며,
아버지를 밖으로 나가시게 하더니 제게만 하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뇌로의 전이가 의심된다며, CT를 찍어 확인해야한다는 거에요.
뇌로 전이가 확인되면 남은 수명은 7주에서 10주라고 하는데...
밖에서 기다리시던 아버지와 엄마께는 차 가져온다고 하고 나와서는 병원 마당에 털퍼덕 주저앉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남이야 보든 말든, 통곡을 했습니다. 세상에 7주에서 10주라니...이건 말도 안되잖아요.
이틀 뒤 CT 촬영하고, 그 다음날 결과를 보기까지...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다행하게도 뇌로 전이는 되지 않으셨지만 폐와 간에서 계속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며...잔여수명이 4개월 정도라고 하는거에요.
7~10주인줄 알았는데 4개월이나 된다니...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게..지난 2월 중순께의 이야기 입니다.
당시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앞으로 한두달은 좀 반짝하실 거라고,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시게 하고, 하시고 싶다는 거 다 하시게 하고, 가시고 싶다는 곳 모두 모시고 다니라고,
그후에는 호흡도 많이 곤란하고 통증이 심하실테니까 그때는 응급실이든 외래든 언제든지 오라고.
그래서,
잠시나마 반짝 하시면..강화에도 모시고 가고, 가시고 싶다는 서해안도 모시고 가고..그렇게 생각했는데...
웬걸, 매일매일 더 나빠지고 계십니다.
퇴원 직후에는 혼자서 지팡이를 짚고 화장실엘 다니실 정도였는데 이제는 혼자서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실 정도이고,
가끔은 헛소리도 하십니다.
게다가 지난 목요일에는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서 응급실로 갔더니, 이번에는 담관에 염증이 있으며 담석이 있는 것 같다는 거에요.
아버지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시리라...그렇게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 엄마를 볼 때마다 아슬아슬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입니다.
육체적으로도 아버지 간호가 무척 힘드실텐데도, 그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하시는데, 대신 마음이 많이 아프신가봐요.
엄마의 간호에 고분고분 응하지도 않으시면서 툭툭 내뱉으시는 야속한 아버지의 말씀이 비수가 되어 엄마를 콕콕 찌르는 모양입니다.
"니 아부지가 정을 떼려나보다..."
엄마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이 무능한 딸은 뭘 어찌 해야할 지 몰라...겨우 도시락을 한번 싸간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저 엄마의 등을 어루만지면서.."엄마, 우리 엄마..."할뿐...
아버지 병환 이후 등까지 구부정해진 우리 엄마...우리 엄마가 아프지 말아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