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바빠서, 아버지께는 전화만 드리고, 며칠동안 가질 못했더니,
어머니 말씀이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시고, 기운 없다고 하시고, 입맛도 없다며 잘 드시지도 않는다는 거에요.
이러시면...아니되옵니다...
입원을 40일이나 하시고, 또 퇴원 후 1주일이 되도록 바깥바람을 못 쏘여서 그러시는가 싶어서,
어제는 시간을 쪼개서, 친정엘 갔습니다. 산책은 못하셔도 드라이브는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어디 가시고 싶으냐고 하니까 뜻밖에도 "청계천!!" 하시는 거에요.
어젠 날씨도 흐리고, 살짝 비도 오고, 별로 포근한 날씨도 아니고 하니까,
어머니는 "웬 청계천? 차 안에서는 아무 것도 안보일텐데..." 이러시는 걸, 그냥 청계천쪽으로 갔어요.
어머니께는, "어지간한 일 아니면 아버지 뜻 거스르지 말자"고 하구요.
동아일보사앞에서부터 청계천을 따라 쭉 운전해서 갔어요.
물론 청계천이 보일 턱 없지만, 그래도 청계천변의 상점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시다며 어머니, 아버지 모두 기뻐하셨어요.
청계천이 한강이랑 맞닿는다고 하니까..가는데까지 가보자며 쭉 가고있는데...마장동 우시장 푯말이 보이는 거에요.
얼마전, 인터넷으로 보양음식을 검색하다가 '우설편육'을 발견했어요.
설렁탕집에 가서 수육시키면, 어쩌다 한두점 주는 우설, 그거 참 맛있는데..요즘에는 안주는 집도 많잖아요.
보양식이라니까, 한번 해봐야겠다 맘먹고는 우설을 구하고 싶었는데, 단골 정육점이 없다보니 어디서 구해야하나 좀 난감했어요.
며칠동안 궁리만 하던 차에 만난 마장동 우시장 간판!!
아직 아버지가 함께 걸어서 우시장 구경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못되어서, 차에 계시게 하고 저랑 엄마랑만 차에 내렸어요.
엄마는 몇십년 만에 오셨다고 하고, 저는 난생 처음 가봤어요.
한번쯤 가볼 수도 있었는데...주차할 곳이나 있나..주차가 무서워서...엄두를 못냈던 거죠.
그렇다고 차없이 가면 고기를 산다고 한들, 그 무거운 고기덩이 들고 올 수도 없고...
엄마랑 둘이서만 왔다면 느긋하게 실컷 구경했을 텐데, 차에 계시는 아버지 걱정에 구경을 많이는 못했어요.
대신...그 우설을..구했습니다.
우설 1근에 5천원, 우설 하나를 달아보니 3.8㎏쯤 되는 거에요..3만2천원 내라고 해서...얼른 샀어요.
정확하게 따지자면 3만1천원이나 3만1천5백원이 맞는건데...그냥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어요.
우설은 주말에 편육해서 아버지 드시게 할 거에요.
우설은 사니까, 엄마는 "갑자기 어떻게 우설 살 생각을 했어?"하시는 거에요.
갑자기가 아니고, 며칠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우설을 사가지고 오는데 돼지족이 자꾸 시선을 붙드는 거있죠?
'이 돼지족..콜라겐 덩어리라 먹으면 피부에 짱인데...', 그래서..족발..충동구매해줬습니당...ㅋㅋ...
족발집에서 요리해서 파는 장족도 있지만 짧은 족 4개씩 묶어서 파는 걸로 질러줬어요. 어찌 요리해먹겠다는 작정도 없이...^^
왜냐면...추억이 서려있어서요...
저 국민학교 다닐 때..그때 후암동 살 때인데요...
겨울엔 밤이 기니까, 엄마가 아버지 밤참으로 이것 저것 준비했는데..그때 집에서 족발도 잘 삶으셨어요.
면도칼로 족발의 털을 벗겨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손질한 다음 그 족발을 삶으셨어요.
밤에 출출해질 때 아버지가 족발을 드실라치면, 잠들지 않고 있던 우리 삼남매 모두 아버지 옆에 들러붙었고,
아버지는 당신 입에 먼저 넣으시지 않고, 적당한 크기로 쪼갠 족발을 아이들에게 모두 하나씩 쥐어주셨어요.
다섯 식구가 고개를 맞대고 족발을 쪽쪽 빨았었는데...그게 벌써 40년도 더 전의 일이에요....
그때 생각이 나길래 살이 많아 먹을 것도 많은 장족 놔두고, 한벌(족 4개를 묶은 것)에 겨우 3천5백원밖에 안하는 작은 족을 샀어요.
파는 곳에서 반으로 잘라달라고 해서 가지고 왔어요.
우시장 구경 마치고, 한양대학 뒷편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거에요. "효도관광이다!!"라고 하시며..
이게 무슨 효도관광이냐고 하니까, 가고 싶다고 하는 곳 군말없이 데리고 와주는 게 효도관광이라고 하시네요..^^
집에 들어와서...이 족으로 뭘할까 하다가..언젠가 TV에서 본 매운족발구이를 하기로 맘 먹었어요.
들어오자마자, 물에 담가서 핏물을 빼고..그리고 한밤중에 삶아서 매운 양념에 재워놓고..
새벽 3시에 잤더니...급기야는 입술이 부르텄네요...요즘 스케줄이 좀 빡빡하기는 했으나..이 정도에 입술이 부르트다니...
인간 김혜경..이제 슬슬 고물기계가 되어가는 모양입니다..^^;;
족발, 오늘 점심에 구워먹었는데...
장족이 아닌 만큼...살이 없어 먹을 것은 별로 없지만...콜라겐 섭취는 제대로 한 것 같아요.ㅋㅋ
게다가 주재료 값이 겨우 3천5백원이니...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싶구요..
족발구이 레시피 나갑니다.
사진이 다소..혐오스러울 수 있으니까..비위가 약하신 분들...보지 마세용....
◇ 재료

주재료: 족발 1벌(4개, 일반적으로 족발집에서 파는 살 많은 돼지허벅지가 아니라 살없는 돼지 종아리)
향신재료: 된장 1큰술, 계피 감초 황기 가시오가피 등 적당량
양념재료: 고춧가루 2큰술, 토마토케첩 1큰술, 청주 3큰술, 간장 2큰술, 국간장 1작은술, 참기름 1큰술, 다진마늘 2큰술,
굵게 다진 대파 1대 분량, 생강즙 1큰술, 후춧가루 조금
◇ 만들기

1. 족발은 깨끗이 손질해서 찬물에 3~4시간 정도 담가서 핏물을 빼요.
(손질은 발가락 사이의 냄새나는 부분도 잘라내고 발톱도 잘라야 하고 잔털도 벗겨야하는데 요즘은 다 손질해서 팔아요.)

2. 족발이 잠길 정도로 찬물을 붓고 센불에서 한번 끓여내요.
(끓여보면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불순물이 나와요. 이걸 제거해야 냄새가 나지 않는 족발요리가 됩니다.)

3. 한번 끓인 족발은 건져서 물로 다시 한번 깨끗이 닦아요.
(냄비도 깨끗하게 닦아줘요.)

4. 냄비에 물 2리터 정도를 붓고 펄펄 끓인 다음 향신재료들을 넣어요.

5. 된장을 풀어 씻어 건져둔 족발을 넣어요.

6. 처음에는 센불에서 그다음 중불, 약불로 줄여가면서 2시간 정도 푹 삶아요.
7. 젓가락이 쑥쑥 들어가도록, 그냥 먹어도 될 정도로 충분히 삶아지면 건져서 뜨거운 김을 날린 후 2~4등분 해줘요.

8. 족발에 양념 재료들을 넣어 양념해요. 이 상태로 먹어도 맛이 좋아요.
9. 하룻밤 정도 재워둔 후 200℃로 예열한 오븐에서 20분간 구워요.
점심에 먹을 때는 몰랐는데...점심이 좀 늦기도 했지만...족발을 세쪽이나 먹은 탓인지 아직도 배가 꺼지질 않아서...
저녁은 안먹으려고 해요..^^
양념해놓은 족발, 서너쪽 남았는데..그건 굽지말고 쪄볼까봐요..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