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제게 '하늘이 내린 외숙모' '하늘이 내린 올케' '하늘이 내린 며느리'라고는 부르지 않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제가 친정식구들에게 더 마음을 쓰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kimys도 어쩔 수 없는 한국남자라서 은근히 저와 저희 친정식구들과의 관계를 부러워하는 거든가요...
솔직히...다른 건 모르겠고...'하늘이 내린 고모'라는 정말 듣고 싶은 호칭이며 들으려고 노력한 수식어입니다.
생존해 계시든, 아니면 이미 타계했든..저의 친인척들은 저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수십년 전 일까지 다 끄집어 내지니까...
앞으로의 이야기에 이미 타계하신 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코 명예를 훼손하려 하는 것은 아니며..그저 지난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이제 부터 본론으로...

제게는 고모님이 세분 계십니다. 두분은 벌써 오래전에 타계하셨고, 한분만 생존해계십니다.
저희 친정아버지의 누님들이니시까...정말 연세가 많으시죠.
자랄 때...고모님들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눈깔사탕이라도 한 알 사먹어보라고...동전 한잎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자주 오시지도 않았지만...어쩌다 오셔도 그리 반가운 분들은 아니었습니다.
용모도 제일 출중하시고, 음식솜씨도 빼어난 우리 둘째 고모, 성격이 칼칼하시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어릴 때 친척들이 저더러 둘째고모 닮았다고 하면...화를 내다못해 목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너무 싫어서.
또 큰 고모님은...당신의 큰손주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 저희 집에 다니러 오셨습니다.
그때 오빠랑 저랑 아마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고모님이 오빠랑 저를 따라다니면서 영어사전, 당신 손주 주라고...
오빠랑 저랑 영어사전을 따로 쓰는 걸 보시고 남아돈다고 생각하셨는지,
"니들이 안주면 어떡하냐? 하나 줘야지"
"너희들은 영어사전 같이 보면 되잖아"
"여기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네, 작은 걸로 하나줘..하나줘.."
제 뒤를 따라다니시면서 어르고 달래고 하시는데..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싫었습니다.
결국 학교 가지고 다니던 얄팍한 사전을 드리고 말았다는...
큰 고모님은 논도 밭도 많은 부자셨는데...저희들에게 사전을 하나 사줘도 시원치않은데 그걸 끝내 빼앗아가셨다는...
게다가...언젠가도 희망수첩에 쓴 적 있는데...
친정어머니에게 "계집애(저를 일컫는 거죠..^^;; 대학은 보내서 뭣하냐"고 하셨다가..
우리 친정엄마, 집을 팔아서라도 딸 가르칠 거라고 펄펄 뛰시게 하고...
암튼..전 어렸을 때부터 고모가 되면 조카들에게 무지 좋은 고모가 되리라 다짐에 또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친정어머니가 저희 딸을 키우실 때 오빠네 두 아들이 함께 자랐는데...정말, 이 두조카녀석, 제 딸과 구별하지 않고 대했습니다.
특히 우유 먹여 키운 작은 조카는 지금도 내 아들 같은 생각이 든다는...
그런데 참 미안하게도 남동생의 귀염둥이 딸에게는...그리 잘 해주질 못했습니다.
맘은 있었는데...여건이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요.
고작 고모가 한다는 짓이..어쩌다 친정집에 갔다가 놀러온 아기때의 조카를 만나면 손목 잡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여기서 니가 사고 싶은 거 다 사!!"하는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래봐야 조카아이가 집는 건 과자 몇봉지, 초콜릿 몇 봉지..돈으로 치면 보통 5천원어치, 많아야 1만원도 못됐습니다.
그래도 그덕에 '싼타고모'라 불리웠다는...^^
조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코스트코 같은데서 계집아이들 옷 예쁜 걸보면 사다주기도 하곤 했지만,
사실 그건 제 동생이 제 딸에게 보내준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결혼이 늦었던 남동생, 저희 딸 너무너무 이뻐했고, 저도 비싸서 안사주는 비싼 장난감을 아르바이트해서 번돈 쪼개서 사주고...
꼭 이 때문은 아니어도..하늘이 내린 고모 하고 싶지만...정신적으로 시간적으로 너무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 미안한 건, 오빠네 작은 조카와는 녀석이 중학생일때 단둘이서 만나서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했는데..
남동생네 조카와는 그런 시간을 많이 못가졌었어요.
몇주전부터...오늘..약속해놨었습니다.
중1인 녀석은 행신동 살면서도 아직 일산의 라페스타에 못가봤다고 하길래..거길 가기로 했었습니다.
일단 점심부터 먹자고 하니까..녀석이 아웃백을 못가봤다는 거에요.
패밀리레스토랑이라고는 어른들과 함께 가본 VIPS, TGI가 고작이래요.



작은 올케랑 조카랑 셋이서 아웃백에서 이렇게 먹었습니다. 너무 많이 남아서 싸오기까지 했다는..^^
밥 먹고 덕이동 로데오에 가서 청바지랑 미니스커트랑 티셔츠랑 블라우스랑 사줬어요.
아이들 미니스커트랑 티셔츠 블라우스는 아주 쌌어요.
이제 가을 상품이 나올 철이라 그런지..그렇게 세장이 티셔츠 1장값도 안되더라는...
조카녀석...입이 귀에 가서 걸렸습니다. 그걸 보니까..진작 못해줘서 더 미안하고...
제가 늙어 죽을 때까지..우리 조카 셋이 모두 학교 마치고 시집장가가서 엄마아빠가 될때까지,
녀석들에게 '우리 고모는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제 희망사항중 하나 입니다.
잘 하면...이뤄질 수도 있을 것 같은...그런 희망사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