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시절, 저희 학교와 같은 정동길을 쓰던 K여고 앞에 아주머니 걸인이 있었습니다.
납루한 옷에 항상 고개를 숙이고서 스타카토를 넣어 배가 고프다고 외쳐댔습니다.
지금도 흉내낼 수 있을 만큼, 아주 인상적이었죠. 高低가 없던 억양...
처네로 커다란 아이를 들쳐 업고 있었고, 또 그 아주머니의 주변에는 고만고만한 아이 서너명이 더 있었습니다.
그 앞을 지나야하는 여고생들, 그 아주머니 가족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면서 동전 몇닢씩 넣고 했습니다.
그랬는데...어느 날...
우리 반 아이가 봤답니다. 그 아주머니 근무시간이 끝나니까 벌떡 일어나더니 근처 가게에 들어가 근무복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데....귀부인이더랍니다.
업었던 아이를 비롯해서, 불쌍함을 유발하던 아이들도 너무 멀쩡한 옷으로 갈아입고, 즐겁게 귀가하더라는...
대학교 때, 학교앞 버스정거장.
시골에서 막 올라온 듯 한 차림의 아주머니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학생, 내가 시골에서 올라왔는데, 지갑을 잃어버렸어. 차비 좀 줘"
1천원이나 꺼내줬는데, 이틀 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멘트를 날리는 그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주머니 아직까지 차비 못구했어요? 그래서 아직 못내려갔어요?"

지하도나 육교나 혹은 지하철에서나, 온정을 베풀어 달라고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늘 갈등하게 됩니다.
'불쌍하니까 줘야 해' 아냐 '다 사업이라니까, 저 사람 수입이 너보다 많단 말야'하고 제 속에서 서로 다른 제가 다툽니다. 승률은 후자가 조금 더 높지만요.
오늘 아침, 동대문시장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저희 집 앞 지하도를 건너는데, 한 늙수그레한 남자가 차비가 없다며 1천원만 달라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제 속의 두가지 제가 서로 다투다가 결국 매몰찬 제가 이겼습니다.
'1천원 달라는데 지금 지갑에는 천원짜리 없잖아? 5천원짜리 줄거야? 그리구 이거 다 사업이라구 사업...'
재빨리 계단을 올라가 지하도를 나오기는 했는데, 몇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그 일이 떠나지 않네요.
정말 차비가 없는 지도 모르는데, 그냥 동전들이라도 긁어주고 올껄...
아니, 잘했어, 그게 다 쇼라고...
어쩌다 제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짓불쌍함으로 선량한 호의를 짓밟은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만드는 데 한 몫 단단히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영 편칠 않네요. 차라리 주고 올껄...그랬으면 맘이나 편했을 텐데...
p.s.
어제 광주요세일에 잠시 다녀왔어요.
작년 광주요 세일에서 몇장 산 하나자기 그릇과 맞추려고 밥그릇 국그릇을 사왔습니다.
밥그릇으로 나온 건 너무 커서, 자그마한 보시기를 공기로 쓰려고 사왔습니다.
국그릇 , 밥그릇, 그리고 소짜 찬기 2개, 중짜 찬기 2개, 대짜 찬기 1개...
이거면 충분하려니 했는데...오늘 상을 차려보니, 몇개 부족하네요. 어흑...그 먼데를 또 갈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