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보니 큼직하게 써있는 네 이름...
얼마나 반가웠는지...
10층까지 올라가는 시간도 못참아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봉투를 뜯었다.
봉투 속에서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알뜰 주걱, 그만 피실피실 웃고 말았다.
하나만 보내면 되는 것을 웬걸 그리 많이도 보냈어?
내가 괜히 러버메이드 알뜰주걱 얘기를 했나 싶더라. 객지 생활에 익숙치도 않은 네가 그걸 사서 모으고, 부치고...
2개가 세트로 들어있는 저거 하나면 되는데...
그리구 배로 부치랬더니 왜 항공으로 부쳤어. 송료 만만치 않았을 텐데...
다 쓰지 말고 남겨뒀다가 네가 이뻐하는 우리 지은이 시집갈 때도 하나 줘야겠다.

오늘, 입춘 날이었어, 알아?
역학에서는 입춘날을 새해가 시작하는 날로 생각하잖아.
운이 바뀌고, 삼재가 들어오고 나가고..., 기억나지?
올해는 말띠 개띠 호랑이띠가 들어온다나..., 에이, 뭐 좋은거라고 객지에 있는 네게 이런 소식까지 전하는 지 모르겠다.
암튼, 입춘이라니까, 뭐랄까, 뭣 좀 좋은 일이 생길라나 하나 기대도 생기고...약간 활기를 찾았다.
그리구 내일은 정월대보름이야, 오늘 나물이랑 오곡밥 먹는 날인데...
내일 아침엔 부럼깨구, 예전엔 회사에 가서 아무에게나 더위 팔고 했는데, 요샌 더위도 못판다.
그걸 누구에게 팔겠니? 남편에게 팔겠니, 부모자식에게 팔겠니.
너희도 오곡밥 해먹었어? 토론토에서 팥이랑 수수랑 있는지?
오곡밥 못 해먹더라도, 내일 밤 둥근달을 보고 소원은 꼭 빌어라!
나도 지금 벼르고 있다, 보름달에게 소원들어달라고 땡깡 피려고.
오늘 네 소포 받아보고 네 생각 더 많이 했다.
옛날, 직장생활할때 가끔 기자실로 걸려온 네 전화 받을 때, 나 오해 많이 받았어, 내 표정이랑 목소리랑 표변한다나...분명 전화속 주인공이 숨겨놓은 애인일꺼라고...
허긴 지난번 네 전화 끊고 나니, 울 남편 그러더라, "애인 전화 받아서 좋아?"
그런데 그 애인이 너무 먼 곳에 가있어서...
요즘처럼 몸도 쳐지고, 마음도 가라앉고 할 때 네가 옆에 있었으면 큰 힘이 됐을 텐데...
넌 늘 언니 같잖아, 내 얘기 잘 들어주고, 조언도 잘해주고...
빨리 돌아왔음 좋겠다.
옛날처럼 단둘이 제주도라도 여행했음 좋겠는데...어렵겠지? 너나 나나 매인 몸이라서.
요새 토론토 날씨는 어때?
조교수랑, 진화 진경이 진서 잘 지내지?
느이 딸 들 얼마나 컸을 지 궁금하다, 특히 깜찍한 진서, 요새도 엉뚱한 소리로 엄마나 언니들을 깜짝 깜짝 놀래키는 지...,
진경이는 여전히 똑소리 나지?
그래도 젤 이쁜 진화는 듬직한 큰 언니 노릇 잘 할테고...
아무리 아이들 때문에 인터넷을 못한다고 해도, 가끔 소식 좀 전해줘.
너랑 메신저로 대화하는게 내 소원이다.
잘 지내구, 날씨 춥다는데 건강 주의하구...
보고싶다, 아주 많이.
나이 탓일까? 왜 이리 그리움이 많아지는지..., 오늘은 정말 네가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