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빤 저랑 1년6개월 차이라 초등학교 5년, 대학 3년 꼬박 같이 다녔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오빠한테 얻어맞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얻어 맞을만도 했더라구요, 동생이 그렇게 한번도 안 지고 바득바득 대드는데 손 안댈 오빠, 어디 있겠어요?
미운 정 고운 정 든다고 육탄전 벌이지 않은 남동생보다는 훨씬 정이 많이 들었죠.
우리 오빤 저보다 훨씬 맘이 비단결이거든요, 남자가 그래서 손해를 많이 보긴 하지만.
얼굴도 저보다 훨씬 나아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우리 과 남학생들 저더러 "넌 어떻게 여자애가 오빠보다도 못생겼냐?"라고 구박하기도 했는데.
저 고3때 명동에 페스트리 전문점이 첨 문을 열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페스트리가 처음 상륙했던게 아닌 가싶은데. 당시는 통기타와 생맥주의 전성시대라, 오빤 명동의 로즈가든 이런데서 자주 생맥주 한잔 마시고 얼굴이 불콰해서 귀가하곤 했어요.
그때 오빠의 품속엔 늘 꽈배기처럼 생긴 긴 페스트리, 당시 '아메리칸 파이'라고 불리던 그 페스트리가 두개 품어져 있었어요. 아직 공부라는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동생을 위해 사가지고는 엄마도 아버지도 남동생도 몰래 제게만 전해줬죠. 그때 끝이 없을 것 같은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울며 먹던 그 페스튜리. 요즘은 벼라별 페스트리가 다 나오지만 그때 그 맛엔 따라올 수가 없어요.
둘 다 결혼 하기전 오빠가 저더러 "동생이자 친구이자 누나이자 애인같은 동생"이라고 했는데 서로 결혼하니까 참 많이 멀어지게 되더라구요.
전 오빠나 남동생이랑 거의 전화통화를 안해요. 모두 올케들을 통해서 얘기하죠. 올케 몰래 남자형제에게 해야할 말? 그건 남자형제들에게 절대 발설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올케들과는 거리감이 없는데, 남자형제들과는 자연 멀어지네요.
그랬는데 지난 겨울 아버지 어머니 편찮으시면서 우리 여섯이서 똘똘 뭉치면서, 뭐랄까 남자형제들과의 애정이 살아났다고 할까.
그런 오빠네 가족이 지난주 일요일 인도네시아로 휴가를 간대요. 큰 조카는 계절학기 수업받으러 UCLA에 가있고 세식구가 올케의 큰언니네로 휴가를 떠난다는 거에요. 혜택이 줄어드네 어쩌네 하는 마일리지도 쓸 겸.
그래서 올케에게 새 책 사진용 소품 좀 구해다달라고 부탁했어요. 작년에 인도네시안가 태국인가 갔다올때 사다준 젓가락이 아주 예뻤거든요. 매트 같은 거 좀 사다달라고, 비용은 내가 낸다고.
그랬더니 오늘 아침 도착해서는 저녁 같이 먹자구 하더라구요.물론 저야 시어머니 때문에 갈 수 없고. 저녁 무렵 어머니 아버지 모시러 가면서 저희 아파트 현관앞에서 전화를 했더라구요. 어른 계셔서 올라오지는 않겠다며.
내려가보니 오빠부부가 쇼핑백을 내미는데 매트랑 러너랑 테이블보랑 양념통이랑 냅킨장식품이랑 진짜 한보따리 더라구요.
"돈 줘야 되는데..."
"됐네, 이사람아"
"쩐 좀 썼을 것 같은데..."
"썼지만 됐네"
그리곤 가네요. 오빠내외랑은 아직도 이렇게 어린애들처럼 대화해요.
얘네 들이 걔네들이에요.
물론 전부는 아니구요. 일단 일부만 보여드리는 거에요.

얘는 소금 후추 통이에요. 너무 이쁘죠? 올케는 이거 여러개 사갖고 오고 싶었는데 오빠가 못사게 했다며...


지난번 사온 그릇들과 세팅을 해봤는데..., 아래 사진의 젓가락도 올케의 선물이에요.

얘네들이 모두 매트. 이번 책에 제대로 써먹어 보려구요. 다 너무너무 예쁘죠?
저 오늘 땡떴다는 거 아닙니까?? 저 지금 혼자서 히죽거리고 앉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