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예전에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자 선배 하나...
해외출장 때마다 명품 백을 하나씩 꼭 사가지와요.
그래서 명품백이 없는 게 없었죠. 구찌 펜디 셀린느, 심지어 91년 파리 출장길에 나선 제게 샤넬백 하나 사오라고 해서 그 심부름까지 했어요.
사실 전 샤넬백 파리의 아무 백화점에나 가면 있는 건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더라구요.
그 선배 백 심부름 하느라 한나절을 까먹었어요, 그 금쪽 같은 파리의 한나절이여!! 그리고 1천달러가 넘는 그 아까운 외화!!
그런데요, 솔직히 그때 전 그 선배가 들던 백이 그렇게 비싼 것들인지도 몰랐어요. 좋은 지도 몰랐구요.
알아보질 못한 거죠. 그땐 지금처럼 명품바람이 불기 전이라...
하여간 제건 사올 생각도 안해봤어요. 일단 좋은 줄 모르고, 너무 비싸고, 들어봐야 금방 모서리가 닳을테고.....
1년에 해외출장 서너번씩 다닐 때도 핸드백에 집착하지 않았던 건 제가 너무 백을 함부로 다루는 탓인지 모서리가 금방 닳아버려요. 허긴 차에 타도 집어던지고, 출근을 해도 책상에 집어던지고...무슨 수로 닳아빠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전 루이꽈또즈만으로도 '황공무지로소이다'여서 명품백 살 생각도 안해봤어요.
또 몇년 전만해도 맘만 먹으면 매일매일 DKNY 백을 색깔별로 갈아들 수 있을 만큼 DKNY백 보세품 구하기 쉬웠으니까.물론 요샌 참 만나기 어려워졌지만...
그래서 제가 가진 명품백은 겨우 몇년전 뉴질랜드 갈 때 면세점에서 버버리 백 하나 사서 든 것과 kimys가 해외출장길에 날라다준 에트로백, 잡지 편집장할 때 선물받은 샤넬의 트레블시리즈(희끗희끗한 선이 허접하게 들어있어 싸구려처럼 보이는 나일론 가방)이 고작이에요. 아 홈쇼핑에서 폴리니백 하나 사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그래도 전 백만큼은 부자라고 생각해요.
바로 개미에서 건져올린, 엄청난 보물들이 있기 때문이죠.

사진 가운데의 큰 백. 그게 바로 어제 협찬을 받은 새식구에요. 요즘 진이 유행이죠? 그 유행을 반증이라도 하듯 블루진 소재인데 책도 들어갈만한 큼직한 사이즈구요. 브랜드는 앤드류 존스. 첨 본 브랜든데, 모서리를 한번 박음질 해줘서 각이 잘 잡히고. 핸드폰넣는 칸이며 속주머니 등 내부 설계가 잘되어 있네요. 판매가격은 2만5천원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내일 가셔도 사실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어요. 도매등쌀에 우리같은 소매는 물건을 만날 수 없으니...
왼쪽의 자주색백은 바나나 리퍼블릭 거예요. 소재는 캔버스 천. 보기에는 조그맣지만 안에 칸이 없고 두께감이 통통한 편이라 물건이 많이 들어가요. 주로 마트에 장보러갈 때 들어요. 가벼워서요.
이건 한 4~5년전 1만5천원이나 2만원 준 것 같아요. 바나나 꺼라고 조금 비쌌던 듯.
오른쪽의 빨강백, 제 총애를 받는 백이죠. 아주 고급스러운 가죽 소재로 앤테일러 제품이에요.
이 백은 저로서는 엄청나게 비싼, 3만원 정도 주고 작년에 구입한 거예요. 제가 이 백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이유는 가죽이지만 가볍고, 가죽의 질이 좋으며 어깨에 메도 되고 손에 들어도 되고 팔에 껴도 되고. 그리고 세트의 지갑까지 있다는 점. 크기와 비교해볼 때 가방보다는 지갑이 비싸잖아요. 아마 이 지갑 2만원쯤 줬을 거예요. 백과 지갑을 한꺼번에 사면서 비싸다고 징징 거렸지만 사고나서 너무너무 만족한 제품들.

이 사진들의 가방 가격은 알려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알려드리면 놀랠 텐데...
가운데의 붉은 백은 쇼핑이나 여행용이에요, 앞에 보이는 지퍼를 열면 바로 지갑이에요. 동전지갑과 카드수납칸이 있는...원래 제 것은 베이지색이었구요, 이건 저희 친정어머니껀데 바꾸자고 너무 조르셔서 할 수 없이 바꿨어요. 원래 제 것이 더 예뻐요. 이건 리즈 클레이번 제품이구요. 한 4년전에 1만원 주고 샀어요. 놀랍죠? 그렇지만 놀래실 일은 지금부터죠.
왼쪽에 있는 검은 백은 숄더백이에요.
수북히 쌓여있는 백 사이에서, 돼지밥의 진주처럼 있던 걸 골라낸 거예요. 끈의 끝부분에 달려있는 쇠장식이 다소 빛을 잃었지만 예사롭지 않더라구요. 특히 앞판과 뒷판의 길이가 다른 것이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장식이 반짝이지 않는다며 1만원만 내라고 하더라구요. 소재는 칠피. 소가죽에 에나멜칠을 한 고급이에요. 집에 가지고 와서 보니 리즈 클레이번, 쇠장식은 마른 헝겊으로 닦으니까 금방 번쩍이구요.
한 3년전에 샀는데 연말 부부동반 모임의 단골백이에요.
오른쪽의 검은백은 헝겊 소재로 앤 테일러 제품이에요. 이 역시 1만원짜리, 그렇지만 모양도 그렇고 소재도 그렇고 프라다백 안 부럽다니까요.
앞에 놓은 건 보시다 시피 제가 요새 들고다니는 DKNY 지갑입니다. 이것도 작년, 하도 지갑에 돈 붙어있을 새 없이 돈이 술술 새나가 이걸로 바꿨답니다. 값은 2만원.
오늘 이렇게 싸구려백들을 모두 꺼내서 보여드리는 건, 명품백이 최고는 아니라는 거 강조하고 싶어서요. 혹자는 그럴 꺼에요. '명품 백 살 능력이 안되니까...'
맞아요, 제 명품백 살 능력 안되는데 그거 하나도 안부끄러워요. 내 수준에 맞고, 내 차림에 맞는 깨끗한 백, 그러면 그게 바로 명품백 아닌가요??
아무래도 낼 덕운시장의 개미상회, 손님으로 북적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그럼 안되는데...내가 건질 게 점점 적어지는데....
p.s.
여러분들의 반응을 보니, 제가 좀 걱정스럽네요..
항상 이 집에 이렇게 이쁜 백들이 있는 건 아니구요, 설사 있다하더라도 거기서 보기엔 싸구려처럼 보여 못 사실지도 몰라요...또 1만원짜리도 물건이 많고 깨끗하면 2만원쯤 부를 수도 있고 하니...차근차근 고르시구요. 없으면 그냥 오셨다가 담에 가세요, 물건 언제 새로 들어오냐고 물으신 후 그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