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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남편도 부엌으로...

| 조회수 : 16,204 | 추천수 : 971
작성일 : 2002-10-03 00:30:54
“내가 지난 주말 대야에 난초 화분 3개 담가뒀는데…”
“응, 그래서?”
“어떻게 그게 여태까지 그냥 있어?”
“엉?”
“좀 치우지, 그래 그걸 그냥 놔 두냐?”

저희 부부의 대화 한토막입니다.
대화 내용만 들으면 누가 화분을 관리하고 누가 화분을 방치했는지 구별이 안가죠?
남들에게 살림이 야무지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 저지만 절대로 하지않는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이에요.

화분에 물 주기? 그건 집안살림의 그 많은 일 중에서 노동량으로 보나 난이도로 보나 시간비용으로 보나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왜 하지 않느냐 고요?
가정이란 건 부부가 함께 가꿔나가야 하는 거잖아요. 우리 가정은 아내가 맞벌이주부든 아니든 간에 가정에서의 노동량이 너무 많아요. 어떤 일이든 간에 남편도 가정을 꾸려 가는데 한 몫 해야하는 거 랍니다.
아내의 통장으로 월급이체 시켜준다고 해서 남편으로서의 의무가 끝난 건 아니죠. 물론 요즘 젊은 남편들은 많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래서 전 화분에 물 주기만큼은 남편의 몫으로 돌려놨죠. 어떤 때는 Kimys(제 남편인거 아시죠?)가 너무 바쁜 나머지 돌보지 않아 나무가 말라 죽어가기도 해요, 그래도 전 물을 절대로 안 줘요. 물론 가슴이 아프죠, 식물의 생명도 소중한 건데. 그렇지만 한번 주기 시작하면 계속 제가 줘야 되잖아요.
이렇게 살다보니 Kimys가 알아서 물주고 영양제주고 마른 잎 잘라주고…. 수많은 집안 일 중 한가지는 잊고 살아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얘기할 지도 몰라요. “간 큰 남편이네, 겨우 화분에 물 주는 걸로 집안일을 끝낸단 말야!”하고.
제 남편 Kimys는 저 처럼 언론인 출신으로  언론사 중역까지 지낸 사람이고 몇 년전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중견 추리작가구요. 나이도 어지간해서 마구 부려먹을 수도 없어요. 게다가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사니 부엌으로 끌어들이기는 더더욱 어렵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가족들을 위해서 단 한가지 요리를 한답니다.

그게 뭐냐구요? 삼겹살 구워 먹을 때의 필수품, 파무침 이예요. 요리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것만큼은 제가 절대로 안 해요.
“당신이 한 게 너무 맛있다아~, 난 못하겠던데…”하면서 은근슬쩍 떠넘겼죠.
제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 왜 파무침을 못하겠어요. 들어가는 양념이 뻔한 건데. 다만 가족들을 위해 당신도 어쩌다 한번씩은 손맛을 보여봐라 하는 거죠.
전 삼겹살을 먹으면서도 연신 “파무침이 예술이야, 예술”하며 너스레를 떨죠.
대신 다른 건 아무 것도 안해요. 젊은 남편들이 많이 해서 주부습진까지 걸린 남자가 있다는 설거지요? 택도 없어요.

제가 왜 이런, 요리랑 별 관계도 없는 것 같은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느냐 하면요, 남편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스마트 쿠킹이라는 뜻에서 하는 거예요.  
저처럼 특정요리만 남편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겠고 월 1회 요일을 정해놓고 하는 방법도 있겠고, 여하튼 각 가정에 적당한 방법이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요?
남편을 부엌으로 끌어들이자구요, 좁은 부엌에서 몸을 부딪쳐가면 뭔가를 만들고 나면 금슬이 더욱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또 아이들 교육상으로도 얼마나 좋겠어요? 부모가 합심해서 자신들을 위해 식탁을 준비하는데.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도와주지는 않으면서 반찬을 사왔냐, 만들었냐 하며 따지는 '간큰 남편'이 적지 않은 듯 싶네요. 그런데 이렇게 따지고 들면 결국 자기 손핸데... 좀 맛이 없어도 맛있다 맛있다 하는 작전으로 나가면 더 열심히 음식을 하게되죠. 이게 바로 저희 집 Kimys가 저 한테 써먹은 방법이에요. 한때 정말 제가 요리천재줄 알았다니까요, Kimys 덕에.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김정희
    '02.10.3 1:44 PM

    하하! 어제 저녁에 드뎌 우리 남편을 끌어 들였죠. 오랫만에 실로 오랫만에 집에 온 남편이 국물맛이 끝내주는 국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당근과 호박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직접 사다 줬어요. 덕분에 자연스레 같이 준비해서 국물맛이 끝내주는 국수를 먹었죠. 같이 준비해서 먹는 식사는 차암 나이스죠.

  • 2. 허지연
    '02.10.3 4:16 PM

    현명한 아내라는 것이 이런것 인가봐요...가끔 까먹기도 하구..
    오늘 첨으로 여기 가입했어요..친정아빠께서 이멜로 보내주신 정보로요...신문을 통해 아셨나봐요
    저도 온통 주부의 일만 할수 없는 처지거든요...그래서 저도 신랑과 함께하지요..
    신혼때나 지금이나..잘은 도와주는데...왜그런지 날이갈수록 도와주는 횟수랑 일의 종류가 줄어들어요,,,,제가 점점더 곰이 되어가나봐요..헤헤
    저는 집안 vacuum이랑 쓰레기 버리는 일...그리고 일주일에 3번이상은 설겆이를 했었는데..

    힛 제이야기가 길어졌네요..여기서 많이 배우고 가요..그리고 많이 기대할께요

  • 3. 이규정
    '02.10.4 10:54 AM

    오늘 아침 궁금해서 들어왔는데, 역시나 참 좋은 글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시부모님하고 같이 살고 있어도 모라 하시는일은 없지만 남편이 문제입니다.
    라면 하나도 못하는 그런 성격이거든요 컵라면하나는 혼자 끌여 먹어요 그거 하나만 그러니
    음식을 하는데 도움을 청하는건 상상도 못해요 무슨 방법이 없겠죠? 여기에 이런글을 올려도
    되는지.. 우리가족은 서로서로 할일들이 있어야 하는데 남편은 전혀 없어요.
    그만써야 하겠내요. 좋은 하룰 보내세요^^

  • 4. 김혜경
    '02.10.4 12:06 PM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 남편을 부엌으로 끌어들이기 참 어렵죠.
    사위가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하면 딸 시집 잘갔다고 하고 아들이 그러면 밸빠진 놈 한다잖아요.

    아이들 교육을 핑계대보세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교육상, 아이들 정서발달상 참 좋다고요. 제 핑계를 대세요, 제가 교육학과 나왔거든요.
    그런데 물론 시부모 안계실 때 그래야겠죠? 아무래도 시부모님은 어려우니까...

  • 5. 이규정
    '02.10.5 10:22 AM

    역시나 답변을 꼼꼼히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 볼 께요 ..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그만 심부름이라도
    부탁하면서, 살살 꼬득여 봐야지 넘어갈까 모르겠지만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 6. 어주경
    '02.10.7 11:56 AM

    제 남편이 잘 하는 요리(?)는 라면이에요. 라면 발이 쫄깃하게 끓이는 데, 전 정말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구요. 저는 퍼진 라면이 더 맛있던데.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라면 계통의 요리(예, 비빔면, 짜파게티 등)는 아빠가 하는 것으로 되어있어요.

  • 7. 김혜경
    '02.10.7 3:31 PM

    라면 잘 끓이는 것도 솜씨죠. 저도 라면 잘 못끓이거든요. 주경님 한걸음더 나아가 라면을 가지고 하는 응용요리도 시켜보세요. 쟁반라면이라든가 라면 전골같은...^^

  • 8. 어주경
    '02.10.8 11:08 PM

    쟁반라면이 무엇인가요? 제가 우선 알아야 남편을 시킬 수 있을텐데요.... 하물며 라면 전골은 더더욱. 김혜경님의 책을 교보에서 주문해 놓았으니까, 받아보면 그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 9. 김혜경
    '02.10.8 11:42 PM

    하하,이름이 너무 거창했나요? 책에는 라면요리 뺐는데...

    쟁반라면은요, 라면을 삶아서 국수사리처럼 만들어 놓고요, 오이 당근 같은 채소는 채썰고요, 상추도 있으면 좀 찢어놓고요, 이런 재료들을 커다란 접시에 다음 소스에 비벼드시는 거예요. 소스는 책에 있는 쟁반국수 소스를 이용하면 되구요. 보통 막국수로 만들어 파는 쟁반국수처럼 생각하시면 되요.
    라면전골은 요, 국물을 넉넉하게 잡은 김치찌개에 소시지와 라면을 넣으면 라면전골이죠. 책에 보면 부대찌개가 나와있는데 부대찌개보다 소시지나 햄 같은 재료를 줄이고 라면을 넉넉히 넣고 끓여보세요.

    주경님 서방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않을까요?

  • 10. 주순란
    '02.10.18 10:48 AM

    우리집 아빠는 요리를 좋아해요. 요리라야 제가 다 재료 만들어서 주면 튀기거나, 접시에 담는 정도지만 ..
    그래도 함께하면 세 딸도 좋아하고 , 정말 친정 어머님이 많이 좋아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라면요리 좋아하니까 쟁반라면 한번 함께 해 봐야 겠어요. 좋은정보 고맙습니다.

  • 11. 토마토
    '04.6.9 7:56 PM

    남편을 부엌으로... 저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혜경샘과 똑같은 방법으로...
    남편은 라면을 잘 끓여서, 저는 절대 라면은 안 끓이죠.

    항상 맛있다는 말에 저엮시, "아 ..내가 요리의 대가인가?"하고 가끔 착각까지도...
    우리는 시장 봐오면 남편이랑 함께 정리해서 수납합니다. 대단히 합리적인 사람이죠.. 그나이에는 그런 한국남자 드물어요.

  • 12. 김혜경
    '04.6.9 10:15 PM

    하하..저희집 kimys랑 비슷하신듯...한번 만나게 해볼까요? 두 남자분...

  • 13. 세바뤼
    '04.6.11 9:29 AM

    제가 중국에 있을때 아빠한테 전화가 왔어요..
    엄마가 미국에 있는 언니한테 잠시 다니러 갔을 때였는데...
    라면을 끓여 드시려는데 가스가 안켜진다는거예요...
    '벨브 여셨어요??'하니까
    '가스켜는데 창문도 열어야해??'하셨던 어처구니 없는 일화가...
    지금도 여전히 물한잔도 직접 안가져다 드세요..
    아~~
    아빠같은 남자 만나지 말아야할텐데..
    큰일이예요...잉~~

  • 14. 김혜경
    '04.6.11 3:25 PM

    ㅋㅋ...

  • 15. 박하맘
    '04.10.16 6:38 PM

    울 남편도 떡볶이는 꽂 자기가 해야한답니다...
    전 뭐하냐구요....
    물론 조수.....파까고 어묵 자르고...^^

  • 16. 레인보우
    '04.11.25 11:48 AM

    남편을 부엌으로 끌어들이기.한판,,오늘 확실히 배웠습니다..
    꼭..써먹어야지...

  • 17. 잠비
    '05.2.11 11:01 PM

    신혼 초에 남편이 시금치국 끓여놓고 퇴근하는 마누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늦게 들어가면서 시장한 남편을 위해서 영양센타 전기통닭 사들고 들어가서 먹으랬더니...
    시금치국은 옆에서 울고 있고....
    그 다음부터는 부엌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고 버티던 남편.
    이제는 너무 늙어서 아무 것도 안합니다. 아니 못합니다. 화분의 물도 내가 줍니다.

  • 18. 원추리
    '11.5.28 8:47 PM

    해놓은걸 제때와서 먹어주기만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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