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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산골편지 -- 뜨거운 거름

| 조회수 : 1,754 | 추천수 : 23
작성일 : 2004-06-22 09:21:47


요즘은 시골길 곳곳이 다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그래서인지 소달구지 덜컹대는 시골길이라는 표현이나 모습은 옛날 사진에서나 봄직하다.

다행히 우리 오두막으로 올라오는 길은 100미터 정도가 비포장 도로이다.
한쪽 산을 깎아 만든 길인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툇마루에서 그 길로 걸어 들어오는 하교길 아이들의 모습은 눈을 하늘에 행구고
다시 볼 정도이다.

그이와 약속했다.
저 길은 끝까지 비포장길로 놓아 두기로...

****************************************


어린시절 방학 때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앞마당에 여러 가지 꽃들이 제일 먼저 와서 안기곤 했다.
아이들은 서울에서 공부시킨다며 서울로 다 데리고 가면서도 늙으신 부모님이 걱정되어 둘째언니를 부러 두고 왔었단다.

그래서 둘째 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를 서울로 모실때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 생각을 하면 둘째 언니에게 미안타.

그 언니가 동생들 온다고 할머니와 꽃밭을 매년 그렇게 아름답게 꾸며준 탓에 그나마 내가 조금 서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런 생각에서 우리 산골 아이들에게도 동요 가사처럼 꽃밭가득 예쁘게 과꽃을 보여주려고 앞마당에 큰 꽃밭을 만들었다.

작년에 받아둔 씨앗이 별반 없는 탓에 과꽃, 봉선화, 나리꽃, 채송화, 홍화 등을 고루뿌렸다.
요즘 한창 한두 송이씩 시샘하는 듯 타는 가슴을 터뜨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밭 전면에는 머리내미는 것이 없었다.

'이상하다. 앞면에 더 예쁜 꽃을 고루 뿌린듯 한데...'
그 이유를 오늘 발견했다.

주범은 박씨 일가!
애비나 아이들이나 기회만 있으면 꽃밭에 대고 노상방뇨를 하는 바람에 그만 씨가
말라버린 것이었다.

그곳에 꽃씨가 들어 앉았으니 고맙게 거름은 안줘도 된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했었다.
도시 같았으면 노상방뇨는 5만원 벌금은 족히 내야 했을 터이지만 난 산골아줌마로 마음이 넉넉하니 경고로 끝냈다.
그러나 버릇은 못고친다.
결국 꽃밭이 뒤에만 예쁘게 꽃이 피고 앞면엔 기계충 앓은 듯 하다.
그 상황을 직접 확인하였으면서도 요즘에도 착실하게 뜨거운 거름을 주고들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내 탓도 있다.
귀농하고 한동안을 박씨 일가는 그냥 마당이나 길에다 대고 볼 일을 보는 거였다.

"당신 농부 맞아? 그 아까운 거름을 길바닥에 쏟아 버리다니...."
그 날 이후 꽃밭에 거름을 주려고 그리 했다니 나 또한 별반 할말을 잃을 수 밖에.

꽃밭을 볼 때마다 아쉬워 오늘은 대머리에 머리카락 이식하듯 꽃 이식을 했다.
앞에만 호미로 골을 파고 아이들 줄세우듯 홍화와 봉선화를 옮겨 심었다.

꽃도 자리텃을 하는지 며칠 몸살을 앓더니 그만 황달이 들었다.
한 밭 가득 이식하려던 욕심을 버리고 그대로 두었다.
식구들 눈요기 하자고 녀석들 자리텃하는 걸 볼 수 없어서....

***********************************************

비가 온다고 하더니 별들이 슬리퍼신고 마실나온 걸로 보아 비오는 것도 글렀다싶다.
남편이 내일은 야콘밭에 풀 뽑자고 한다.

오늘까지 고추밭 풀 뽑았는데 종목을 좀 달라하지 며칠을 한 종목만 하니 싫증이 난다.

그래도 너무 진지하고 열심인 남편을 봐서라도 나의 주특기인 김매는 일을 충실히
해야겠다..

2001. 7. 12

넓은 잎을 벌리고 나를 반길 야콘들을 생각하며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peacemaker
    '04.6.22 10:12 AM

    농사일은 풀과의 전쟁이라죠?
    허리 숙인 만큼 나중에 소피아님의 웃음도 크겠죠..
    비포장으로 남겨두자 약속하는 길도 있으시고..
    매 번 부럽습니다..

    과꽃.. 채송화.. 봉선화..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제 유년의 꽃들이네요.
    그런데 분꽃은 안심으셨나요?
    색색의 분꽃.. 너무 좋아하거든요..
    분꽃 얘기를 하니까.. 박완서님의 분꽃이 생각나네요..

    6월 초순 해 저물 무렵..마당에 피어난 첫 분꽃을 보시면서..
    제가 무슨 장미라도 되는 줄 아는지 딱 한 송이 피었다시며..
    가을까지 몇 백송이 꽃을 피우며 맷방석처럼 크게 퍼질 분꽃에게
    풀꽃의 운명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무가 되기를 꿈꾼다시며..
    된서리 한 번이면 속절없이 무너질 운명을 알기나 하는지..하며 딱해 하시죠..
    선생님께서는..한 포기만으로도 저녁을 밝히기에 충분한 분꽃으로
    유년을 회상하고 계셨습니다..

    소피아님의 아이들도 나중에 추억할, 유년의 꽃밭이 있어 행복한 아이들입니다.
    유년의 꽃 얘기를하다보니 말이 많아졌네요..
    이왕 내친 김에..
    그 분이 소개하신 시를.. 저도 흉내내어 그대로 한 번 옮겨봅니다..



    <분꽃이 피었다> 장석남


    분꽃이 피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한 바 없이

    사랑을 받듯 전혀

    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 뜰에 나와서

    저녁을 밝히고

    나에게 이 저녁을 이해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이 세상을

    보여주는 건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

    그 悲哀보다도 화사히

    분꽃은 피어서 꽃 속을 걸어나오는 이 있다

    저물면서 오는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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