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산골편지 -- 왜 그 집이 궁금할까??

| 조회수 : 2,605 | 추천수 : 80
작성일 : 2008-07-14 23:51:26
산골에 비가 온다.
그 비를 개구리도 먹고, 꽃도 먹고, 은행나무도 먹고, 밭의 야콘, 고추도 먹는다.
거저 주는 것에 대한 다툼도, 욕심도 그들에겐 없다.

인간들과는 달리 쌈박질만 안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해 두고 먹으려 벽장에 차곡차곡 끌어 모아 두지도 않는다.

간디의 무소유 이론이 ‘필요하지 않는 것은 소유하지 않으며 쌓아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는데 우리네 현실은 청개구리마냥 정반대다.
평생 한번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끌어안고 사는 것만 해도 질식사할 지경이다.

산골에 비가 온다.
개구리 소리가 난생 처음으로 청렴하게 들린다.
********************************************

산골에서 빈 집을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멀리서도 티가 난다.
마당에 풀이 우거지고, 문짝도 떨어져 나갔거나, 한쪽 귀가 떨어져 반항아처럼 삐딱한 자세를 하고 있다.

지붕도 반은 날아가고 반은 무슨 미련이 있는지 남아 있고, 집 벽은 쥐들의 안식처가 되어 그물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을 하고 있는 등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작년의 일이다.
이웃집의 일을 도와 주려고 간 곳은 다른 마을에 있는 밭이었다.
그곳에 김매기를 해 주러 갔었다.

한참 일을 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가는 길에는 집들이 몇 채 있었다.
이웃집 아낙이 그 중 한 집을 가리키며
“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데...”한다.

그 집 마당에는 고추 몇 포기가 심겨져 있었고, 말목을 박고 줄까지 쳐 놓은 진도로 보아 아주 최근의 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담벼락 가차이에는 호박도 몇 구덩이 앉혀 놓았다.
작은 툇마루에는 요강이랑 신발, 걸레 등이 아직도 주인의 온기를 유지한 채 천연덕스럽게 자리를 차고 앉아 있었다.

어디를 보나 주인 잃은 집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 사람 마음이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오래 전에 주인을 잃어 을씨년스러워진 집을 보는 것보다 이제 막 주인을 잃어 세간마다 아직도 그의 체온이 남아 있음직한 집을 볼 때가 참으로 사람 마음을 아리하게 만든다는 사실...

그 집 마당을 지나가는데 왠지 올 겨울  바람들지 말라고 정갈하게 바른 창호문을 열고
“아무 데서나 한 술 뜨고 가”하실 것만 같아 자꾸 발목과 목구멍이 셋트로  죄어 왔다.

사람 가고 오는 일.
일순간의 일이다.
누구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행복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주인은 갔지만 객들은 그것도 모르고 제 할 일을 잘 할 것이다.
고추는 점점 제 키를 키울 것이고, 가을이 되면 빠알갛게 제 색을 낼 것이다.
집 옆에 심어 놓은 호박도 둥글둥글 몸을 불릴 것이고 그 또한 가을이면 달덩이처럼 누런 얼굴로 주인을 기다릴 것이다.

그 고추와 호박을 딸 손길이 너무 멀리에 나 앉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왜 그 집이 궁금할까...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라벤다
    '08.7.15 9:22 AM

    가을이 깊으면 빨간 고추도 늙은 호박도
    누런 얼굴의 할머니를 생각하며 모두 들 거둬 들이겠지요...
    무쇠 솥의 돌 채송화가 여름 날의 더위를 잊게 하여 줍니다~

  • 2. 다은이네
    '08.7.15 9:41 AM

    꽃이름이 채송화군요
    동네를 애들 데리고 다니다보면 화분에
    심어져 있던 채송화를 자주 봤거든요
    작지만 참 정감있고 이쁜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름은 알게 되었어요

  • 3. 나옹이
    '08.7.15 9:53 AM

    채송화 되게 오랫만에 들어보는것 같아요 !!

  • 4. 스머프반바지
    '08.7.15 1:41 PM

    아주 잠깐 우리집 마당인줄 알았어요.
    가마솥에 꽃~
    다시보니 심겨진 꽃이 다르네요.^^

  • 5. 소박한 밥상
    '08.7.15 5:05 PM

    꽃은 아름다움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 그걸로 족하지만........
    혹시.......채송화가 아니고 요술꽃이 아닌가요 ??
    (꽃집에서 그렇게 들었음)
    채송화처럼 잎이 도톰하지만 꽃잎은 채송화처럼 하늘거리지 않고 마치 조화같은데.........
    채송화科인가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2629 배필 2 도도/道導 2024.04.25 101 0
22628 보고싶은 푸바오... 어느 저녁에 1 양평댁 2024.04.24 234 0
22627 남양주 마재성지 무릎냥이 9 은초롱 2024.04.24 822 0
22626 그렇게 떠난다 4 도도/道導 2024.04.24 166 0
22625 홍제 폭포입니다 2 현소 2024.04.23 234 1
22624 오늘은 차 한잔을 즐길 수 있는 날 4 도도/道導 2024.04.23 183 0
22623 아파트 화단의 꽃들 1 마음 2024.04.22 243 0
22622 민들레 국수 모금액입니다 1 유지니맘 2024.04.22 612 1
22621 여리기만 했던 시절이 4 도도/道導 2024.04.21 280 0
22620 진단조차 명확하지 않은 ‘암’!! 암진단은 사기? 허연시인 2024.04.20 434 0
22619 천사의 생각 4 도도/道導 2024.04.20 245 0
22618 산나물과 벚꽃 1 마음 2024.04.19 310 0
22617 소리가 들리는 듯 2 도도/道導 2024.04.19 212 0
22616 잘 가꾼 봄이 머무는 곳 2 도도/道導 2024.04.18 259 0
22615 민들레국수 만원의 행복 시작 알립니다 2 유지니맘 2024.04.18 559 1
22614 세월을 보았습니다. 4 도도/道導 2024.04.17 348 0
22613 이꽃들 이름 아실까요? 4 마음 2024.04.16 442 0
22612 3월구조한 임신냥이의 아가들입니다. 9 뿌차리 2024.04.16 1,541 1
22611 새벽 이슬 2 도도/道導 2024.04.16 229 0
22610 월요일에 쉬는 찻집 4 도도/道導 2024.04.15 471 0
22609 믿음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2 도도/道導 2024.04.14 260 0
22608 유종의 미 4 도도/道導 2024.04.13 365 0
22607 복구하면 된다 2 도도/道導 2024.04.12 579 0
22606 새롭게 극복해야 할 나라 8 도도/道導 2024.04.11 515 0
22605 날마다 예쁜 봄 날 6 예쁜이슬 2024.04.10 719 0
1 2 3 4 5 6 7 8 9 10 >>